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라이즈 "AI 기술로 봉제 산업 새로운 표준 만들 것" [서울과기대 x 글로벌 뉴스]

[서울과기대 x IT동아 공동기획]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이하 서울과기대)는 예비·초기창업패키지와 메이커스페이스, 글로벌 협업 등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나아가 IT동아와 함께 스타트업의 해외 홍보와 진출을 도울 글로벌 뉴스를 제공합니다. 유망 딥테크 스타트업을 우리나라 내외에 소개합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봉제 산업은 '한강의 기적'을 이끈 주역이었다.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원자재를 바탕으로 1960~80년대 서울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는 세계적인 의류 생산 중심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에 따라 생산 기지는 중국으로, 다시 동남아로 이동했다. 결국 우리나라 봉제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박종호 리프라이즈 대표 / 출처=IT동아
박종호 리프라이즈 대표 / 출처=IT동아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로 봉제 산업을 혁신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딥테크 스타트업이 있다. 주식회사 리프라이즈(Leaflyze)다. 박종호 리프라이즈 대표를 만나 사업 전략과 향후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전공·이력 살려 창업 결심

2024년 설립된 리프라이즈는 AI 기반 봉제 자동화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사명은 원단을 다루는 주력 사업의 특성을 살려 '잎사귀(Leaf)'와 '분석하다(Analyze)'를 합쳐 지었다. 박종호 대표에 따르면 잎사귀는 원단과 닮아 순화시킨 표현으로, '원단을 분석한다'는 뜻을 사명에 담았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박종호 대표는 대학원에서 AI와 그래픽스를 세부 전공으로 선택했다. 졸업 후 딥러닝 기반 머신 비전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수아랩에 입사, 카메라 기반으로 시각 검수를 자동 처리하는 AI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어 거대 언어 모델(LLM)과 맞춤형 AI 솔루션 개발에 주력하는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로 이직했다. 이곳에서 이미지 또는 문서에 포함된 문자를 자동으로 인식해 텍스트 데이터로 변환하는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솔루션을 개발하며 또 한번 성장의 시간을 가졌다.

박종호 대표는 "수아랩 초창기에 연구요원으로 입사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이 실제 산업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관심이 많아 더 열정적으로 노력했다"면서 "수아랩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창업을 생각하게 됐다. 창업 전에 AI를 대표하는 스타트업도 경험하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해 업스테이지 이직을 선택했다. 1년 반 정도 근무한 후에 창업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고 퇴사했다"고 회상했다.

AI 전문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박종호 대표는 여러 창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시도하다가 봉제 산업에 주목했다. 봉제 산업은 오랜 역사로 검증된 가치를 지녔음에도 복잡한 구조와 이해관계 속에 많은 비효율이 쌓여 있었던 것. 박종호 대표는 봉제 산업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정 자동화 솔루션’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 자신을 포함한 팀의 역량과 부합한다고 생각, 리프라이즈 창업을 결심했다.

AI 전문가, 전통 봉제 산업 혁신 위해 의기투합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박종민 CPO, 이승환 CTO, 박종호 대표 / 출처=IT동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박종민 CPO, 이승환 CTO, 박종호 대표 / 출처=IT동아

리프라이즈는 박종호 대표를 중심으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과 3D 비전 AI를 연구한 이승환 CTO, 로봇 관제 시스템 개발을 진행한 카이스트 출신의 박종민 CPO 등 AI 전문가 3명이 뭉쳤다. 이들은 AI와 로보틱스 기술로 봉제 산업 전 과정을 혁신하는 데 집중했다.

리프라이즈의 대표 서비스는 '테디파이(Teddify)'다. 테디파이는 초고속 봉제 ODM(제조자개발생산) 서비스로,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6개월 이상 걸렸던 기존의 봉제 제품 개발 및 생산 과정을 한달로 단축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박종호 대표는 "인형과 같은 굿즈 시장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제품을 개발하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 된다"면서 민첩한 제조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테디파이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현실 세계의 사물, 시스템, 환경을 가상공간(디지털 환경)에 똑같이 복제한 후 센서·IoT 등에서 수집된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동·분석·예측하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고객이 새로운 봉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시제품(샘플)을 한번 만들 때마다 1~3주를 기다려야 했다. 디지털 트윈 기술 기반의 가상 샘플 개발 시스템을 탑재한 테디파이의 경우 최소 하루 만에 시제품의 형태를 확인 및 수정하며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고객은 테디파이를 통해 1~3주 기다려야 하는 시제품을 가상화된 형태로 빠르게 확인 및 수정 가능하다 / 출처=리프라이즈
고객은 테디파이를 통해 1~3주 기다려야 하는 시제품을 가상화된 형태로 빠르게 확인 및 수정 가능하다 / 출처=리프라이즈

로봇 기반의 생산 공정 자동화 기술 역시 테디파이의 핵심이다. 리프라이즈는 봉제 공정의 3단계 재단(Cutting), 재봉(Making), 완성(Trimming) 가운데 재단부터 차례로 자동화를 시작한다. 이에 현재 리더-팔로워 로봇으로 원격 재단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박종호 대표는 "사람이 작업하면 그와 연결된 로봇이 그대로 따라 하며 학습한다. 생산 작업과 데이터 축적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부터 로봇이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 로봇을 학습시키기 위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생산하는 것도 중요해서 리더-팔로워 로봇을 개발하게 된 것"이라면서 "사람과 로봇이 함께 작업하며 자동화 학습 기간을 단축한다. 생산 가동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동화 솔루션 도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내년 초부터는 원격 재단 자동화 시스템을 현장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리프라이즈에 따르면 테디파이를 통해 봉제 산업 내 고질적인 인건비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봉제 산업의 경우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구조인 만큼 생산 원가에서 인건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관련 업체는 인건비가 낮은 국가로 점차 이동하며 시장과 멀어지고, 결국 트렌드를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박종호 대표는 "테디파이는 로봇 전 자동화로 인력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시장과 인접해 트렌드 반영이 빠르고 배송 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는 구조가된다"고 강조했다.

