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장수 만화 IP 비즈니스의 모범 사례가 되길... '열혈강호' 30주년 콜라보 카페 방문기
[IT동아]
작년 초 극장 개봉된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전국 관객수 480만 명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의 대흥행을 기록했다. 30년 전 1990년 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동명의 연재 만화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 원작)'에 매료됐던 당시 10~20대 독자들의 농구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제대로 저격했기 때문이다. 이후 슬램덩크 관련 굿즈도 날개 돋힌 듯 판매됐고,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 마련된 팝업스토어에는 굿즈 구매를 위한 오픈런이 연일 이어졌다.
슬램덩크 외에도 만화/애니메이션 왕국답게 일본에는 오랜 기간 연재되며 팬들과 함께 성장하는 작품이 제법 많다. 20여 년 이상 연재되는 작품(완결 포함)은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고, '초인 로크(1967년)'나 '고르고 13(1968년)' 같은 작품은 무려 50년 이상 연재되고 있다. 국내에 잘 알려진 '원피스(오다 에이치로 원작)'는 1997년, '명탐정 코난(아오야마 쇼고 원작)'은 1994년 첫 연재가 시작된 후 현재까지 지속되며, 극장판 애니메이션 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기도 하며, 관련 굿즈나 피겨도 전 세계 팬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럼 우리나라에도 이런 장수 연재 만화 작품이 있을까? 1994년 한 만화잡지에 첫 연재된 후 올해 연재 30주년을 맞은 '열혈강호(전극진/양재현 원작)'가 거의 유일하다. 현재까지도 월간지 '코믹챔프'에 월 2회 고정 연재되고 있으며, 단행본으로는 지난 3월에 90권이 출간됐다.
열혈강호는 주인공 '한비광'과 '담화린'이 무림을 배경으로 펼치는 장편 무협만화로, 2014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만화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후 PC용 및 온라인/웹/모바일 게임 형식에 다양한 구성으로 발매돼 인기를 끌었으며, 내년 즈음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으로 열성 팬들의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잘 만든 만화나 웹툰 등은 오랜 시간 팬들과 소통하며, 콘텐츠 관련 IP(지식재산권) 비즈니스 시장을 조성한다. 작품 하나로만 소비되는 게 아닌, 다양한 파생 상품, 굿즈 판매, 부가 사업 영역 확대 등으로 이어지는 폭넓은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른 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전형이다. 국내 유일한 30년 장기 연재 만화인 열혈강호의 콘텐츠 IP 비즈니스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열혈강호의 콘텐츠 IP 비즈니스 전반은 주식회사 열혈강호가 추진한다. 열혈강호의 스토리 작가인 전극진 작가의 친동생 전명진 대표가 2022년에 설립한 회사다. 전 대표는 올해 연재 30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열혈강호 콘텐츠 확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게임 회사에서 콘텐츠 관련 사업 경험을 쌓았고, 연재 시작부터 친형 곁에서 30년 간 작품을 지켜본 터라 사업 목표와 방향, 계획은 명확히 잡힌 상태다.
먼저, 서울 마포구에 연재 30주년을 기념하는 콜라보 카페를 일시 오픈했다. 열혈강호 열성 팬인 카페 점주의 요청으로, 카페 전체 공간 곳곳에 열혈강호 주요 캐릭터와 명장면 스케치를 배치했다. 열혈강호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기고 만족할 만한 인테리어다. 카페 입구에도 주인공 및 주요 캐릭터 등신대를 두어 방문객이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카페 내부에 들어서면 모든 테이블에 부착된 장면 그림이 눈에 띄며, 벽면에도 열혈강호의 주요 장면과 두 작가의 캐리커처 등이 아기자기하게 걸려 있다. 열혈강호 팬이라면 대번에 기억 날 주요 장면이다. 무협 장르 특성상 그림체가 역동적이고 화려해서, 해당 장면이나 스토리를 모르더라도 멋지고 매력있게 보인다.
커피나 디저트 등의 주요 메뉴도 열혈강호 내 이름을 땄다. 이를 테면, '한비광의 오미자아이스티', '담화린의 핑크레몬에이드', '천마신군의 카페라테', '흑풍회 아메리카노' 등이다.
카페 1층 한 켠 팝업 스토어 공간에는 열혈강호 굿즈/상품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카페 점주인 이성진 대표가 도안을 선정하고 직접 제작 의뢰해 만든 제품이다. 이 대표 역시 열혈강호의 '찐팬'으로서, 전명진 대표에게 요청해 이 콜라보 카페 운영과 굿즈 제작 기획을 몸소 추진했다. 상품 판매로 수익을 얻겠다는 생각보다, 이 대표 자신이 갖고 싶은, 소장하고 싶은 열혈강호 굿즈를 만들고 싶었다.
