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주요 기업들 몰린 CES2023의 LVCC 센트럴홀, 국내 기업 부스 탐방기
[IT동아 정연호 기자]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5일(현지시각)부터 8일까지 진행된 소비자 가전 전시회 2023(Consumer Electronics Show, CES2023). 전 세계 미디어, 산업 관계자, 일반 관람객이 참가해 CES 엑스포를 가득 채웠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블록체인, 미래 모빌리티, 로보틱스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생한 기술과 제품으로 구현되는 장소였던 만큼 ‘기술 월드컵’이라는 위상이 아깝지 않은 자리였다. 이 자리를 빛낸 국내 기업들도 K-기술을 선보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번 CES 2023은 ‘대규모 호텔과 엑스포를 꽉 채운 인파’로 요약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던 CES2021 이후 오프라인 행사로 재개됐던 작년 CES2022는 기업과 관람객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CES의 컴백이 아쉬운 성적으로 마무리되고, 경제 전망도 우울한 상황에서 CES2023에는 이러한 비관적인 분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번 CES2023 관람객은 역대급 규모인 10만 명으로 예측된다. 그만큼 전시 부스는 생기로 가득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목에 CES 배지를 달고 다녀야 하는데 라스베이거스 길거리엔 밤낮없이 목에 CES 배지를 건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곳을 가도 귀에 익숙한 한국말이 계속 들렸던 것을 보면 국내 참가자 수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CES는 위 사진처럼 East, West, South 세 구역에서 진행된다. 문제는 볼거리가 몰려 있는 베네치안관과 LVCC, 웨스트홀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택시를 타고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CES로 인한 대규모 인파 때문에 차를 잡기가 어렵다.
기자는 이번 행사 때 CES 측에서 제공하는 테크 익스프레스를 타고 편하게 움직였다. 비용도 무료라 이용에 부담이 없는 이동 수단이다. LVCC센터에 도착했을 때도 지하에서 제공되는 무료 이동수단을 타고 주요기업이 몰린 웨스트홀과 센트럴홀을 오갔다. CES 2023 전시규모는 18만 6천㎡로 축구장 26개를 합친 규모라 전시부스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빼야 하는 수준이다. 이동수단이 제공된다는 게 편리했다.
CES 행사장에 배치된 안내원들은 군중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급하게 움직이던 기자는 입구와 출구를 혼동해 입구로 나가려고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안내원은 그럴 때마다 이곳은 입구이니 출구로 가야 한다며 저지했다. 군중의 이동을 통제하지 않으면 재난이 발생한다는 것을 겪었기 때문일까, 안전을 위한 통제가 계속 눈길을 끌었다.
다만, 현지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았고, 마스크를 쓰는 사람 중 상당수가 한국인으로 보였다. 세계적으로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방역조치를 강화하는 등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라스베이거스는 이러한 분위기와는 단절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한국 정부도 조만간 실내 마스크 해제와 관련된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실내 마스크 의무가 사라진다면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진 않을지, 우리는 이에 대응할 준비가 됐는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LG전자가 선사하는 전율, 거대 디스플레이에 압도되는 관객들
국내 대기업들과 세계적인 IT기업이 전시 부스를 차려 놓은 센트럴홀에 들어갔을 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입구에 들어선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은 것은 LG의 초대형 조형물 ‘올레드 지평선(OLED Horizon)’. 화면을 오목하거나, 볼록하게 만들 수 있는 곡면 디스플레이 ‘올레드 플렉서블 사이니지’ 260장을 이어 붙인 작품이다.
디스플레이에는 태양계, 별들의 궤적을 담은 밤하늘, 사하라 사막, 세렝게티 국립공원, 7개 폭포로 이루어진 딘얀디 폭포 등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섬세하게 표현됐다. 관람객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조형물을 눈에 담으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어두운 공간에 전시되는 LG의 올레드 지평선을 체험해보니, 기술이 딱딱한 존재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전율이 느껴졌다.
