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프로젝트 '반도체' ,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의 과오를 답습하진 않을까
[IT동아 남시현 기자]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세계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 설계 분야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지난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포식’에서 남긴 말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메모리 반도체로의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 반도체 위탁 생산과 반도체 설계 분야로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10년 간 차세대 반도체 원천기술 개발에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설계 기업들을 위해 1000억 원 규모의 전용 펀드를 조성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분야에 13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고 2021년 이후 171조 원으로 투자 규모를 키웠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2030년을 바라보던 시스템반도체 비전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다. 당시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를 따라잡고자 했던 벽은 여전히 격차를 두고 있으며, 10%로 잡았던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1~2%인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설계하는 모바일 AP도 선전하지 못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부문 전반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다행히 삼성 파운드리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반사이익을 통해 테슬라, 그록, 구글, 메타로부터 반도체 계약을 수주했거나 수주를 앞두고 있고,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퓨리오사AI와 리벨리온, 하이퍼엑셀 등의 팹리스 기업이 등장했다. 반도체 설계 및 제조 등 분야에서도 세미파이브, 가온칩스, , 에이디테크놀로지, 코아시아, 에이직랜드 등 디자인하우스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30년에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달성은 불가능한 목표지만 2019년에 뿌린 씨앗으로 과실은 분명 맺어졌다.
속도전, 거점전, 선도전, 핵심에는 ‘반도체’ 집중 투자
절반의 성공이라도 충분히 거두었기에 지난 6월 29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에는 더 큰 기대감이 감돌고 있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피지컬AI, 데이터센터 세 개를 축으로 하는 초대형 국가산업 전략으로 정부가 프로젝트 운용에 필요한 인프라와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2655조 원, SK 그룹은 2100조 원을 투자하기로 해 대한민국의 산업 역사와 체질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분야는 메가프로젝트의 가장 기반이자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다. 정부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속도전(Speed), 거점전(Stronghold), 선도전(Spearhead) 그리고 총력지원체계(Full-support)로 구성된 3S+1F 전략을 가동한다. 속도전은 수도권의 반도체 생산 거점을 조기에 완공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용인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에 위치한 반도체 공장 완공 시점을 각각 7년, 12년씩 단축해 5년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2배 늘린다.
또한 서남권에 800조 원의 반도체 공장 4곳과 협력사 및 인재 확보를 위해 민관 협력으로 제2의 생산거점을 마련한다. 정부는 지난 6일 광주 군공항 부지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로 확정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400조 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 수도권에 이어 호남지역이 세계적인 메모리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거듭나는것이다.

충청권에도 최대 392조 원 규모 투자가 이뤄진다. 삼성 그룹은 충청권에 OLED 및 차세대 디스플레이 라인, HBM 생산 및 패키지 공장, AI 서버용 패키지 기판 공장, 배터리 신공정 라인 등 140조 원을 투자한다. SK하이닉스는 저장장치 및 첨단 패키징에 약 100조 원을 투입한다. 영남권은 삼성과 SK를 포함해 LG, 두산, 한화, 현대자동차 등이 총 312조 원을 투자한다. 이중 부산에서는 제2공공팹 및 전략반도체지원단이 발족하고, 구미는 방산 특화형 시스템 반도체 시험 평가 및 소재 부품 실증 인프라 등이 구축된다. 전반적인 투자는 반도체 분야보다는 휴머노이드 및 배터리 생산, 소형모듈원전, 자율주행 및 미래 부품 제조 등 피지컬 AI와 AI 데이터센터 분야에 집중된다.
메모리 반도체 집중뿐만 아니라 차세대 반도체로 먹거리 확보 나서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유치에 쏠려있지만 눈여겨볼 부분은 ‘선도전’에 해당하는 차세대 반도체 지원 부문이다. 선도전의 목표는 유망한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는 데 있으며, 연구개발과 설계, 실증, 제조에 따른 전주기를 지원하는 데 있다. 차세대 메모리로는 메모리 내에 연산 기능을 추가한 프로세싱 인 메모리, 뇌 신경망 구조를 모방한 뉴로모픽, 트랜지스터를 3차원 적층하는 극미세 적층형 소자가 해당한다.

