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생성형 AI의 다음을 준비한다면, 지금 ‘양자 컴퓨팅’에 주목하라
[IT동아] 최근 주요 기술 컨퍼런스와 글로벌 시장 보고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이다. 전문가들은 생성형 AI가 현재의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면, 그 다음 물결은 양자 컴퓨팅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생성형 AI의 놀라운 성과 이면에는 방대한 연산 자원이 필요하며,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양자 컴퓨팅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주요 기업과 각국 정부는 양자 기술을 차세대 전략 기술로 분류하고, 대규모 투자와 로드맵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혁신했다면, 양자 컴퓨팅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기술의 한계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양자 컴퓨팅은 기존 컴퓨터로는 수년, 수백 년이 걸릴 문제를 단 몇 초 만에 해결할 수 있는 계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AI 모델이 학습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더욱 빠르고 정밀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복잡한 시뮬레이션이나 수많은 변수 계산이 필요한 영역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향후 10년 이내 300큐비트 이상의 성능이 구현될 것으로 전망되며, 기업은 기존 시스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연산 속도와 효율성을 직접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이는 클라우드, 데이터 관리, IT 아키텍처 등 기술 인프라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0과 1로만 구성된 비트(bit) 단위 처리를 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큐비트(qubit) 단위를 이용해 얽힘과 중첩 현상을 비롯한 양자역학 현상을 통해 계산을 수행한다. 기존의 슈퍼 컴퓨터로 몇 년이 걸리던 암호 해제 작업도 양자컴퓨터에선 불과 수 초만에 해결할 수 있다. 2025년 현재, 최신 양자컴퓨터는 100~200 큐비트 수준의 사양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Quantum-as-a-Service’ 형태로 양자 연산 능력을 서비스화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자체 인프라를 보유하지 않아도 양자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며, 이는 기존 클라우드 전략의 재정립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양자 기술을 고려한 IT 전략 수립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양자 컴퓨팅은 산업 전반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금융 분야에서는 사기 탐지와 보안 거래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리스크를 낮출 수 있으며,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유전체 분석 기반 신약 개발, 환자 데이터 보호, 연구 협업 강화가 가능해진다. 물류·운송 분야에서는 복잡한 배송 경로 최적화와 적재 효율 향상을 통해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기후 모델링과 기상 예측 분야에서도 보다 정밀하고 신속한 분석이 가능해져, 정부 기관의 극한 기후 대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이처럼 기대가 큰 기술일수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암호화 체계는 양자 알고리즘에 의해 쉽게 무력화될 수 있으며, 이는 고객 정보, 내부 자산, 핵심 시스템을 심각한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특히 ‘지금 데이터를 탈취해 저장해두고, 미래의 양자 컴퓨터로 해독한다’는 ‘Harvest Now, Decrypt Later’ 방식의 사이버 공격은 이미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양자 사이버 공격에 대비해 설계된 차세대 암호 알고리즘인 양자 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PQC)와, 신뢰할 수 있는 당사자 간에만 암호화 키를 교환할 수 있는 양자 키 분배(Quantum Key Distribution, QKD) 기술에 대한 이해와 도입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단순한 개념 학습을 넘어, 실제 보안 아키텍처 내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모든 암호화 방식이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기에, ‘암호화 유연성(Crypto Agility)’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특정 암호화 방식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경우, 전체 시스템을 재설계하지 않고도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유연한 보안 구조를 의미한다. 기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 없이는, 아무리 진보된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셋째, 양자 기술은 AI, 클라우드, 엣지 컴퓨팅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통합적인 기술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안 담당자나 IT 부서만의 과제가 아닌, 전사적 차원의 리더십과 협업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양자 기술을 검토하는 기업에게 가장 큰 도전은 기존 인프라의 현대화와 기술 전환의 원활한 실행이다. 초기 비용, 통합의 복잡성, 대규모 상용화에 대한 불확실성은 분명 부담 요인이 된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선제적 계획 수립과, 양자 컴퓨팅의 위협에도 안전하게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암호 기술과 보안 체계의 조기 도입이다.
양자 컴퓨팅은 단지 차세대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하던 연산의 법칙 자체를 다시 쓰는 기술적 전환점이다. 이 거대한 변화는 ‘언젠가’가 아닌 바로 지금 시작되고 있으며, 언제나 그렇듯 준비된 기업만이 그 기회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류주복 킨드릴코리아 대표이사
류주복 대표는 서울대 공대에서 학사 및 석사를 거친 후 1989년 IBM에 비즈니스 전략 컨설턴트로 입사했다. 이후 30년 이상 국내 주요 고객들의 IT시스템 구축, 운영, 관리 전반에 걸쳐 통찰력 및 경험을 제공해 왔다. IBM의 GTS 인프라 서비스 사업을 총괄했으며, 킨드릴이 IBM에서 분사한 이후 내부 승진을 통해 2022년 11월 1일부터 킨드릴코리아 대표로 선임되었다.
편집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