LG전자 부스에는 다양한 디스플레이들이 전시돼 있었다. 입구에 전시된 올레드 지평선을 지나쳐 부스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던 것은 LG전자의 무선 OLED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M’을 앞뒤로 4장씩 연결한 구조물. 이는 현존하는 최대 크기인 97형 올레드 TV에 4K/120Hz 고화질 영상 전송을 지원하는 무선 솔루션을 탑재한 제품이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M은 내장기술과 영상디스플레이 등 2개 부문에서 혁신상을 받은 제품으로, CES 공식 어워드 파트너 엔가젯이 선정하는 홈시어터 부문 최고상(베스트 오브 CES 어워즈)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옆에 배치돼 있던 CES2023 최고 혁신상 수상작 ‘투명 OLED TV’에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전시를 설명하던 관계자는 본인의 손을 디스플레이 뒤에 놓으면서 “이 제품은 유리처럼 투명해서 뒤에 있는 것들이 다 비친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뒤에 있던 가려진 손이 그대로 보이자 이를 감상하던 관람객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LG전자는 이 제품을 통해서 가상 수족관이나 폭풍우 치는 유리창 등처럼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삼성전자, 그전과 다른 점은 딱히…
삼성전자의 부스는 LG전자가 부스에 힘을 준 것과 대비됐다.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최대 규모 부스를 꾸렸지만 신제품은 의도적으로 뺐으며, 스마트싱스를 토대로 15개 글로벌 가전 브랜드 제품을 연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HCA를 적용한 스마트홈 플랫폼을 보였다는 소식은 눈길을 끈다. HCA는 IoT 제품과 플랫폼을 클라우드로 연결해 다른 제조사의 제품들을 상호 운용하는 IoT 컨소시엄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 앱으로 다른 제조사의 제품을 관리할 수 있는 것처럼 자사 기기끼리만 연동되던 폐쇄성을 벗어 던진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GE, 하이얼, 일렉트로룩스, 아르첼릭, 트레인, 리디지오, 베스텔 등이 HCA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 부스는 LG 부스처럼 화려한 느낌은 없고 다소 밋밋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반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부스에 들어가기 위해서 거의 20분간 기다려야 했음에도 혁신적인 제품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전시의 내용물이 오랫동안 강조돼온 ‘삼성을 통한 연결’을 메아리처럼 되풀이한듯해 부스에 큰 흥미가 느껴지진 않았다.
강력한 급속 충전과 오래가는 수명, SK의 전기차 배터리
SK 전시 부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부스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배터리 내장 기술 최초로 CES 최고 혁신상을 받은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SF배터리'였다. 전기차가 상용화되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배터리 성능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SK온의 SF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83% 이하인 하이니켈 배터리로 18분 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현대 아이오닉 5와 기아 EV6에 탑재된 상황이다.
SK온 설명에 따르면, SF배터리는 급속 충전의 한계로 꼽히는 배터리 수명 단축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품질보증 기간이 1000 사이클이라면 급속충전은 300사이클(배터리의 1회 충/방전)이다. 하지만, SF배터리는 급속충전을 해도 1000 사이클을 모두 운행할 수 있다고 한다. 사이클 횟수가 높아질수록 배터리 용량이 떨어지는데, 배터리에 가하는 데미지를 줄여서 수명에도 영향을 주지 않게 된 것.
버추얼 콘텐츠, 엔터테인먼트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또 다른 이색적인 기술은 롯데정보통신 부스에서 발견한 미래형 버추얼 콘서트였다. 이곳에서 체험한 것은 인기 아이돌 그룹 엔믹스와 롯데정보통신, 칼리버스가 합작해 만든 버추얼 콘서트 체감존이었다.
버추얼 콘서트를 체험하기 위해선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HMD)를 장착해야 하는데, 체험존의 디스플레이에 전용 필름을 부착했기 때문에 장비 없이도 화면 앞에서 3D 콘서트를 즐길 수 있었다. 엔믹스처럼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그룹의 공연을 봤기 때문일까. 공연의 역동성이 더 생생하게 느껴져서 버추얼 콘서트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최근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이 퍼포먼스에 더 많이 치중하는 걸 생각하면, 아이돌 그룹과 버추얼 콘서트의 친화성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롯데정보통신 부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헤드마운트를 장착하고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었다. 롯데정보통신은 롯데그룹의 IT 서비스 계열사이며, 지난 2021년 메타버스 스타트업 칼리버스를 인수해 메타버스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롯데가 준비 중인 메타버스는 롯데면세점과 롯데하이마트, 세븐일레븐과 함께 꾸민 버추얼 스토어로 의류나 화장품, 가전 등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를 해야 하는 상품의 경우에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CES2023,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가장 가까운 장소
이외에도, CES 엑스포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띈 것은 국내 스타트업과 기업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체험해보는 국내 정치인과 관료들의 모습이었다. 기자가 이들을 부스에서 마주쳤을 땐 짧은 시간동안 기업에 대한 소개를 잠깐 듣는 정도였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본다. 국내외의 기술은 어떤 차이를 보이고, 만약 국내 기술력이 뒤처져 있다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어떠한 정책이 필요할지 현장에서 생생한 영감을 얻었기를 기대해본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