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 메타버스 다음은 AI? 반복되는 'AI버블론'의 정체는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AI 버블론’은 인공지능(AI)으로 인한 혁신은 과장됐고, 투자 대비 효용성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인공지능에 전례없이 투자하다 보니, 작은 부정적 신호에도 시장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지금의 시장을 2000년 대 초반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닷컴버블은 1995년에서 2000년 사이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만능론을 바탕으로 전 세계 금융 시장의 기대가 인터넷 관련 산업에 집중된 현상을 말한다. 당시 나스닥 지수는 5년 간 600%가 올랐고, 인터넷’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적자기업은 물론 매출도 없는 회사들도 수천 억 원대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주가는 2000년 3월 정점을 달성한 뒤 2002년 10월까지 약 78%가 폭락했다.

AI가 산업 전반에 등장하고 있지만 그만큼 AI 확산이 버블이라는 인식도 커져가고 있다 / 출처=제미나이 AI 생성
AI가 산업 전반에 등장하고 있지만 그만큼 AI 확산이 버블이라는 인식도 커져가고 있다 / 출처=제미나이 AI 생성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딜룸.CO가 집계한 2024년 글로벌 벤처캐피털 투자 중 AI에 대한 투자금액은 2023년 대비 62% 증가한 1100억 달러(약 161조 원)를 기록했다. 전체 벤처 투자 시장에서 AI가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달하며 비 AI 분야 투자는 12% 감소했다. ‘매그니피센트 7’으로 불리는 미국 빅테크 기업 7곳의 시가총액도 2025년 10월 기준 20조 9000억 달러(3경 743조 원)로 최고조를 기록한 바 있다.

AI에 돈이 몰리는 이유, 버블론이 시장을 흔드는 이유

AI 시장에 막대한 자본과 연구개발비가 몰리는 이유는 정치, 경제, 산업구조 전체가 AI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어서다. 금융, 제조, 설계, 반도체, 의료, 국방, 교육, 물류, 공공 및 행정 등 ‘모든 산업에 들어가는 범용 기술’로 인식된다. 투자자들은 AI가 국가 전략, 기술적 전환점이 모두 맞물려 새로운 산업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AI는 모든 이용자의 모든 분야를 위한 범용 기술로서 발전하고 있다 / 출처=엔비디아
AI는 모든 이용자의 모든 분야를 위한 범용 기술로서 발전하고 있다 / 출처=엔비디아

개인 단위에서는 문서 작성이나 사진 합성 등 단순 지식노동부터 생산성 업무를 대체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 속도가 늘어나고 업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쌓아온 막대한 데이터를 가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거나 직접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AI 개발을 지원하고 인프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모두가 일상 속 작은 부분부터 다국적 기업들에 이르는 거의 모든 분야에 AI가 스며들고 있음을 체감한다.

매출 높아도 주가 폭락? 시장의 기대치 비성장적으로 높아져 있는 상태

AI 버블론은 기업들의 실적 발표 때마다 고개를 든다. AI 인프라 임대 기업 코어위브(CoreWeave)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약 13억 6000만 달러(약 1조 9832억 원)로 시장의 예상치인 12억 9000만 달러(1조 8809억 원)를 상회했다. 그럼에도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약 6% 하락했고, 최근 5일 새 24%가 빠졌다. 실적은 영업이익률이 감소했고, 데이터센터 파트너 사의 건설 및 납기가 지연된다는 공시도 있었다.

코어위브의 경우 엔비디아가 투자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유독 조정이 크게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AI 테마주로 분류되는 거의 모든 기업이 실적 발표마다 기대치 충격에 극도로 민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AI 기업들 대다수가 매출이나 이익대비 주가수익률(PER)을 너무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의미다. 매출이 높건 말건 ‘기업의 성장 속도가 유지될까’라는 인식이 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오픈AI의 대규모 데이터 센터 구축에 1000억 달러(약 145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 출처=오픈AI
엔비디아는 최근 오픈AI의 대규모 데이터 센터 구축에 1000억 달러(약 145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 출처=오픈AI

AI 버블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AI가 아직 극적인 수익을 내거나 산업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구개발이나 투자 금액이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높은 것도 한몫한다. 자본화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카르타(Carta)가 스타트업의 투자금을 분석한 결과, 비상장 AI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금은 비 AI 기업과 비교해 42%가 더 높았고, 시리즈 B 단계에서는 50% 더 높았다. AI가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기술적 약속을 전제로 더 높은 금액을 투자받는 것이다.

