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상용화 시기, 전망 엇갈리는 이유는?
[IT동아 김예지 기자] 세계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양자컴퓨팅은 양자 역학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기존 컴퓨터로 수 개월 걸리던 연산을 몇 분 만에 수행하는 기술이다. 양자컴퓨팅은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잠재력을 지닌만큼 관심과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0과 1의 중첩 상태로 병렬 구조를 이루는 큐비트(Qubit)를 활용한 방식으로 양자 시스템을 구현하는 양자컴퓨터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양자 측정 및 연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문제를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상용화 시기 예측…낙관론과 신중론 대립
그러나 양자컴퓨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용화 시기에 대한 전망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5년 이내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예측부터 수십 년 이상 더 걸릴 것이라는 신중한 예측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이러한 논쟁의 불을 붙인 건 엔비디아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1월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양자컴퓨터가 ‘20년 후 상용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양자컴퓨팅 연구가 초기 단계임을 언급하면서 현재 기술로는 큐비트 확장, 오류 보정, 제어 시스템 등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범용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장기적 기술 혁신을 강조했다.
이어 GTC 2025에서는 미국 보스턴에 세계 최대 규모의 가속 양자 연구센터(NVAQC)를 설립할 계획을 밝혔다. 2025년 하반기부터 퀀티넘(Quantinuum), 퀀텀 머신, 큐에라 컴퓨팅 등 기업과 하버드, MIT 등 주요 대학 연구진들과 협력해 연구를 추진한다는 목표다. 엔비디아는 GB200 NVL72 랙 스케일 시스템과 프로그래밍 플랫폼 ‘쿠다(CUDA)-Q’를 활용해 하이브리드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할 계획이다. 자체 하드웨어 개발보다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두는 셈이다. 젠슨 황은 “신약 개발, 신소재 과학 등 문제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특화 분야에 주목하며, 향후 대규모 가속 양자 슈퍼컴퓨터 구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반면에 구글, IBM 등 기존 양자컴퓨터 개발사는 ‘2030년 전후 상용화’를 제시한다. IBM은 점진적인 양자컴퓨팅 생태계 구축에 나서며, 초전도 회로 기반 큐비트 기술로 2021년 127큐비트 이글(Eagle), 2023년 1121큐비트 콘도르(condor) 칩을 개발했다. IBM은 오류 정정 방식으로 권위 있는 ‘표면 코드’ 기술에 주력해 수십 개의 물리 큐비트로 1개의 안정된 논리 큐비트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IBM은 세계 210개 이상의 기업·연구소와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해 11월 국내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도 ‘IBM 퀀텀 시스템 원’을 설치했다. 제이 감베타(Jay Gambetta) IBM 퀀텀 부사장은 지난 3월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퀀텀콤플렉스’ 개소식에서 “향후 양자 프로세서를 확장하고, 3년 내 양자 알고리즘 연구를 진행해 ‘양자 우위’ 입증을 목표한다”며, “이로써 2029년 오류 내성을 갖는 양자컴퓨터를 최초로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도 낙관론에 힘을 보탠다. 2019년 구글은 53큐비트 ‘시카모어’ 프로세서를 통해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고 주장했으나, 기술적 과제가 여전히 존재했다. 이후 2023년 말 105큐비트 ‘윌로우(Willow)’ 프로세서를 공개한 후, 오류 문제 개선에 집중해 2029년까지 100만 물리 큐비트로 1000개 논리 큐비트 구현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5년 내 전기차 배터리, 신약 개발 등 분야에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을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는 기존과 다른 개발 방식을 내세우며, ‘수년 내’ 의미 있는 양자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MS는 양자컴퓨팅 칩 ‘마요라나 1(Majorana 1)’을 공개했다. MS는 초전도 큐비트를 기반으로 개발된 기존 양자컴퓨터 칩과 달리 ‘위상 초전도체(topoconductor)’라는 새로운 물질을 이용해 만들어진 이 칩이 제어 복잡도를 감소하고, 대규모 확장 시 큐비트 조율에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MS는 양자컴퓨터의 근본적 한계인 오류 문제를 극복해 오류율을 기존 대비 10배 이상 개선하고, 손바닥 크기 칩에 100만 개 이상 큐비트를 집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MS는 100만 개 이상 큐비트 탑재 시점을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점으로 보고, 수년 내 양자컴퓨터로 유용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이슨 잰더 MS 부사장은 “2030년 이전 MS의 양자컴퓨팅 칩을 애저(Azure) 서비스로 제공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MS의 마요라나 입자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외에 AWS, 인텔, 아이온큐(IonQ) 등 세계 기업들은 각각 방식으로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인텔은 2023년 12큐비트 ‘터널 폴스(Funnel Falls)’ 프로세서를 공개했고, 지난 2월 일본 국립 연구기관과 2030년 초까지 수 만 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또한 AWS도 지난 2월 오셀롯(Ocelot)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AWS는 해당 칩에 ‘캣 큐비트’ 기술을 적용해 14개의 핵심 큐비트를 통해 오류 수정 비용을 최대 90%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더불어 AWS는 ‘아마존 브라켓’을 통해 클라우드에서 양자컴퓨팅 연구를 지원한다.
양자컴퓨터 상용화, 걸림돌과 전망은?
이처럼 기업마다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기를 다르게 예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양자컴퓨팅의 상업적 실용성에 대한 각기 다른 정의 때문이다. 구글은 특정 산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을 상용화로 보는 반면, 엔비디아는 범용적인 작업에 초점을 두고 기존 컴퓨팅 시스템을 대체하는 시점을 상용화로 간주한다.
이는 곧 양자 유용성을 넘어 양자 우위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에서 비롯된다. 초기 양자컴퓨팅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양자 우위 단계 달성 시점에 대한 주장을 펼치며 단기 상용화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켰으나, 이후 발견된 오류 정정 문제 등 난관에 직면하면서 상용화 시점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게 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점쳐진다.
MS의 새로운 위상학적 접근법이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자컴퓨팅 상용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기술적 난제가 많다는 점은 상용화 시기 예측을 더욱 어렵게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오류 문제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신뢰할 수 있는 논리 큐비트 1개를 만들기 위해 약 1000개 물리 큐비트가 필요하며, 실용적인 연산을 위해 필요한 최소 100개 논리 큐비트를 구현하려면 최소 10만 개 이상으로 물리 큐비트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제어 시스템 복잡도를 가중해 공정 문제에서 연쇄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100만 큐비트 시대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제어 방식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은다. 이러한 가운데, 맥킨지 앤 컴퍼니는 ‘초전도 회로’ 방식이 연산속도, 큐비트 간 연결성, 제어 가능성 등 평가 기준에서 가장 균형 잡힌 성능을 구현함으로써 현재 가장 활발히 채택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양자컴퓨팅은 초기 상용화 단계와 범용 양자컴퓨터 단계로 구분되고 있다. IBM, MS 등은 제한적 양자 우위로도 산업 현장 내 활용이 가능하며 특정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엔비디아가 언급한 완전한 범용 양자컴퓨터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계를 걸쳐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단기 성과 창출 및 장기적 투자 전략을 병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자컴퓨팅 시장의 주요 선두 기업은 클라우드 기반으로 생태계 구축 및 확장에 투자하며, 후발주자는 AI와의 융합을 통한 알고리즘 개발 등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 진입을 시도한다.
양자컴퓨팅 시장은 2024년 약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규모에서 2032년 126억 달러(18조 5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체 양자 기술 시장의 61.7%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각국 정부도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 및 상용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상용화 시점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하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양자컴퓨터의 도입 가능성을 지속적 판단하면서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IT동아 김예지 기자 (y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