또한 피지컬 AI를 위한 온디바이스, 온센서 AI 반도체 확보를 위해 K-온디바이스 AI R&D 및 온-센서AI 반도체 R&D 등을 통해 연구개발과 수요를 맞추며, K-AI 반도체 풀스택 사업을 통해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 극한 환경이나 보안 기능을 내장한 국방 반도체 제조를 지원한다. 다양한 형태의 차세대 반도체를 지정한 뒤 분야별 맞춤 지원 및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방침이다.
특히 3대 메가프로젝트 중 하나인 AI 데이터센터 구축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약점인 수요 창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전력, 부지, 인허가 등을 지원하며 민간은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 투자유치 등을 전담해 울산과 동해, 세종에 약 550조 원 규모의 총 8.4GW 규모의 센터를 설립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아시아 내 전체 데이터센터의 25%를 국토 내에 구축하겠다는 것이 전략이다.
특히 서버, 네트워크, 스토리지 기술에 대한 개발 고도화부터 실증, 국내 AI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한 도입 사례 확보가 골자로 들어가며, 해외 클라우드 사업자가 함께 투입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설계한 AI 반도체 등을 서버에 탑재한다면 하이퍼스케일로 사업자가 직접 국산 AI 반도체 운용을 지원하는 구조가 마련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성적서를 토대로 해외 사업 진출에도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AIDC 특별법 통해 국산 AI 반도체 실증 무대와 성과지표 만든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2027년 2월 시행 예정인 ‘AIDC 특별법’을 통해 AI 특화 클러스터를 지정하고 국산 장비 중심의 5MW 테스트베드와 상용 AI DC를 겸용하는 시험장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향후 국내 AI DC로의 진출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전자, 전력, 냉각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의 인증을 지원하고 인력 양성도 나서게 된다. 아울러 AI DC 구축 사업자가 국민성장펀드의 지원을 받을 경우 국산 장비 활용 의무화도 검토하고, 산업정상펀드를 통해 분야별 유망 기업 지원도 진행한다.

국민성장펀드 1호 직접 투자를 받은 리벨리온, 뒤이어 지원받은 퓨리오사AI 두 곳은 당장 AI 데이터센터에 제품을 제공할 수 있어서 다른 기업들보다 지원 우선순위가 높다. 국민성장펀드의 위탁운용사들을 중심으로 엣지 AI 반도체를 제조 중인 딥엑스, 모빌린트, 하이퍼엑셀 등도 지원 목록에 포함될 것이다. 기존의 신경망 처리 장치와 결이 다른 가속기 구조, 가령 하이퍼엑셀의 LPU, 디노티시아의 VDPU, SK하이닉스의 PIM, 페블스퀘어와 자람테크놀로지 등의 뉴로모픽 반도체 등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AI 데이터센터에 이들이 만든 AI 반도체가 의무 혹은 우선 제공된다면 다각적인 운용 성적서를 확보해 해외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시장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문제는 AIDC 특별법을 통해 국산 장비 도입을 의무화하면 WTO 보조금 협정, 한미 FTA 통상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 의무화를 확정하지 않고 검토 단계에 두는 이유가 해외 이해관계자들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어떻게 국산 장비 도입을 지원할지가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메가프로젝트,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보다 상세한 그림으로 그려져
2019년 발표된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과 2026년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은 수요와 공급의 흐름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삼성전자와 정부만 손을 맞잡아 발표했다. 당시 사업으로 빠른 극자외선(EUV) 도입, GAA(게이트 올어라운드) 구조 채택 등으로 앞선 공정 등을 내세울 수 있게 됐지만 거대 설계 고객사들과의 이해상충, 시장 검증 및 수요 창출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결정 자체도 하향식 구조였고 메모리 분야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비메모리 분야에 적용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오늘날 대한민국 반도체 시장의 기틀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3대 메가프로젝트는 철저히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고, 다자간 참여와 민간 주도의 투자로 운용하려 한다. 자칫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문제점,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언제까지 진행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시점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톱니바퀴의 설계 자체는 굴러가게끔 구성됐고, 삼성전자 하나가 아닌 SK하이닉스와 여러 대기업들이 모두 복합적으로 나서는 그림이다. AI 반도체 스타트업과 관련 업계 역시 힘을 보탤 수 있는 설계다.
반도체로 인한 국가 성장은 착시··· 실질적인 성장세로 전환해야
한국은행은 2026년 1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을 5년 6개월 만에 최고치인 1.7%로 보고고, 연간 GDP 성장치가 3%를 넘어 최대 4%까지 상향 조정할지 고려 중이다. 이중 반도체 제조업의 성장 기여도는 무려 55%로 완전히 주축에 해당한다. 또 수출의 절반이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됐고 올해 하반기 이후까지 몇 년에 걸쳐 가격이 계속 오를 전망이라 거시경제 전체를 큰 폭으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국가경제 지표는 화려하지만 반도체 자체의 고용 유발이 낮고, 낙수효과도 특정 기업에 집중돼 내수 경제나 다른 제조업 분야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외풍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제 메가프로젝트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행인 점은 2019년과 비교해 우리나라 AI 반도체 시장 자체의 체력은 강해졌고, 시장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다만 투자의 큰 틀이 메모리 반도체를 통해 거둬들인 자본으로 다른 미래 먹거리를 키우는 구조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훨씬 더 세밀하고, 정부가 밀접하게 지원하는 구조가 그려져야 할 것이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