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차 안이 공연장이 된다…’하만 카랩’에서 접한 '버추얼 베뉴 라이브'

김동진 kdj@itdonga.com

[IT동아 김동진 기자]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첨단 운전자 보조 기술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발전으로 차량은 음악을 듣고, 콘텐츠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제2의 생활공간'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동차 오디오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스피커 개수나 출력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제한된 차량 실내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몰입감 있는 공간감을 구현하느냐가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카랩 청음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카랩 청음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이 같은 변화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서울 양재동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카랩(Car Lab) 청음실을 찾았다. 이곳은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공간이 아니다. 자동차 안에서 구현할 소리의 기준점을 만들고, 새로운 음향 기술을 연구·검증하는 공간이다. 제네시스 G90에 적용된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과 하만이 자랑하는 '버추얼 베뉴 라이브(Virtual Venues Live)', '베오소닉(Beosonic)'과 같은 첨단 기능 역시 이 같은 연구 과정 속에서 완성됐다.

'좋은 소리의 기준'을 만드는 공간…'하만 카랩'

하만 카랩 청음실에 들어선 후 문을 닫자, 외부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녹음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정숙한 공간에서 음악을 재생하니, 악기의 위치와 무대의 깊이가 또렷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이 공간의 목적은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지 않다. 자동차 안에서 구현해야 할 기준이 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한 레퍼런스 공간이다.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카랩 청음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카랩 청음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자동차 실내는 음향 엔지니어에게 가장 까다로운 환경 중 하나다. 거실처럼 좌우가 대칭인 공간과 달리 운전석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운전자와 각 스피커 사이 거리도 모두 다르다. 여기에 유리와 가죽, 플라스틱 등 서로 다른 소재가 소리를 제각기 반사하고, 주행 중에는 노면 소음과 풍절음까지 계속 유입된다. 같은 스피커를 사용해도 자동차와 실내에서 전혀 다른 소리가 나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하만 카오디오 어쿠스틱 시스템 엔지니어링(ASE, Acoustic System Engineering) 팀은 차량 개발 초기부터 오디오 시스템 전반을 새로 설계한다. 어떤 브랜드 오디오를 적용할지부터 스피커 배치, 앰프 구성, 소프트웨어 기능, 최종 사운드 튜닝까지 모두 ASE의 역할이다. 엔지니어들은 측정 장비를 활용한 객관적인 데이터와 직접 귀로 듣는 청음을 병행해 차량마다 다른 음향 특성을 보정하고, 가장 이상적인 사운드를 찾아낸다.

이를 위해 구축된 공간이 바로 카랩 청음실이다. 청음실은 최대한 이상적인 청취 환경을 구현해 엔지니어가 '원래 음악이 어떻게 들려야 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 일종의 레퍼런스 공간이다. 이 기준이 있어야 자동차처럼 복잡한 환경에서도 원곡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는 튜닝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청음실은 일반적인 시청실과도 차이가 있었다. 스튜디오브릭스(Studiobricks)의 대형 방음 부스(넓이 4.8m, 깊이 7m, 천고 3m)를 중심으로 원격 제어가 가능한 디지털 콘솔과 모듈형 입출력 시스템을 갖췄다. 원격 컨트롤이 가능한 다채널 디지털 콘솔을 활용하여 범용성과 확장성을 확보했다. 메인 레퍼런스 스피커로는 뱅앤올룹슨의 '베오랩 50(Beolab 50)'을 사용한다. 여기에 JBL 708P 레퍼런스 모니터 7대와 JBL 705P 레퍼런스 4대를 활용한 7.1.4채널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시스템도 구축, 다양한 환경에서 사운드를 검증할 수 있도록 공간을 꾸렸다. 4대의 스피커는 JBL 신세시스 SDP-55 A/V 프로세서(JBL Synthesis SDP-55 A/V Processor)와 연동되어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음악을 재생한다.

