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전통주로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잇는 나루 되겠다, 한강주조 고성용 대표
[KOAT x IT동아]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IT동아는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과 디지털 전환을 이끌 유망한 스타트업을 소개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품, 그리고 독창적인 기술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전국 각지의 농업 스타트업을 만나보세요.
[IT동아 강형석 기자] “나루는 배가 건너는 일정한 곳을 의미하죠. 과거 한양의 나루들은 지금 한강의 대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배를 타고 이동하기 위한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만나 교류를 하는 자리이기도 했어요. 지금 서울에는 여러 대교가 있어 나루터만 남았지만, 다리를 통해 그 의미는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주조의 나루 막걸리가 그렇게 여러 사람과 끊임없이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성용 한강주조 대표는 나루 생막걸리 병 겉면에 인쇄된 세 아이콘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병에는 동그라미 하나와 세모, 직사각형 같은 아이콘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 동그라미는 해와 달, 세모는 산(육지), 직사각형은 나룻배를 뜻한다. 나룻배를 타고 육지로 이동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고 대표는 꼭 담아내고 싶었다고. 그만큼 한강주조의 정체성인 ‘교류와 연결’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강주조는 2018년 12월에 설립된 전통주 스타트업이다. 평소 양조에 관심이 많았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는 게 좋았던 고 대표는 잘 운영되던 성수동 카페를 정리한 후 양조장 설립을 준비했다. 한국에 좋은 전통주가 많은데 ‘전통주는 매우 올드하고 찾기 어려운 술’로 인식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게 창업을 결심한 이유였다.
서울, 성수동 그리고 경복궁 쌀
대한민국 지방 곳곳에는 많은 양조장이 있지만, 서울은 장수막걸리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 거의 없다. 고 대표는 여기에 주목했고 즉시 서울에 양조장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동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결국 과거 화려한 우리 전통문화를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소개하고 문화의 일부로써 꾸준히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성수동에 양조장을 마련하게 된 것도 그 이유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미래로 간다. 한강주조의 비전 같은 건데요. 이것이 잘 어울리는 그런 지역을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수동 같은 데가 없더라고요. 많이 바뀌었어도 아직 성수동은 과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공업지대이기도 했죠.”
지역은 찾았지만, 양조장을 구축할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 대표는 성수동 내 대부분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돌아다녔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들어오라고 손짓했고 현재 사용 중인 공간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식품공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즉시 계약을 진행했다.
양조장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으니 이제 술을 빚어야 할 차례. 그런데 이제 어떤 쌀을 사용해야 되는지가 걸림돌이 되었다. 수입 또는 타지역 쌀을 쓸 수 없는 노릇이다. 다방면으로 확인한 결과 서울에서 쌀이 재배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그게 ‘경복궁 쌀’이었다.
“우선 서울에서 쌀이 나온다는 것을 대부분 많이 모르시더라고요. 그런데 강서구 오곡동과 개화동 주변에 농지 약 86만 평 정도 규모로 쌀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절대농지인 데다 김포평야와 접해 있어요. 한강주조는 강서농협과 거래 중인데 조합장의 말을 빌리면 한강 상류에 더 붙어 있어 물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단일품종인 추청에 우렁이 농법, 항공방제 등 최대한 친환경적 재배를 위해 신경 쓰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쌀로 술을 빚었을 때 맛있다는 것보다 한강주조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쪽에 초점을 두고 접근했습니다.”
나루 생 막걸리의 출시는 2019년 6월, 하지만 출시 약 1년 전부터 원하는 풍미와 목 넘김을 구현하기 위한 테스트를 거쳤다. 고 대표는 나루 막걸리의 장점은 균형(밸런스)과 부드러운 맛이라고 말한다. 알코올 도수는 6도. 이어 같은 공정이지만 더 주류다운 느낌으로 접근해 알코올 도수 11.5도의 나루 막걸리를 선보였다. 묵직한 느낌을 살렸고 단맛, 산미도 강조했다.
한강주조는 ‘삼양주’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는다. 전통 방식 중 하나로 한 탱크에 술을 다 담는 것이 아니라 세 차례로 나눠 담는다. 시기에 맞춰 술을 담아야 하기에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방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의 막걸리 맛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발효는 약 2주 정도 진행되며 발효가 끝난 원액은 저온창고에서 숙성을 거친다. 이후 막걸리를 병입해 하루 냉장 숙성한 다음 출고된다. 최대한 신선하고 일정한 주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이다.
