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블록체인 판례 (2) 코인의 증권성에 관한 판례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거래소 자체 발행 코인의 증권성에 관한 판례로 본 자본시장법 적용 가능성 (서울남부지방법원 2020. 3. 25. 선고 2019가단225099 판결 등)
“가상자산은 금융투자 상품인가?”
가상자산 구매자 열에 아홉은 ‘투자’를 목적으로 합니다. 매수한 가상자산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 기대하고 그로부터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가상자산에 투자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가상자산은 주식이나 펀드 등과 같은 일반적인 금융투자 상품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원금손실 가능성을 감수하더라도 목돈을 만들거나 굴리기 위해 투자하는 일종의 금융상품입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상자산이 금융투자 상품에 해당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금융투자 상품은 자본시장법에 정의돼 있으며(자본시장법 제2조), 금융투자 상품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상 엄격한 규제가 적용됩니다. 즉, 특정 사업자가 금융투자 상품으로 가상자산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춰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하고(진입규제), 자본시장법 및 금융소비자 보호법 등이 규정한 각종 영업행위 제한 및 불공정거래 규제 등을 준수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가상자산 사업자 입장에서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곧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가상자산이 금융투자상품으로서 자본시장법 적용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 있었습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도 금융투자 상품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2022년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의 경우, 금융투자 상품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가상자산의 경제적 기능, 계약구조 및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 등을 근거로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 적용대상이고, 가상자산 사업자는 자본시장법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를 제기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도 했습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20. 3. 25. 선고 2019가단225099 판결 등).
그러나,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법원 판결은 아직 없습니다. 위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자체 발행한 토큰(이하, F코인)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 상품의 일종인 투자계약 증권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F코인에 구체적인 계약상 권리가 내재돼 있다고 볼 수 없고, 투자자들이 해당 코인을 매수한 가장 큰 동기는 F토큰을 보유해 분배되는 거래소 수익금보다는 토큰 거래 자체로 발생하는 시세차익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F코인이 투자계약 증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른 사안에서도 법원은 금융당국과 같이 가상자산은 자본시장법 규율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5월 말 발생한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시가총액 10위권인 메이저 코인의 가격이 일주일 만에 99.9% 하락해 기록적인 투자손실이 발생함에 따라, 가상자산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 및 가상자산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습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2월경 ‘토큰 증권 발행 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해 증권성이 있는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방향 및 증권성 판단기준을 제시해 가상자산을 자본시장 제도권 내에서 규율할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이후 관련 규제 정비와 가상자산 기본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한편, 검찰은 루나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 증권에 해당함을 전제로 테라·루나 사태 관련자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 가상자산의 증권성에 대한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을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법원이 루나에 대해 증권성을 인정하는 경우, 이미 유통되고 있는 가상자산들도 추후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문제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해당 재판의 추이와 결과를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과연 법원은 가상자산 규제의 시금석이 될 만한 판결을 선고할 것인지,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