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g] 트윈피그바이오랩 "FDA 희귀의약품, 면역항암제 개발 박차"
[IT동아 차주경 기자] 세계 의료·제약 업계는 사람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암을 이겨내려 꾸준히 노력했다.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효과 좋은 신물질과 항암제, 항암 기술이 등장했다는 좋은 소식도 들려온다.
세계 수위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우리나라 의료·제약 업계도 속속 성과를 발표한다. 이 가운데 서울홍릉강소특구(단장 임환)로부터 지원을 받는 기업 ‘트윈피그바이오랩’이 발표한 내용을 주목할 만하다. 면역 항암제 ‘TB511’을 앞세워 미국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이하 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Orphan Drug Designation, 이하 ODD)’ 지정을 받은 것.
이들의 기술을 이해하려면 항암제의 종류와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항암제 가운데 먼저 나온 것은 화학 항암제, 약물로 암 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종류다. 효과를 내지만, 암 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부작용도 있다. 그 다음 등장한 것이 표적 항암제, 특정 암 세포만 찾아서 공격하는 항암제다. 효용이 좋지만, 특정 암 세포에게만 효과를 발휘한다. 공격을 받은 암 세포가 내성을 길러 항암제를 견디는 일도 있다.
최근 의료·제약 업계가 주목하는 것이 면역 항암제다. 암 세포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몸 속의 면역 세포를 강화해 우리 몸이 스스로 암 세포를 없애도록 돕는 원리다. 이러면 암 세포 전반에 대응 가능하고, 우리 몸의 자연 치유력을 활용하기에 부작용도 적거나 없다. 하지만, 이 기술에도 한계는 있다.
면역 항암제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면역 체크 포인트 억제제다. 암 세포가 우리 몸 속의 면역 세포를 피할 때 체크 포인트 단백질을 쓴다. 체크 포인트 단백질이라는 가면을 써서 자신이 암 세포라는 점을 숨기는 셈이다. 면역 체크 포인트 억제제는 이 가면을 벗겨 면역 세포가 암 세포를 공격하도록 한다. 세계 면역 체크 포인트 억제제 시장은 40조 원 규모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고형암 가운데 약 20%에만 효과를 발휘한다. 분자량이 큰 탓에 종양의 안까지 잘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
면역 세포 치료제는 암 세포를 공격하는 T 세포를 활성화해서 우리 몸 속에 투여하는 원리다. 효과가 좋지만, 간혹 신경독성 문제를 일으킨다. 치료비도 아주 비싸다. 암 세포를 포함한 종양에 직접 주사해 치료하는 약물,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도 가격이 비싸고 특정 부위에만 사용 가능하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의 TB511은 ‘종양미세환경’을 제어하는 면역 항암제다. 암 세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영양과 혈액을 공급 받을 목적으로 ‘종양 관련 대식세포(Tumor-associated Macrophages, 이하 TAM)’를 활용, 우리 몸 속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또 다른 TAM은 암 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할 때 한결 손쉽게 정착하도록 돕는다. 암 세포와 TAM 등이 만든 공간이 바로 종양미세환경이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은 TB511의 분자량을 아주 작게 만들어 어떤 종양미세환경에든 수월하게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종양미세환경에 들어간 TB511은 먼저 암 세포에게 영양과 혈액을 전달할 혈관을 만드는 TAM을 제거한다. 이어 암 세포의 전이와 정착을 돕는 TAM을 추적 제거한다. 암 세포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만든 장벽을 허물고, 영양과 혈액 공급을 끊어 굶게 하는 동시에 다른 장기로 도망치지 못하게 이동 수단까지 파괴하는 셈이다. 암 세포를 허약하게 만들어 우리 몸 속 T 세포가 수월하게 공격하도록 돕는 원리다.
트윈피그바이오랩 TB511의 장점은 부작용이 적은 점이다. 종양미세환경에만 들어가 암 세포, 암 세포를 돕는 세포들만 공격한다. 동물 실험 결과, TB511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30여 분 만에 종양미세환경을 찾아 침투하고, 12시간~60시간동안 제 역할을 한 다음 자연 분해된다. 분자량이 작은 덕분에 고형 암 전반에 적용 가능하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은 자체 실험 결과 간세포암종의 암 조직을 90% 이상, 비소세포암의 암 조직을 70% 이상 제거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암 조직을 절개하지 않고 치료 가능한 장점도 가졌다. 지금까지 유방암과 전립선암은 대부분 조직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치료했다. 이러면 흉터가 남는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의 TB511을 쓰면 신체 조직을 유지한 채 종양미세환경과 암 세포만 제거하니 흉터가 남지 않는다. 암 세포의 전이를 막는 장점, 다른 항암제와 함께 사용 가능한 장점도 있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은 간세포암종에 초점을 맞추고 TB511의 효능을 증명할 동물 실험을 여러 차례 거듭해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쌓았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들고 FDA ODD의 문을 두드렸다. 이 과정에서 고난도 겪었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이 TB511을 실험해 거둔 성과를 보고, 전문가들은 기전 하나만으로는 희귀의약품 지정도, 고형 암 전반에 활용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했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은 미국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임상시험수탁기관) 기업과 긴밀히 협력해 FDA에 제시할 근거를 차곡차곡 쌓았다. 자문을 받아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고 전문가들의 지적도 충실히 반영했다. 그 결과 ODD의 문을 열었다.
미국은 환자 수가 약 20만 명 미만인 질환을 희귀 질환으로 지정하고, 이들의 치료 기술이나 약물을 연구 개발하는 기업에 다양한 특혜를 준다. 먼저 임상을 포함한 각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금을 감면한다. 허가 신청 비용을 면제하는 한편 임상 시 보조금도 준다. 이어 실제 희귀 질환 치료제를 개발 시 7년간 시장 독점권, 신속한 상용화 지원 혜택이 돋보인다.
덕분에 FDA ODD를 등용문으로 활용하려는 의료·제약 기업은 꾸준히 늘어난다. 세계 시장의 규모도 성장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3년 이미 1730억 달러(약 223조 7755억 원)에 다다랐다. 매년 11.6% 성장해 2028년에는 시장 규모가 3000억 달러(약 388조 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은 FDA ODD 지정을 시작으로, TB511를 범용 면역 항암제로 만들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이미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임상 1상 시험 승인서를 제출했다. 이를 토대로 2024년에는 표준 치료법에 반응하지 않은 고형암 환자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예정이다. 이 결과가 나올 2025년 상반기 즈음에 FDA ODD를 활용, 미국 간세포암종 환자 대상 임상도 시작한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은 TB511로 원료 의약품과 완제 의약품을 만들 세부 계획들을 세웠다. 세계 주요 약품 위탁 제조사를 섭외했고, 임상을 진행할 시리즈 B 투자 라운드도 열었다. 이들은 파트너와 투자금을 토대로 지금까지 완치하기 어려웠던 암, 치료제가 거의 없었던 진행성 고형암의 극복을 시도할 예정이다.
강문규 트윈피그바이오랩 대표는 “FDA ODD 지정을 딛고 2024년을 도약하는 해로 만들겠다. 일본과 미국 등 의료 선진국에서 열린 바이오 컨퍼런스에 TB511을 공개한 이후 IR, 협업 문의도 많이 받았다. 세계 제약사와 협업, TB511의 활용 범위를 넓혀 범용 면역 항암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