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블록체인 판례 (1) 비트코인 몰수에 관한 판례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비트코인 몰수에 관한 판례로 본 가상자산의 법적 취급(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8도3619 판결 등)
“비트열 나열에 불과한 비트코인을 법적으로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가상자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2020년 역대급 활황장을 누린 것이 무색하게 글로벌 경기침체 한파로 얼어붙은 가상자산 시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정보분석원이 발표한 가상자산 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일평균 거래 규모는 무려 11.3조원에 달하였으나, 2022년 하반기 기준으로는 3조원으로 집계, 단 1년 만에 가상자산 시장의 일평균 거래규모가 약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그런데도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여전히 미국, 유럽과 더불어 3대 가상자산 거래시장으로 꼽히며, 가상자산과 가상자산을 활용한 비지니스에 대해 기관, 기업 및 투자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온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실험에서 싹튼 가상자산 시장은 이제 제도권으로 편입돼 그 고유한 입지를 다져 가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지도 약 15년이 흘렀지만,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규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지난 4월경 유럽 의회에서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기본법(MiCA)을 통과시켜 화제가 됐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에 대해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이 부재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상자산을 규율하는 국내 법률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현행 법률 중에서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만이 유일하게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습니다. 다만, 특정금융정보법은 금융거래를 이용한 자금 세탁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기 때문에 가상자산과 관련해서도 그 목적 범위에 한해 규율할 뿐입니다.
가상자산에 대한 명시적인 규제법이 없더라도 당사자들 사이에 분쟁은 발생하며, 당사자들 사이에 원만한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에 대한 판단은 결국 법원에 맡겨집니다. 그런데, 법원은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지 법을 창조하는 기관은 아닙니다. 법원 입장에서도 가상자산과 같이 규제 공백 상태에 있는 신생 분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재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에 대해 논의가 많이 이뤄졌지만, 대중들이 비트코인에 막 관심을 가졌던 2017~2018년경부터 비트코인이 물건인지, 금전(화폐)인지 아니면 재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법원은 비트코인이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상 몰수대상인 무형재산에 포함되는지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가 이용자들로부터 받은 비트코인이었습니다. 1심 법원은 검찰이 압수한 해당 비트코인은 현금과는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이므로, 몰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가액 상당을 추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수원지법 2017노7120). 그러나,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비트코인에 대해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범죄수익은닉규제법상 무형재산으로서 몰수대상이 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7노7120, 대법원 2018도3619).
위 대법원판결을 통해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에 대해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무형자산에 해당됨을 명확히 함으로써 가상자산의 법적 취급과 관련한 중요한 이정표가 됐습니다. 이후 가상자산과 관련한 다양한 형태의 소송이 제기됐고, 최근 몇 년간 주요 판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와 별개로, 가상자산 전반을 규율하는 기본법 제정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지난 6월 말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해당 법률은 가상자산 시장의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현재도 성장하고 있는 가상자산 시장이 건전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가상자산 기본법 제정 또한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