알코올 도수 13도의 나루 약주는 처음 내놓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랜 시간 테스트를 진행했으나 마음에 드는 형태의 술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전통주 수업을 1년 정도 수강하며 약주가 고급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엄청 빠져들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국뽕(애국심을 뜻하는 은어)에 취한거죠. 한강주조를 창업하면서 약주를 먼저 내놓고 싶었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 테스트를 했음에도 마음에 드는 형태가 나오질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약주와 다른 제대로 된 한강주조만의 약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타 약주는 단맛 또는 신맛이 강조되고 질감도 끈적한 경우가 많다. 고 대표는 음식과 잘 어울리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최대한 단맛과 산미의 균형을 맞추고 매끄러운 질감을 살려 지금의 나루 약주를 선보이게 됐다. 그는 회와 같이 마시면 잘 어울리는 술이라고 설명했다.
고 대표의 여러 노력 끝에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최하는 2021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탁주 부문과 종합 부문(올해의 수상작)에서 각각 대상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손에 쥐면서 한강주조는 시장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다.
맛도 중요하지만 ‘디자인’도 중요해
나루 생막걸리와 나루 약주가 다르게 느껴진 것은 아무래도 병의 디자인도 한몫 했다. 요즘은 바뀌었다지만, 과거 막걸리는 불투명한 흰 플라스틱 병에 담긴 것이 떠오른다. 반면 한강주조 나루 생막걸리는 곧게 뻗은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심플한 형상의 아이콘과 제품명 정도가 인쇄되어 있다. 6도 나루 생 막걸리는 파란색 라벨, 11.5도 나루 생 막걸리는 더 얇은 병 디자인에 흰색 라벨로 구성됐다.
나루 약주는 마치 양주의 병 디자인을 닮았다. 게다가 독특한 일러스트의 라벨과 제품명이 눈에 띈다. 특이한 점은 일러스트가 그려진 라벨은 몇 번의 작가 협업을 거쳐 출시됐다는 부분. 구매 시기에 따라 다른 디자인의 나루 약주를 선보인 셈이다.
이유를 물으니 활용도를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각기 다른 일러스트를 적용함으로써 술을 다 마신 후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화병이나 방향제(디퓨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트로피처럼 활용될 디자인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용성을 고려한 병 디자인을 선택한 부분은 인상적이다.
고 대표는 한강주조의 정체성을 담으면서 사람들이 봤을 때 ‘괜찮다, 멋지다’고 느끼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 말한다. 이는 병과 라벨 디자인 모두 포함되는 이야기다. 나루는 배가 건너다니는 곳을 의미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 생활하고 교류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이다. 나루 생 막걸리에 인쇄된 세 아이콘이 이를 의미한다.
쉽지 않은 양조의 길이지만, 전 세계에 우리 전통주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
호기롭게 진입한 양조의 길.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 대표는 깊게 자리한 전통주의 인식을 바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은 여러 유명인이 전통주를 선보이며 점차 인식이 개선 중이라지만, 여전히 전통주가 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게다가 전통주는 숙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니 창업 후 본격적인 운영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농업기술진흥원의 도움도 있었다.
농업기술진흥원은 사업 비용 지원은 물론이고 기업에 도움이 될 다양한 프로그램 지원을 제공한다. 한강주조 또한 기업 운영과 투자 유치를 위한 조언과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받고 있다. 고 대표는 담당자들이 업계를 도와주기 위한 고민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라고.
“현재 지원 2년 차입니다. 우선 사업비 지원이 운영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첫해에는 투자활동(IR) 중심으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투자활동이 무엇이고 주류 생태계에 대해 전문가 조언도 들을 수 있었고요. 피칭 연습도 했습니다. 올해는 네트워킹이나 다른 프로그램도 많이 준비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교류를 통해 한강주조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서서히 숙성되어 본연의 맛을 만드는 전통주처럼 한강주조도 차분하게 다음 단계를 향한 여정을 이어가는 중이다. 우선 증류주에 대한 시장의 흐름에 맞춰 관련 상품을 개발 중이다. 현재 테스트 단계이지만, 만족할 수준의 제품이 나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생산을 위해 증류소도 추가 설립한다.
우선 국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막걸리와 전통주를 소개할 기회를 만들고 나아가 전 세계에 막걸리와 전통주를 알리고 싶다는 고성용 대표. 서울과 우리나라의 발전을 상징하는 ‘한강’처럼 한강주조도 전통주 시장 속에서 목표를 향해 계속 성장해 나가길 기대한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