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일루베이션 “3D 돼지 무게 측정, 축산가에 새 가치”

[KOAT x IT동아]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IT동아는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과 디지털 전환을 이끌 유망한 스타트업을 소개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품, 그리고 독창적인 기술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전국 각지의 농업 스타트업을 만나보세요.

[IT동아 차주경 기자] 축산가는 많은 공을 들여서 소와 돼지, 닭 등 가축을 기른다. 살을 잘 찌워야 좋은 가치를 인정 받는 까닭이다. 돼지를 약 180일 가량 키워서 몸무게를 115kg~120kg 수준으로 자라게 해야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돼지를 잘 길러서 살 찌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몸무게를 정확히 재는 것'이다. 돼지의 가치를 산정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가 몸무게다. 돼지의 몸무게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데, 등급별 가격 차이가 적게는 1만 원, 많게는 10만 원 남짓까지 많이 난다고 한다.

일루베이션의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를 시연하는 원형필 대표(가장 오른쪽). 출처 = 일루베이션
일루베이션의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를 시연하는 원형필 대표(가장 오른쪽). 출처 = 일루베이션

그런데, 양돈가는 돼지의 몸무게를 잴 때 늘 고생한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돼지를 저울에 올리는 것도 문제지만, 몸무게를 잴 때 돼지가 자꾸 움직여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워서다. 게다가, 이 저울은 자주 고장이 나고 어느 정도 쓰면 파손돼 아예 바꿔야 한다. 고스란히 양돈가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한 첨단 정보통신기술로 양돈가의 고민을 해결한다. 스타트업 ‘일루베이션’이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Viiew(뷰)’를 만든 계기다.

일루베이션을 이끄는 원형필 대표는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3D 프린팅 업계에 뛰어든다. 이 곳에서 3D 스캔 기술을 만나 발전 가능성을 발견했다. 3D 스캔으로 물체의 질량을 측정하는 기술을 사업화하려던 원형필 대표는 양돈가와 만나 이들의 고민을 듣고, 이를 해결할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를 만들 결심을 한다.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로 돼지의 몸무게를 측정하는 모습. 출처 = 일루베이션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로 돼지의 몸무게를 측정하는 모습. 출처 = 일루베이션

3D 스캐너는 피사체의 윤곽과 표면 굴곡, 거리 등을 조사해서 3차원 입체 데이터를 추출한다. 3차원 입체 데이터는 피사체의 모습과 부피를 비교적 정확히 나타내지만, 피사체의 복잡한 외형이나 배경 등 노이즈 데이터도 함께 기록한다. 3D 스캐너가 표면이 매끈하고 외관이 단조롭게 생긴 피사체(책상, 의자, TV 등)는 잘 묘사하지만, 외관이 복잡한(식물, 사람) 피사체는 잘 묘사하지 못하는 이유다.

일루베이션은 3차원 입체 데이터에 깊이와 색상, 위치 정보와 적외선 기술을 더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돼지의 몸의 윤곽과 굴곡을 3D 스캔하면서 깊이(Depth) 값으로 크기를, RGB 카메라로 색상을 각각 알아낸다. 깊이와 색상에 따른 굴곡을 활용하면 돼지와 배경을 명확히 분리하고, 몸의 윤곽도 정확히 파악한다. 여기에 사진 분석 인공지능까지 더해 기술 완성도를 높인다.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로 돼지의 몸무게를 측정하는 모습. 출처 = 일루베이션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로 돼지의 몸무게를 측정하는 모습. 출처 = 일루베이션

일루베이션의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는 쓰기 쉽다. 돼지의 모습과 몸집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옆면에 서서, 스마트폰 카메라처럼 화면을 눌러 사진만 찍으면 된다. 그러면 최대 5초 안에 돼지의 모습을 3D 스캔하고 입체 데이터를 분석해 몸무게를 알려준다. 정확도는 KTL 시험성적원 기준 96%에 달한다.

돼지의 몸무게를 눈으로 재는 목측은 정확하지 않다. 숙련자라도 정확도가 80%에 불과하다. 저울로 돼지의 몸무게를 재면 정확도는 100%에 가까워지지만, 돼지 한 마리당 서너 명이 달라붙어 5분 이상 힘을 써야 간신히 잰다. 앞서 언급한 유지보수와 고장 문제도 있다. 일루베이션은 돼지 100마리의 몸무게를 잴 때 목측은 1명이 해서 30여 분, 저울은 최소 3명이 해서 4시간 즈음 걸린다고 말한다. 반면, ‘뷰’는 1명이 1시간 여만에 96% 정확도로 작업을 마친다고 한다.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가 돼지의 몸무게를 측정, 결과를 보여주는 모습. 출처 = 일루베이션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가 돼지의 몸무게를 측정, 결과를 보여주는 모습. 출처 = 일루베이션

일루베이션은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를 고도화해 활용 범위를 넓혔다. 먼저 인공지능으로 돼지의 품종 특성까지 파악, 몸무게를 재는 기술을 개발했다. 우리나라 양돈가가 기르는 돼지의 품종은 천차만별이다. 품종에 따라 몸집도, 체지방도, 몸무게도 다르다. 겉모습만 보고 몸무게를 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일루베이션 역시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해법은 60만 마리 이상의 돼지의 데이터를 분석해 ‘품종별 무게 예측 알고리듬’을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은 지금도 발전 중이다.