최유석 하만 코리아 카오디오 어쿠스틱 시스템 엔지니어링(ASE) 팀 프로는 "자동차는 운전자 위치와 실내 구조, 소재가 차량마다 모두 달라 같은 오디오 시스템이라도 동일한 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ASE팀은 측정 데이터와 반복적인 청음을 바탕으로 차량별 최적의 사운드를 구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곳 청음실에서 확보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차량마다 다른 음향 특성을 보정하고 최종 튜닝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공연장을 내 차 안으로…'버추얼 베뉴 라이브'

이날 가장 관심을 끈 기술은 하만의 공간 음향 기술인 '버추얼 베뉴 라이브(Virtual Venues Live)'였다. 처음 이름만 들으면 단순히 공연장 같은 효과를 내는 음장 기능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원리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 기능을 활성화하는 모습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버추얼 베뉴 라이브 기능을 활성화하는 모습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예컨대 같은 음악이라도 ‘보스턴 심포니홀’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듣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공연장마다 공간 크기와 형태, 벽과 천장의 재질, 좌석 구조가 모두 달라 소리가 반사되고 퍼지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흔히 '공간감'이나 '현장감'으로 느끼지만, 음향 엔지니어에게는 측정 가능한 물리적 데이터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바로 이 데이터를 차량 안으로 가져온 기술이다. 하만은 실제 존재하는 유명 공연장을 직접 찾아 특수 측정 장비로 임펄스 반응(Impulse Response)을 수집한다. 임펄스 반응은 특정 공간에서 소리가 어떻게 반사되고 감쇠하며 사라지는지를 기록한 일종의 '음향 지문'이다. 공연장마다 고유한 임펄스 반응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면 공간 특성을 디지털 데이터로 구현할 수 있다.

수집한 데이터는 차량 오디오 시스템에 그대로 넣는 것이 아니다. DSP(디지털 신호처리) 알고리즘이 각 스피커의 출력과 시간 지연(Time Alignment), 반사음의 양과 방향 등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자동차 실내에 맞게 재구성한다. 단순히 잔향을 추가하는 효과와는 차원이 다르다. 운전자는 실제 공연장에 앉아 있는 듯한 공간감을 경험하고, 무대의 크기와 악기의 위치, 관객석의 분위기까지 보다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기술의 출발점이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아니었다. 공연을 앞둔 아티스트와 밴드가 차고나 연습실에서도 실제 경기장과 비슷한 환경에서 리허설할 수 있도록 하만 프로페셔널 솔루션에서 개발한 기술이 시작이었다. 이후 축적된 공간 음향 기술이 자동차 분야로 확장되면서 이제는 차량 안에서도 라이브 공연장의 감동을 구현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제네시스 G90에 구현된 '버추얼 베뉴 라이브'

버추얼 베뉴 라이브를 경험하기 위해 관련 기술을 구현한 제네시스 G90에 탑승했다.

음악을 재생하자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공간의 깊이였다. 일반적인 차량 오디오는 좌우로 소리가 넓어지는 느낌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버추얼 베뉴 라이브를 활성화한 G90은 무대의 앞뒤 거리와 천장의 높이까지 표현하는 듯했다. 보컬은 전면 중앙에 또렷하게 자리 잡았고, 현악기와 타악기 역시 서로 다른 위치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분리됐다.

