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g] 지티엘 “항공기, UAM 첨단 부품 맡겨주세요”
[IT동아 차주경 기자] 세계를 누비는 보잉 777과 에어버스 330 항공기.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해외 여행을 갈 때 이들 비행기를 자주 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들 비행기의 부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뼈대 부품을 우리나라의 한 제조 기업이 만드는 점이다. 주인공은 수원대학교 초기창업패키지 참여 기업 '지티엘(GTL)'이다.
지티엘이 활동 중인 분야는 첨단, 고정밀 기계의 부품을 만드는 MRO(Maintenance Repair & Operation, 기업용 소모품과 산업용자재 제작)다. 이들은 그 중에서도 항공기에 집중한다.
배준 지티엘 대표는 비행기를 '인터넷만큼이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기술'로 표현한다. 인터넷은 가상 공간에서 세계를 하나로 묶고 시공간의 제약을 없앴다. 비행기는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므로,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세계를 하나로 묶는 도구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비행기 산업은 꾸준히 성장한다. 비행기 제작과 운용, 수리와 유지보수, 서비스 개발에 이르기까지 관련 산업군도 잘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유망 비행기 산업으로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이 주목을 받는다. 움직이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동성을 가져다준 것이 비행기다. 배준 대표는 이처럼 유망한 비행기 산업의 근간이 부품 산업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그리고, 인터넷처럼 세계를 하나로 묶고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는데 기여하는 비행기 산업에서 역량을 발휘하자는 생각에 지티엘을 세운다.
지티엘은 여객기를 물류 수송기로 바꿀 때 쓰는 부품을 만들어 납품한다. 보잉 777기의 문 부품 전반, 에어버스 330의 바닥 레일 등이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는 부품이지만, 사실은 결코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부품이기도 하다.
사람 수백 명, 화물 수백 톤을 실은 채 하늘길로 수천 km를 날아다니는 항공기는 정밀 기계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항공기를 구성하는 부품의 개수는 약 6000개다. 이들 부품은 한 치의 오차와 한 점의 불량도 없이, 한 날 한 시에 만들어진 것처럼 균일한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 부품의 크기가 단 1mm만 달라도, 무게가 1g만 달라도 피로파괴와 같은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생긴다. 그 만큼 추락과 대형 사고의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세계 항공기 제조사들은 부품 하나하나의 품질과 완성도를 아주 까다롭게 검사한 후 사용한다. 항공기 부품 제조사들은 정밀 가공 능력, 품질이 균일한 부품의 양산 능력은 물론 항공기의 구조 역학까지 고려해서 부품을 만들어야 한다. 항공기의 도면을 철저히 분석하고 재해석, 부품의 정밀 가공과 설계까지 하는 역량도 필수다. 배준 대표가 강조하는 것도 이들 제조 역량이다.
지티엘의 임직원들은 모두가 항공 구조역학 전문가이자, 부품 가공과 설계 경험을 오래 쌓은 경력자다. 지티엘은 이들의 역량이 항공기용 부품의 품질로 고스란히 이어지도록 생산 고도화 체계를 만들어 운용한다.
지티엘이 만드는 부품 모두에 적용하는 공정 시트가 그 사례다. 원재료 가공과 연마, 생산과 품질 검증, 포장 등 모든 부품 제조 과정을 시트에 기록하고, 수치를 비교해서 품질을 철저히 관리한다. 항공기용 부품을 오차 없이 양산한 후에는 3차원 측정기로 완성품의 내외부 품질까지 또 한 차례 검증한다.
고도의 항공기 부품 생산과 검증 체계를 구축했다고 자신하던 지티엘이었지만, 이제 막 문을 연 기업에게 정밀 부품의 제작을 의뢰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 이전에 부품을 만들 때 필요한 소재와 설계도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어렵게 부품 제작 의뢰를 받고 작업에 들어가니, 예상치 못한 가공 문제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정밀 부품을 만들려면 어떤 절삭 공구를 쓸 것인지, 이들 공구와 소재를 어떤 환경에서 운용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 결정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부품 불량이나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배준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수백 번 이상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기술과 경험 내재화의 계기로 삼았다고도 덧붙였다. 나아가 지티엘은 정밀 부품의 조립과 배송 등 산업 전반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연구 개발을 거듭했다. 노력은 점차 성과로 돌아왔다. 조금씩 지티엘에게 정밀 부품의 생산을 의뢰하는 곳이 생겼다. 그럼에도 기업을 운영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이 때 배준 대표는 수원대학교 초기창업패키지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을 듣는다. 초기창업패키지에 선정된 지티엘은 곧바로 수원대학교 창업지원단의 컨설팅과 투자 자문을 받는다. 초기 제조 기업이 가질 속성과 우선 확보할 역량을 점검하고, 시장 조사와 경영 이론을 배웠다. IR 계획서도 마련했다.
배준 대표는 이 가운데 수원대학교 초기창업패키지의 설비 투자 자금 지원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덕분에 지티엘은 부품 제조 설비를 늘리고 생산 시스템 구축을 마쳤다. 투자자들에게 지티엘의 장점과 역량, 성장 가능성을 알린 덕분에 투자 문의도 받았다. 자연스레 이름이 알려지면서 정밀 부품의 수주 의뢰와 납품 실적도 늘었다.
수원대학교 초기창업패키지의 도움을 업고, 지티엘은 정밀 기계 부품 제조 사업을 강화한다. 우선 주력인 항공기 부품의 제작 체계를 고도화한다. 항공기 부품 제조 기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항공기의 동체같은 주요 부위의 조립, 설계를 맡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한 연구소 설립도 검토 중이다.
나아가 이들은 공장 규모를 넓히고 첨단 정밀가공 제조설비도 확충할 계획이다. 정밀 기계 부품을 더 다양하게, 많이 만들 역량을 갖출 목적에서다. 이미 관련 특허 출원과 부품 생산 레퍼런스를 꾸준히 쌓는다. 기술 개발과 생산 역량을 강화해 기업 체질을 튼튼히 하고, 해외 영업 전문 인력도 채용한다. 해외 항공기 제조사와 부품 기업, 수리 담당 MRO 기업들을 직접 만나 지티엘의 이름을 알리고, 부품과 기술 공급 협의를 전담할 인력이다.
일련의 항공기 부품 과정을 토대로, 지티엘은 항공우주 경영시스템인 AS9100, 항공기와 방산 제품의 부품을 만드는 국제 자격을 받았다. 덕분에 이들은 2021년 문을 연 신생 기업임에도 국내외의 주요 항공기 부품 제조사로부터 능력을 인정 받았다. 에어버스 330과 보잉 777 등 항공기의 주요 부품 공급을 10년간 보증 받은 것이 증거다.
배준 대표는 “지티엘은 보잉과 에어버스 등 세계의 항공기 기업에게 주요 부품을 제작, 공급할 정도의 역량을 갖췄다. 기술과 경험을 더 많이 쌓아 항공기 그 자체를 만드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 항공기 부품 제조 기술을 활용해 UAM 부문의 성장도 돕는 기업으로 자리 잡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