기술 판매보다 직접 적용…빠르게 가치 검증

박종호 대표는 리프라이즈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직접 운영'을 꼽았다. 일반적인 기술 스타트업은 개발한 솔루션을 현장에 판매 및 제공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리프라이즈는 직접 개발한 솔루션을 자체 제조 시스템에 적용, 해당 기술의 실질적 가치를 빠르게 검증할 수 있도록 한다.

또 박종호 대표는 "리프라이즈는 봉제 산업을 직접 운영하는 주체가 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우리 기술이 실제로 얼마나 비용을 절감하고 시간을 단축하는지 즉시 측정 가능하다. 기술 판매를 위해서는 가치 검증, 산업 인식 제고, 여건 마련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직접 운영 방식이 궁극적으로 기술의 가치를 확인하는 데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프라이즈가 자제 개발 및 제작해 상품화를 앞두고 있는 호랑이(왼쪽)와 토끼(오른쪽) 인형 / 출처=리프라이즈
리프라이즈가 자제 개발 및 제작해 상품화를 앞두고 있는 호랑이(왼쪽)와 토끼(오른쪽) 인형 / 출처=리프라이즈

리프라이즈는 대기업의 봉제 굿즈는 물론 호텔의 조형물 작업, 로봇 웨어 등을 주문 제작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테디파이를 활용하면 제품 제작 기간이 단축되는 데다가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어 고객사 반응이 좋은 것. 뿐만 아니라 자체 개발 및 생산하는 제품도 다수다. 호랑이와 토끼 인형이 대표적. 박종호 대표는 "우리나라 봉제 산업의 거점을 정착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만큼 한국적인 것을 테마로 자체 상품을 개발 중"이라며 "민화에서 영감을 받아 '호작도'의 호랑이와 '토구도'의 토끼를 상품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리프라이즈는 인건비보다 기술로 경쟁한다. 시장과 가까운 곳에서 빠르고 유연하게 생산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 봉제 산업을 다시 우리나라로 불러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리프라이즈 창업 초기부터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박종호 대표는 "봉제 산업이나 제조 경험이 없었다. 이 분야의 노하우는 논문이나 검색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려웠다"며 "직접 경험하면서 봉제 사고도 많이 경험했다. 순서가 바뀌거나 방식을 다르게 한 경우 결과물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봉제 산업 종사자들만 아는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박종호 대표는 숙련자를 찾았다. 리프라이즈의 진정성을 알리면서 협력사도 점차 늘었다. 숙련자의 노하우를 익히면서 어떤 부분을 기술로 바꿔야 혁신적일지 알게 됐고, 이를 테디파이에 적용해나갔다.

리프라이즈는 봉제 기술자가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운 작업 숙련도 역시 쌓으며 경쟁력을 갖춘다 / 출처=IT동아
리프라이즈는 봉제 기술자가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운 작업 숙련도 역시 쌓으며 경쟁력을 갖춘다 / 출처=IT동아

또 당근마켓에 '인형 만드실 분' 구인 공고를 올리고, 사옥 앞에 '미싱하실 분 구함' 입간판을 세웠다. 봉제 경력자를 아르바이트 형태로 고용, 함께 작업하며 그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시간도 가졌다. 박종호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봉제 전문 인력을 재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을 가장 우려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봉제 기술자가 많이 찾아왔다"며 "기존에는 봉제가 박봉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우리는 기술로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한 만큼 적정한 대우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세대가 봉제 산업에 진입하려면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외 진출도 전략적으로

리프라이즈는 올해 손익분기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박종호 대표는 "보통 봉제 제조업은 2년 동안 손익분기를 넘기기 어렵다. 봉제 산업에 있지도 않았던 우리가 창업 1년 만에 손익분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리프라이즈의 당면 과제는 규모 확대다. 봉제 공장 인수 또는 설립을 검토 중이며 인력 및 생산 상태 관리 등 안정적인 시스템도 자체 개발할 예정이다. 박종호 대표는 "규모를 키울 때 새로운 문제들이 터질 수 있다. 이를 잘 대비하는 것 가장 중요하다. 아직 검증해야 할 솔루션도 많지만 차근차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리프라이즈는 메이드 인 마켓 전략으로 해외 진출도 꿈꾼다 / 출처=IT동아
리프라이즈는 메이드 인 마켓 전략으로 해외 진출도 꿈꾼다 / 출처=IT동아

리프라이즈는 '메이드 인 마켓(Made in Market)' 전략을 해외로 확장하는 것을 꿈꾼다. 박종호 대표는 "봉제 산업은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다시 동남아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멀어질수록 소통이 느려지고 비효율이 발생한다. 근본적 해결책은 시장 근처에서 기술로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자동화로 인력을 줄이면 총 생산 단가는 낮아진다. 여기에 물류·통관·창고 비용까지 절감되면 동남아 생산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에서 경쟁력 있는 단가를 만들 수 있다면 일본 도쿄나 미국 뉴욕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소 인력 자동화 봉제를 검증한 후 일본부터 진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진출에도 청신호를 켠 리프라이즈는 사업 성장성을 인정 받아 올해 서울과기대 초기창업패키지 글로벌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박종호 대표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화 자금을 지원받았는데 원격 재단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네트워크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받았다. 이때 해외 진출 기회를 탐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종호 대표는 "우리나라 봉제 산업이 쇠락했지만, 리프라이즈가 다시 부흥시키고 싶다. 봉제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것이 리프라이즈의 목표"라고 거듭 강조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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