일루베이션은 대규모 양돈가가 쓰기 좋은 ‘고정형 양돈출하선별 스테이션’도 선보인다.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의 기술을 응용해, 돼지가 통로를 지나가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대의 3D 카메라로 데이터를 수집해서 몸무게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축사에 간편하게 시스템만 설치하면, 매일 돼지의 몸무게를 파악 가능하다. 돼지를 1만 두 이상 기르는 대형 농장에서 쓰기 알맞은 솔루션이다.

기존 기술(왼쪽)과 일루베이션의 고정형 양돈출하선별 스테이션과의 비교. 출처 = 일루베이션
기존 기술(왼쪽)과 일루베이션의 고정형 양돈출하선별 스테이션과의 비교. 출처 = 일루베이션

9개의 3D 카메라를 활용한 응용 기술도 있다. 이 기술은 RGB-D(색상과 깊이) 정보로 돼지의 몸무게와 겉모습 등을 분석하므로 활용 범위가 넓다. 종돈(씨를 받으려 기르는 돼지)의 외모 심사, 가상현실 돼지 경매 교육 등이 그 사례다. 이들 기술은 이미 완성 단계에 다다라 올 6월 시제품이 등장할 예정이다.

이어 일루베이션은 송아지 경매 시스템에 다중 3D 스캔 기술을 적용할 방법을 찾는다. 송아지의 겉모습을 정밀한 3D 데이터로 만들면 몸무게뿐만 아니라 외모, 특징까지 파악 가능하다.

원형필 대표가 일루베이션의 기술, 기기를 국내외 축산 기관에 공개하자 관심이 많이 모였다. 2019년 ‘뷰’ 출시 후 일루베이션은 우리나라 축산가 270여 곳에 기기를 공급했다. 이들에게 받은 피드백으로 기술을 꾸준히 고도화하고 응용 범위도 넓힌다. 이를 위한 데이터 수집 팀도 최근 꾸렸다. 대기업과의 협업도 여러 건 진행 중이다.

전시회에서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를 시연하는 일루베이션. 출처 = 일루베이션
전시회에서 양돈 모바일 체중 관리기 뷰를 시연하는 일루베이션. 출처 = 일루베이션

해외에서의 반응은 더 좋았다. 원형필 대표는 2021년 11월, 세계 최대 규모의 축산업 박람회 ‘유로티어(Euro Tier)’에 참가해 일루베이션의 기술과 기기를 소개했다. ‘뷰’와 성격이 비슷한 돼지 무게 예측 기술이 여럿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품종 데이터까지 반영하는 것은 일루베이션뿐이었다.

그 결과, 원형필 대표는 덴마크 대농장 대표에게 초청 받아 기술을 설명하고 장비를 제공했다. 덴마크 대농장 대표는 일루베이션 ‘뷰’가 ‘자신이 10년 이상 찾아온 장비’라며 데이터 수집과 기술 개발을 자처했다고 한다. 일루베이션은 이 곳과 손 잡고 세계 시장에 기술을 공급할 업무협약을 마쳤다. 지금 한창 데이터를 수집 중이다.

2022 선도벤처기업인 청년창업가 비즈콘 데이 데모데이 대상(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상)을 수상한 일루베이션. 출처 = 일루베이션
2022 선도벤처기업인 청년창업가 비즈콘 데이 데모데이 대상(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상)을 수상한 일루베이션. 출처 = 일루베이션

원형필 대표의 목표는 축산가를 도울 기술과 기기를 만들어 우리나라 축산업의 발전, 혁신을 이끄는 것이다. 일루베이션의 회사 이름 자체가 ‘마법같은 혁신’의 합성어다. 이를 위해 3D 스캔 기술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것,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 가공해 활용 범위를 넓히는 것, 이 성과를 축산가에 적극 전달해 새로운 기술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는 것을 도전 과제로 꼽았다. 이 도전 과제를 해결하고 세계 수준의 축산 기술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청사진도 그렸다.

일루베이션은 도전 과제를 든든한 파트너인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함께 풀 에정이다. 원형필 대표는 2018년 한국농업기술진흥원 농식품 창업 콘테스트의 대통령상 수상, 이어 올해까지 4년째 받은 농식품 벤처육성 지원사업 보육 프로그램 덕분에 일루베이션을 꾸렸다고 말한다. 자금과 컨설팅, 융자와 기술 보호, 농산업 기업 전문 투자 연계, 첨단기술 지원 사업과 로드쇼 등 스타트업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오랜 기간 돕는다고 강조한다.

회의 중인 일루베이션 임직원들. 출처 = 일루베이션
회의 중인 일루베이션 임직원들. 출처 = 일루베이션

원형필 대표는 “축산가의 불편을 해소하고 부담을 덜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노력한다. 덕분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강원 홍성군 등 축산가가 많은 지역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아 일루베이션의 기술과 기기를 쓰게 됐다.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기술을 갈고 닦아 축산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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