공연장 모드를 바꾸자 변화는 더욱 뚜렷했다. 같은 음원인데도 공연장 규모와 잔향이 달라지면서 마치 좌석을 앞줄에서 뒤쪽으로 옮기거나, 실내 공연장에서 대형 콘서트홀로 이동한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단순히 저음을 강조하거나 울림을 인위적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달라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 같은 경험이 가능한 이유는 G90이 버추얼 베뉴 라이브 구현을 위한 하드웨어까지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 하만 코리아 카오디오 어쿠스틱 시스템 엔지니어링(ASE) 팀 프로는 “G90에 총 23개의 스피커와 8개의 마이크가 탑재된다”며 “차량 내부 음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음악뿐 아니라 탑승자의 목소리와 박수 소리까지 공간 음향으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를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프리미엄급 이상의 스피커들과 마이크 등의 오디오 시스템이 필수다. 기본적으로 3웨이 시스템, 즉 우퍼, 미드레인지, 트위터 시스템이 구현되어야 하며 특히, 헤드라이너 스피커가 중요하다. 캐빈 내 천장에 위치하는 헤드라이너 스피커를 통해 3D 경험을 제공할 뿐 아니라 공간감을 비롯한 버추얼 베뉴의 음장감을 제공한다.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에 채택된 ALT(Acoustic Lens Technology)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에 채택된 ALT(Acoustic Lens Technology)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버추얼 베뉴 라이브를 구현하는 루프 마이크와 스피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버추얼 베뉴 라이브를 구현하는 루프 마이크와 스피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실제로 버추얼 베뉴 라이브 기능이 활성화 돼 있는 동안 사람의 목소리나 박수 소리가 차내에서 울려 퍼졌다. 여기에 헤드라이너 스피커를 포함한 3웨이 스피커 시스템이 더해져 버추얼 베뉴 라이브가 의도한 입체적인 공간감을 구현한다.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에 채택된 헤드레스트 스피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에 채택된 헤드레스트 스피커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2022년 제네시스 G90 모델의 G90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에 최초로 장착됐다. 현재 국내 판매 차량 가운데 버추얼 베뉴 라이브를 지원하는 모델은 제네시스 G90이 유일하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차량 전체 오디오 시스템이 함께 설계돼야 가능한 기술이다. 공연장 음향을 차량으로 옮기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구현할 스피커 구성과 마이크, DSP 성능 등 특정 하드웨어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 조건만 충족한다면, 다른 차량에도 적용이 가능한 기술이다.

음향 전문가가 아니어도…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소리를 찾는 '베오소닉'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기능은 뱅앤올룹슨의 베오소닉(Beosonic)이다.

베오소닉 기능을 활성화한 모습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베오소닉 기능을 활성화한 모습 / 출처=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기존 차량 오디오는 저음(Bass), 중음(Mid), 고음(Treble)을 각각 조절하는 EQ(Equalizer)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는 어떤 대역을 얼마나 조절해야 원하는 소리가 나오는지 알기 어렵다. 결국 기본 설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베오소닉은 이런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디스플레이에는 '밝음(Bright)', '활동적(Energetic)', '따뜻함(Warm)', '편안함(Relaxed)'이라는 네 가지 감성 키워드가 배치된다. 사용자는 복잡한 수치를 조정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원하는 방향을 터치하거나 드래그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보컬을 조금 더 선명하게 듣고 싶다면 '밝음' 방향으로, 저음의 묵직함과 여유로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따뜻함' 쪽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두 영역의 중간을 선택하면 두 성향이 자연스럽게 섞인 음색도 만들 수 있다.

이정환 프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인터페이스지만 내부에서는 DSP가 수십 개의 음향 파라미터를 동시에 계산해 원하는 성향의 사운드를 구현한다”며 “운전자는 복잡한 오디오 지식 없이도 직관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베오소닉은 음향 기술을 단순화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기술을 사용자가 의식하지 않도록 설계한 사용자 경험(UX)에 가깝다.

자동차 오디오는 이제 '스피커 경쟁'이 아니다

이번 하만 카랩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것은 단순히 좋은 스피커나 높은 출력이 아니었다. 자동차 오디오는 이제 얼마나 많은 스피커를 넣었는지를 경쟁하는 시대를 지나, 차량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고 제어하느냐를 겨루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었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실제 공연장의 공간 정보를 자동차 안으로 옮기려는 기술이고, 베오소닉은 복잡한 음향 조정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인터페이스다. 하나는 공간을 설계하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기술을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경험이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앞으로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차량 오디오는 단순한 편의사양을 넘어 자동차 경험 전체를 완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양재동 하만 카랩 청음실은 그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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