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메모리 수요 입증’ SK하이닉스 실적으로 내다본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 흐름은?
[IT동아 강형석 기자] 2025년 7월 24일 공개된 SK하이닉스 2025년 2분기 실적은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성장이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했다. SK하이닉스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매출액은 22조 2320억 원, 영업이익 9조 2129억 원, 순이익 6조 9962억 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는 매출과 영업이익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4년 4분기 실적을 뛰어넘은 수치다. 이전 분기 실적과 비교해도 매출 26%, 영업이익 24% 증가했다.
투자 시장은 SK하이닉스의 2025년 2분기 실적이 예상을 상회할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 메모리 제조 기업 마이크론이 2025년 6월 26일 발표한 2025년 2분기 실적에 따른 것이다. 마이크론은 2025년 1분기 대비 15.5% 증가한 93억 달러(약 12조 6256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디램(DRAM) 부문 71억 달러(약 9조 6389억 원), 낸드 플래시 부문 22억 달러(약 2조 9867억 원)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디램(DRAM)과 낸드플래시 모두 예상을 웃도는 출하량을 기록하며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는 입장이다. 인공지능 가속기에 쓰이는 고대역폭 메모리(HBM3E)의 판매 확대, 고속저장장치(SSD)의 응용처 확대 등이 실적에 영향을 줬다.
SK하이닉스의 강력한 성장의 배경에는 엔비디아가 있다. 2025년 1분기 매출액 기준,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점유율이 80%에 달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업 트렌드포스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전 세계 HBM 부문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52.5%), 삼성전자(42.4%), 마이크론(5.1%) 순이었다. 대부분 인공지능 가속기에 탑재되는 HBM3E 메모리로 한정하면 점유율은 더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HBM 수요 가속화, 차세대 경쟁도 치열
고대역폭 메모리(HBM)은 디램을 수직으로 쌓은 뒤, 디램 사이를 관통하는 전극을 설치해 용량과 처리속도를 확보했다. 실제 일반 디램의 데이터 통로는 32비트지만 HBM은 1024비트다. 데이터 입출력 통로가 많기 때문에 전송속도가 낮아도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다양한 용량의 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인공지능 연산 장비에 HBM 메모리를 쓰는 이유다.
HBM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업 가트너는 2028년 전체 디램 시장 내 HBM 비중은 30.6%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 장비 시장의 성장이 있다.
HBM 판매량에 영향을 줄 인공지능 장비 수요는 여전히 높다. AMD와 엔비디아 모두 사우디아라비아 인공지능 기업 휴메인(Humain)과 500메가와트(MW) 규모의 데이터센터 장비 공급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유럽, 동남아 등과 국가 기반 인공지능 시스템인 소버린 AI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대중국 제재로 수출 제한 대상이었던 인공지능 장비들도 다시 투입될 예정이다. 최근 엔비디아는 대만 TSMC에 중국용 인공지능 가속기 H20 칩 30만 개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웰 이전 세대인 호퍼(H100) 기반으로 만들었다. 미국 바이든 정부 시절 제정된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제한 기준에 맞춰 호퍼 대비 성능을 낮췄지만 HBM3 메모리가 탑재된다.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통제 지침은 ▲메모리 대역폭 1400기가바이트(GB) 이상 ▲데이터 입출력 대역폭 초당 1100GB 이상 ▲종합(메모리ㆍ데이터) 대역폭 초당 1700GB 이상일 경우 중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바 있다.
AMD도 인스팅트 MI308, MI309 등 중국 수출 사양에 맞춘 인공지능 가속기 수출길이 열렸다. 두 인공지능 가속기에도 HBM3 메모리가 탑재되기에 생산량에 따라 HBM 메모리 수요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HBM3, HBM3E 메모리 외에도 차세대 제품 경쟁도 치열하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3월, 주요 고객사에 HBM4 샘플을 공급하며 초격차 전략을 전개했고 16단 제품 개발 청사진까지 제시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10나노미터 기반 1C 디램을 HBM4에 적용해 성능과 전력 효율 등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마이크론도 HBM4 메모리 샘플을 고객사에 제공했으며 2026년 내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HBM4는 데이터 통로를 1024비트에서 2048비트로 확장했다. 이 외에도 메모리 가장 아래에 고객사의 요구에 맞춘 연산 회로 통합이 가능하다. 더 이상 표준화된 부품이 아니라 특정 인공지능 가속기에 맞춰 설계되는 고객 맞춤형 설루션으로 진화함을 뜻한다.
파운드리 경쟁 밀린 삼성전자, 테슬라로 반등?
2025년 7월 28일,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165억 달러(약 22조 9944억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삼성전자 지난해 전체 매출의 7.6%에 해당하는 규모로 파운드리 부문이 단일 고객과 체결한 계약 중 최대 규모다. 생산하게 될 칩은 AI6로 테슬라 완전자율주행(FSD) 기능 외에도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슈퍼컴퓨터 도조 등 테슬라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생태계 전반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X(구 트위터)에서 “삼성전자는 현재 AI4 칩을 생산하고 있지만 텍사스 신규 공장을 통해 차세대 AI6 칩 생산에 집중할 예정이다. AI5 칩도 대만 TSMC에서 먼저 생산한 후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계약은 수조 원대 적자로 어려움을 겪던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대형 고객사 확보 실패로 고전해 왔다. 반도체 생산량 및 품질에 영향을 주는 수율 때문이다. 그 결과 전 세계 시장 점유율도 TSMC에 크게 뒤처진 상태다. 시장조사기업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매출액 기준)은 TSMC 67%, 삼성전자 11%다.
테슬라와 맺은 계약이 삼성전자의 점유율 상승에 큰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 속에 체결된 계약이어서 큰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 정부 정책에 따라 자국 내 생산 비중을 확대한다면 미국 파운드리 시장 공략에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변수는?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은 성장세지만 변수는 있다. 먼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준비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예상과 달리 진행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오픈AI를 중심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소프트뱅크, 엔비디아 등 민간 기업들이 협력해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초기 1000억 달러(약 139조 1700억 원)를 투자하고 2029년까지 최대 5000억 달러(약 696조 1000억 원)를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하지만 오픈AI와 소프트뱅크와 의견 대립, 투자금 확보 난항 등 여러 문제로 계획이 대폭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출범 후 6개월간 단 한 건의 데이터센터 계약도 맺지 못해 단기 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현 목표는 올해 말까지 오하이오주에 소규모 데이터센터 하나를 건설하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데이터센터 설립 부지를 놓고도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간 이견도 문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프트뱅크가 지원하는 에너지 개발 업체인 SB에너지가 소유한 부지의 사용 여부를 놓고 오픈AI와 복잡한 논의가 오가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투자금도 당초 1000억 달러(약 139조 1700억 원)가 아닌 580억 달러(약 80조 7186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 사프라 카츠(Safra Catz) 오라클 최고경영자는 2025년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스타게이트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 프로젝트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관세 부과도 변수다. 2025년 7월 27일(미국 현지 기준)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미국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 수입에 대한 국가안보 조사 결과를 2주 이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정책에 대응하고자 삼성전자, TSMC 등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투자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관세는 2025년 9월 이후 기업 실적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장 가격 인상에 따른 인공지능 기업의 대응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