'찐팬'이 기획, 제작한 만큼 굿즈의 완성도, 품질, 구성이 대단히 좋고, 품목도 다양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유명인의 방문 사인이다. 가수 임영웅 씨와 배우 김민교 씨도 열혈강호 팬의 한 사람으로 이 카페를 방문했다.
4명의 주인공 캐릭터가 멋지게 새겨진 소주잔 세트나 장면 배경 티셔츠도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이외 유리/자기 머그컵, 멀티클리너, 쿠션, 메모지, 여권 케이스, 장식용 부채, 견과(호두) 세트 등 팬들을 설레게 할 다양한 굿즈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30주년 기념으로 전통 소주 브랜드인 '화요'와 콜라보한 소주 세트도 출시했는데, 초기 물량인 1만 병이 금세 동이 났다(현재 품절).
이들 굿즈 상품은 현재 콜라보 카페 내 팝업 스토어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데, 콜라보 카페 운영이 종료되면 온라인 판매도 고려하고 있다.
카페 2층 역시 열혈강호 기초 도안과 주요 장면을 담은 액자, 패널이 벽면을 꽉 채우고 있고, 극중 무기인 한비광의 '화룡도'와 담화린의 '복마화령검' 모형도 전시돼 팬들이 들고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다(비매용).
이성진 대표는 카페 이름을 '판타지트(팬들의 아지트)'로 변경하면서 각 분야 콜라보 연계 활동을 기획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열혈강호 콘텐츠도 추진하고 싶어 전명진 대표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마침 올해가 연재 30주년이 되는 해라 전 대표도 흔쾌히 이를 승인했다. 1994년 5월 20일 첫 연재일에 맞춰 2024년 5월 17일 콜라보 카페가 오픈됐다. 당초 계획은 한달간 일시 운영이었는데, 현재 고객들 반응이 예상보다 너무 좋아 기간 연장을 고려하고 있다.
전명진 대표 역시 이번 콜라보 카페에 대한 고객 반응을 통해 열혈강호 IP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재차 확인하고, 좀더 공격적인 콘텐츠 IP 확대 사업에 집중한다. 정식 애니메이션은 현재, 영화 '변호인',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이 제작 중이며, 드라마는 OTT 서비스 통해 10개 시즌 연작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내년 중 만화 연재가 완결될 예정이라 이후 콘텐츠 IP 확장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일본의 경우 '슬램덩크'이나 '드래곤볼', '시티헌터' 같은 인기 만화를 애니메이션화 또는 영화화해 전 세계에 공급함으로써 콘텐츠 사업을 확장하기가 수월한데, 국내에서는 사실상 유아/아동용 애니메이션에만 콘텐츠 시장이 국한돼 있다. 전 대표는 그 원인을 콘텐츠의 부재에서 찾았다. 위 일본 작품처럼 오랜 시간 연재되며 팬들과 함께 호흡, 성장하는 작품이 딱히 없었는데, 이제 열혈강호가 국내 콘텐츠 IP 시장 확장에 마중물 역할을 하리라 그는 기대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이 곳, 열혈강호 콜라보 카페다.
최근에는 열혈강호 원작을 온라인 웹툰으로도 재편집해서, 스마트폰으로 보기 편하도록 세로 스크롤 형식으로 서비스하고 있어 MZ세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전자책 형식으로도 편집돼 리디나 교보문고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작년 전자책 시리즈물 순위에서 2위를 달성할 만큼 열혈강호의 인기는 30년 동안 여전하다. 전명진 대표에 따르면, 내년 본 연재 완결 후 다양한 스토리의 외전 또는 에피소드 연재도 기획 중이다. 열혈강호 '스토리의 확장'과 '콘텐츠 IP의 확장', 두 가지가 전 대표의 궁극적인 사업 목표다. 전국 대상의 팝업 스토어나 작품 관련 전시회, 테마형 요식업장 콜라보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 30년이 열혈강호가 탄생해 각 캐릭터와 스토리, 세계관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시간이었다면, 내년 이후로는 그 세계관을 중심으로 풍성한 파생 작품과 콘텐츠 IP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시기라고 그는 판단한다.
이성진 대표도 이번 열혈강호 콜라보 기획과 굿즈 상품 제작 이후, 국내 인기 온라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작품과도 콘텐츠 IP 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6월 16일에는 열혈강호 전극진 작가 사인회도 판타지트 카페에서 개최한다.
전명진, 이성진 두 대표의 희망과 노력, 그리고 과감한 도전이 충실히 반영되어, 국내 만화 콘텐츠 분야에서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오랜 시간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장수 콘텐츠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