[자동차와 法] 내 차가 만든 데이터, 주인은 누구인가

김동진 kdj@itdonga.com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사고가 났습니다. 진실은 내 차가 알고 있습니다. 사고기록장치(EDR)에 충돌 전후 속도,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작동 상황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데이터를 차주인 내가 마음대로 확인하고 검증할 수 없다면 어떨까요? 데이터를 만든 것은 내 차인데, 그 데이터를 꺼내고 해석하는 권한은 제조사와 수사기관에 있습니다.

요즘 자동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 불릴 만큼, 쉼 없이 데이터를 만들어냅니다. 위치와 이동 경로, 운전 습관, 차량 상태, 차 안에서 주고받은 음성 명령까지 기록됩니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내 차인데, 내 데이터는 아니다? 소유권의 법적 공백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에 '차량 데이터 소유권'을 정면으로 규정한 법은 없습니다. 민법상 소유권의 대상은 물건, 즉 유체물과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에 한정(민법 제98조)되기 때문에 형체가 없는 데이터는 원칙적으로 소유권의 객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데이터산업법이 '데이터자산'의 부정사용을 금지(제12조)하고 있지만, 이는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데이터를 만든 사업자를 보호하는 규정이지, 차주 개인에게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조항은 아닙니다.

물론 보호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정보와 결합해 소유자를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개인정보로 인정되고, GPS 위치기록은 위치정보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차주가 사고기록장치 데이터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밖의 데이터, 즉 평소의 주행기록과 위치정보, 차량 상태 정보에 대한 접근은 대부분 제조사가 정한 약관에 달려있습니다. 차는 분명 내 소유인데 차가 만든 데이터의 통제권은 내게 없는 역설이 시작됩니다.

차는 지금도 나를 기록 중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국내 커넥티드카는 이미 700만 대를 넘어 전체 등록 차량의 4분의 1을 웃돕니다. 블루링크, 기아 커넥트 같은 서비스는 원격 시동과 공조 제어의 편리함을 주는 대신 위치·운행·차량진단 데이터를 상시 서버로 전송합니다.

스마트폰에서 앱을 지워도 차량의 통신 모듈은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수집을 멈추려면 차량 설정에서 기능을 끄거나, 서비스를 정식으로 해지해야 합니다. 중고차를 팔면서 커넥티드 서비스를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차주의 위치가 이전 차주에게 노출되는 황당한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할인의 대가, 보험사가 보는 내 운전습관

'안전운전하면 보험료 할인'이라는 광고,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내비게이션 앱의 운전점수나 커넥티드카 데이터와 연계해 보험료를 깎아 주는 운전습관연계(UBI) 보험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주행한 거리만큼 보험료를 내는 상품, 운전점수가 기준 이상이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특약이 대표적입니다. 할인 폭도 커서 가입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혜택의 이면도 봐야 합니다. 할인을 받으려면 내 주행거리, 급가속·급감속 습관, 운행 시간대 같은 데이터가 보험사로 전송되는 데 동의해야 합니다. 문제는 가입할 때 '전체 동의'를 누르면서 어떤 데이터가 어디까지 쓰이는지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평소에는 할인의 근거였던 데이터가 사고가 나면 과실을 따지는 자료가 되거나, 나를 겨누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경찰도 마음대로 열어볼 수 없는 데이터

사고가 나면 데이터는 사생활에서 증거로 성격이 바뀝니다. 그래도 헌법상 영장주의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수사기관은 운전자가 임의로 제출하거나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범위에서 블랙박스와 EDR, 서버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뿐이고, 확보된 EDR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분석합니다. 실제로 법원은 사고 현장에 남은 차량에서 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영장 없이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수거한 사안을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운전자가 기억해야 할 부분들

첫째, 새 차를 사고 내비게이션에서 커넥티드 서비스에 가입할 때, 위치정보 제공 및 마케팅 활용 항목은 선택적으로 해제할 수 있으니 꼭 필요한 정보만 제공해야 합니다.

둘째, 사고가 발생하면 블랙박스만 챙기지 말고 EDR과 차량·서버 로그의 보존도 신속히 요구해야 합니다. 덮어쓰기나 수리·업데이트가 이뤄진 뒤에는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셋째, UBI 보험의 혜택 이면에는 내 운전 데이터 제공과 분석이라는 감시의 꼬리표가 붙어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넷째, 중고차를 팔거나 폐차할 때는 내비게이션 초기화, 커넥티드 서비스 정식 해지, 디지털키 및 공유 사용자 해제를 직접 확인하여 나의 디지털 흔적까지 완전히 지워야 합니다.

마치며

미래의 교통사고 분쟁은 '누가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는가'를 넘어, '누가 더 확실하고 유리한 차량 디지털 데이터를 쥐고 있는가'의 치열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자동차가 똑똑해진다는 것은 분명 운전자에게 편리한 일이지만, 법이 함께 똑똑해지지 않으면, 그 편리함은 운전자에게 불리한 침묵과 족쇄로 돌아옵니다. 편리함 아래 무비판적으로 거대 기업에 내어준 데이터가 예기치 못한 사고의 순간에 나를 겨누는 차가운 흉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글 /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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