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초 '반짝' 후…잊혀지는 애플 비전 프로
[IT동아 권택경 기자] 애플이 야심 차게 출시한 비전 프로가 사실상 실패작으로 결론 내려지는 분위기다. 출시 초기 반짝인기 이후 급격히 관심이 식으며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마크 거먼은 28일(이하 현지시각) 뉴스레터를 통해 “몇 주 동안 비전 프로를 한 번도 못 봤다”는 한 애플 매장 직원의 증언을 전했다. 이 직원은 반품 건수가 출시 첫 달 판매량과 같았다고도 덧붙였다.
거먼이 비전 프로의 판매 부진 소식을 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1일 뉴스레터에서도 거먼은 “비전 프로는 그 이전 모든 가상현실(VR) 헤드셋과 동일한 각본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비전 프로의 미국 내 시장 반응을 전했다. 애플 매장 직원들에 따르면 비전 프로 제품 시연 수요는 크게 줄었고, 그나마도 예약한 뒤 나타나지 않은 일이 잦았다.
마크 거먼 또한 비전 프로 출시 초기에는 매일 사용했지만 현재는 일주일에 한 두번만 사용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전 프로는 매일 사용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게 분명해 보인다”면서 “배터리를 연결하고, 부팅하고, 인터페이스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종종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다. 비전 프로를 집어 들길 강요하는 킬러 앱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중고거래 시장에서의 비전 프로 인기도 출시 초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미국 매체 더버지는 애플케어 플러스가 포함된 1TB 용량 비전 프로가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3200달러(440만 원)에 판매 중이라고 전했다. 동일한 구성을 새 제품으로 구매하려면 5000 달러(약 688만 원)를 지불해야 한다. 이외 상당수 비전 프로가 스와파(Swappa) 등 현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2600달러(358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출시 3개월 지난 제품의 중고가 70% 이하로 떨어진 건 특이한 일은 아니다. 다만 웃돈까지 붙어 판매되던 출시 초기 상황과 비교하면, 현재 비전 프로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급속도로 식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애플 전문가로 알려진 궈밍치 대만TF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올해 비전 프로 출하량을 시장 기대치인 70~80만 대를 밑도는 40~50만 대로 줄였다고 전했다. 궈밍치는 미국 외 시장에서의 출시를 앞두고 애플이 비전 프로 출하량을 하향 조정한 건, 미국 시장에서의 수요 부진으로 인해 애플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요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궈밍치는 애플이 비전 프로 후속 제품의 로드맵 자체를 검토 및 조정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당초에는 애플이 2025년에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비전 프로의 보급형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현재는 애플이 내년에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
지지부진하던 애플카 프로젝트까지 포기하고 AI 경쟁에 뛰어든 애플이 비전 프로 반등에 힘을 쏟을 여력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비전 프로가 대중적 흥행을 기대하고 출시한 제품은 아니겠지만, 현재 분위기만 봐서는 1세대 제품으로서 시장을 개척하고, 생태계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데도 실패한 모양새다. 비전 프로를 의식한 듯 확장현실(XR) 헤드셋 개발과 출시를 예고했던 삼성전자, LG전자, 퀄컴, 구글 등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