게다가 LLM 등 범용 기술을 다루는 AI 기업들은 추후에 AI가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줄 것을 전제로 더 높은 기업 가치를 약속받는다. 재무 컨설팅 기업 핀로(FINRO)가 상위 30개 AI 기업의 2024년 매출 배수(Revenue Multiple)를 분석한 결과 AI 스타트업은 평균 17.8배의 매출 배수를 인정받는다. 대규모 언어모델과 인적 자원 관리, 검색엔진은 성장 잠재력이 더 큰 것으로 평가됐다. 매출배수는 기업이 미래 창출할 매출에 대해 현재 얼마만큼의 가치를 인정하는지를 계산한 것이다. 즉 ‘순이익이 나지 않음에도 현재 자금을 투입해 향후 큰 가치를 창출할 것’을 전제로 투자가 이뤄진다.


AI를 통해 수익화를 내고 있는 사례는 극소수다. 세일즈포스의 경우 고객관계관리 데이터와 AI를 엮은 뒤 이를 자동화하는 방식으로 수익화를 이뤄냈다 / 출처=세일즈포스
AI를 통해 수익화를 내고 있는 사례는 극소수다. 세일즈포스의 경우 고객관계관리 데이터와 AI를 엮은 뒤 이를 자동화하는 방식으로 수익화를 이뤄냈다 / 출처=세일즈포스

수익성 모델이 불확실한 점도 AI 버블론의 주요 화두다. 시장조사기업 IDC는 기업들의 AI 투자 중 57%는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에 집중되고 있지만, 생성형 AI 설루션을 실제 생산 단계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기업은 전체 26%에 불과하다고 집계했다. 이는 투입한 자본 대비 실제 성과가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장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그래픽 카드 담보 대출’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AI 훈련을 위해 그래픽 카드를 대단위로 수급하고 있고, 수요가 몰리면서 몇 년째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이다. 이때 현금 흐름이나 운영 자금이 부족해진 스타트업들이 그래픽 카드로 담보 대출받기 시작했고, 람다, 코어위브 등 AI 인프라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금융 상품화했다. 금융 기관들 역시 그래픽 카드가 장기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수 있는 ‘자산’으로 인식하고 자금을 빌려준다.

AI 버블론은 이성에 입각한 경계의 목소리··· 주의 기울여야

GPU 담보 대출의 등장은 시장의 비이성적인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위험 신호다. GPU는 설치 즉시 가치가 하락하고 신제품이 등장하면 자연스레 수요와 가치가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금융상품으로 한 것은 GPU의 잔존 가치에 일반적인 시장 논리가 통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스타트업들이 GPU를 담보로 대출했다는 말도 그만큼 사업상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는 말이 된다. AI에 몰린 과도한 자금으로 야기된 위험이 시스템 내부에 축적되고 있다.

AI 버블론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매번 새로운 산업과 기술 혁신이 등장할 때마다 과열, 붕괴, 정착의 과정을 거쳐왔다. 최초의 투기 버블인 네덜란드 튤립 버블을 시작해 19세기 영국 철도 버블, 20세기 자동차 버블, 라디오 버블, 텔레비전 버블, 트랜지스터 및 전자공학 버블, 메인 컴퓨터를 공유해서 쓰는 컴퓨터 타임쉐어링 버블, PC 버블, 닷컴 버블까지 모든 과정이 과열, 붕괴, 정착의 과정을 거쳤다. 기술보다 서사로 투자를 이끌어내고, 언론과 정치, 시장이 모두 과열되는 양상도 늘 같았다.


지난 10월에는 GPU 담보 대출을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까지 등장했다 / 출처=USD.AI
지난 10월에는 GPU 담보 대출을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까지 등장했다 / 출처=USD.AI

하지만 버블이 붕괴되는 시점에 늘 혁신이 있었다. 철도 버블도 회사는 망했지만 선로가 남아 산업혁명의 주축이 됐고, 컴퓨터 타임쉐어링 버블도 오늘날 클라우드와 가상화 기술로 계승됐다. PC 버블은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을 낳았고, 트랜지스터 버블은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기반이 됐다. AI 버블론은 결국 과도하게 자금이 집중된 것에 대한 경계론이다. 설사 버블이 붕괴된다고 해도 기술과 인프라는 남아서 혁신이 시작될 것이다.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인류사에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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