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글로벌 개방성 강화 위한 3가지 정책 제안
[IT동아 한만혁 기자]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국내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반대로 국내 시장에 진입하길 원하는 해외 스타트업, 투자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외 스타트업 생태계의 진출과 유입이 활발해지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가 늘고, 고용 효과, 세수 확대, 해외 자본 및 고급 인력 유치 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정책이나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
아산나눔재단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디캠프,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9일 컴업(COMEUP) 2023에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글로벌 개방성 연구’를 주제로 정책 제안 발표회를 열었다. 글로벌 개방성 측면에서 국내 스타트업 정책 및 제도를 진단하고, 원활한 글로벌 개방성을 위한 정책 정책 방향을 제언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글로벌 개방성은 국가 간 창업, 자본, 인재가 원활하게 넘나드는 것을 말한다.
정책 제안 발표회가 열린 컴업은 국내 우수한 창업 생태계를 전 세계에 알리고 해외 투자자 및 스타트업 등 글로벌 창업 생태계와 교류하기 위한 국내 최대 규모 스타트업 행사다. 올해는 오는 1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되며 스타트업 생애주기에 따른 다양한 상황과 이슈를 풀어가는 퓨처토크(Future Talk), 다양한 스타트업의 혁신 스토리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밸리(StartupValley),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를 소개하고 상생 방안을 제시하는 OI 그라운드(OI Ground),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와 교류하는 글로벌 커뮤니티(Global Community)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글로벌 개방성 높이는 3가지 제언
정책 제안은 연구를 진행한 베인앤드컴퍼니의 서효주 파트너가 담당했다. 이날 발표한 제언은 ▲비효율적이고 목적 불분명한 절차와 규제의 완화 ▲정부와 민간 연계 확대 통한 실질적 지원 제도 및 프로그램 퀄리티 제고 ▲글로벌 개방성 확대 정착 위한 인식 및 인프라 개선 등 3가지다.
첫 번째 제언은 비효율적이고 목적 불분명한 절차와 규제의 완화다. 현재 우리나라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창업할 경우 복잡한 절차를 요구한다. 구비 서류가 많고 등기소, 세무서 등 여러 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소요 기간도 다른 국가 대비 2주 이상 더 걸리고 최소 자본금도 1000만 원 이상으로 해외보다 높다. 이에 서효주 파트너는 최소자본금 요건을 낮추고 온라인 법인 설립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국인과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면 외국인의 창업 제약 사항은 한결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창업비자의 경우 학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민간과의 협업으로 사업계획서까지 검토할 것을 권했다. 비자 갱신 때도 매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매출, 사업지 지출, 현지 고용인 수, 월 지급 임금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고 취업 비자 역시 평가 기준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해외 액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탈이 국내 진출을 고려하다 법인 설립의 어려움을 느껴 철회한 사례를 들며 경력 및 자본금 요건을 폐지하고 대신 펀드 운용 현황을 철저히 관리 감독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본사를 해외로 옮길 경우에도 양도소득세를 나중에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두 번째 제언은 정부와 민간 연계 확대를 통한 실질적 지원 제도 및 프로그램 퀄리티 제고다. 해외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우리나라는 3~6개월 단기 교육 후 상금을 수여하는 경진대회 방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는 2~3년에 걸쳐 밀착 교육, 멘토링을 지원한다. 지원금 규모도 큰 편이다. 이에 서효주 파트너는 1년 이상의 장기 지원 프로그램과 기업 밀착 교육/멘토링을 지원하는 대신 국내 창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프로그램 역시 현재 여러 기관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합하고 실제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되는 국가별 특화 프로그램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제언은 글로벌 개방성 확대 정착 위한 인식 및 인프라 개선이다. 서효주 파트너는 인프라의 경우 지금은 정부 주도 민간 연계 방식의 소규모 프로그램이 많은데, 민간 협력을 끌어내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CIC(Cambridge Innovation Center)를 사례로 들면서 자생적 수익 모델을 구축하면서 네트워크의 질을 높이고 정부 기관과 협력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언어적인 장벽도 지적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스타트업 관련 기관 및 사이트 25곳 중 9곳만 영문을 지원하고 그마저도 일부만 제공하는 상황이다. 해외 창업가나 투자자가 정부 관련 사이트를 방문해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서효주 파트너는 글로벌 생태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서비스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개방성 ‘오랜 기간 집중해야’
서효주 파트너는 매년 전 세계 도시의 창업 생태계를 평가하는 스타트업게놈(Startup Genome)의 ‘2023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를 인용해 우리나라의 글로벌 개방성 관련 정책도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글로벌 개방성 점수가 10점 만점에 6점이다. 상위 국가 경우 대부분 9, 10점인 것을 고려하면 다소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2022년 기준 해외 창업 및 진출 스타트업 수는 약 300개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약 2000개, 이스라엘은 약 1600개에 달한다. 해외 자본 비중도 마찬가지다. 국내 스타트업 총투자금 중 해외 자본 비율은 7%지만 싱가포르는 32%, 영국은 25%다.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서효주 파트너는 “글로벌 개방성에서 만점을 받은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 주도 아래 민간의 뒷받침이 이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하며 “우리나라도 정부 정책의 개선과 함께 민간 분야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효주 파트너는 “글로벌 개방성은 시장, 자본, 인재 측면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인재 및 자금 유출, 제도 악용 등 부작용의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이런 부분은 제도적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영국은 글로벌 개방성 강화를 위해 창업가 비자를 신설했으나 악용 사례가 발생하자 스타트업 비자, 이노베이이터 비자로 개편하고 사업 평가를 민간기관으로 이관했다. 글로벌 개방성의 부정적인 측면을 제도적으로 보완한 사례다.
서효주 파트너는 “글로벌 개방성은 오랜 기간 집요하게 집중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개방성 개선 과제를 담당하는 굳건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제언으로 인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하고 글로벌 선도 지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장석환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글로벌 개방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선도국 대비 뒤처져 있다”라며 “오늘 제시하는 3가지 제언이 널리 공유되고 실제 정책에도 반영되어 글로벌 개방성을 개선하는데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글 /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