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와 스마트폰의 전자파, 정말로 암을 유발할까?
[IT동아 정연호 기자] 전자기기를 사용한다면 어디서나 존재하는 전자파. 많은 사람이 전자기기가 방출하는 전자파 때문에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자파에 대한 불안은 과장된 측면이 있으며,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전자파는 인체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스마트폰과 관련해 전자파와 종양 발병 간 인과 관계는 심층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오래전부터 ‘전자레인지로 조리된 음식을 먹으면 암이 발생한다’는 말이 도시괴담처럼 떠돌았다. 물론, 이는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다. 국립전파연구원은 “전자레인지 전자파 측정 결과, 전자파는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방출되며) 인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다. 전자레인지를 사용해도 음식물 영양소 변화나 파괴가 발생하지 않으며, 조리하는 음식에 어떤 유해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안내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전자기기보다 상대적으로 전자파를 많이 배출하는 전자레인지는 사용 시 30cm 이상 떨어져 있는 게 더 좋다. 음식 조리에 필요한 열을 생성하는 핵심부품인 마그네트론에는 고압 변압기가 내장돼 있는데, 변압 과정에서 60Hz 전자파가 평소보다 높게 발생할 수 있으니 기기를 작동시킬 땐 떨어져 있으라는 뜻. 국립전파연구원은 전자레인지와 30cm 떨어졌을 때 전자파를 측정하면 밀착할 때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설명한다.
스마트폰 RF 전자파와 종양 발병률의 관계, 명확한 결론은 아직…
그렇다면, 우리 일상과 떼레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 RF 전자파는 어떨까? “스마트폰 전자파와 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스마트폰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대표적인 실험들은 두 요인 간 명확한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미국암협회(ACS)는 “스마트폰의 RF 전자파는 DNA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가할 정도로 충분한 에너지를 갖추고 있지 않다. 실험실에서 진행된 동물 연구 중 일부는 전자파가 종양을 증가시켰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전반적으로 이러한 연구들은 명확한 인과관계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ACS가 모호한 결론을 내린 이유는 관련 실험들이 일관된 결과를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국립연구원(NTP)과 이탈리아 라마찌니 기관의 연구는 전자파에 노출된 실험용 쥐의 심장과 뇌 등에서 종양이 증가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ACS는 이 연구에 대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도 “전자파가 사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ACS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스마트폰과 뇌 종양 간 연결성을 주장하는 연구도 있지만, 둘 사이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놓는 연구도 있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13개국에서 인터뷰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한 ‘The Interphone study’는 10년 동안 1640시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한 사람은 신경교종 발생의 위험이 증가했다고 보고한다. 다만, 이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증거만 제시한 것으로, IARC는 이 증거 또한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지난 2007년에 발표된 4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덴마크의 연구는 휴대전화 사용과 뇌 종양 등과의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에도 전자파와 건강의 연관성을 분석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보고서가 있다. 국제적으로 연구 품질 및 객관성을 인정받은 국내외 연구기관의 전자파 관련 연구들을 검토해, 전자파의 위험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한국전자파학회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생활 속 전자파 건강영향평가' 보고서다.
보고서는 "종양성 질환과 RF 전자파 노출과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특정 집단에 대한) 역학 연구가 수행됐지만, 연구 설계의 한계, (전자파)노출 평가의 정밀성 부족, 데이터의 잠재적 교란 원인 등으로 일관된 결과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또한, RF주파수에서 동물모델을 이용해 다수의 발암성 영향 연구가 수행됐지만 두 요인 간 확실한 연관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보고서는 “최근 미국 NTP와 이탈리아 라마찌니 연구소에서 수행한 휴대전화 전자파 장기노출 연구에서 발암 영향이 보고되면서 RF 전자파의 발암성 영향 규명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NTP 연구는 그동안 수행됐던 다른 동물실험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고, 장기간에 걸친 연구이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발암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동물 실험이 1년 이내로 짧게 진행됐다면, 발암 영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동물 실험은 2년 이상 장기간에 노출된 경우가 있었고 각 실험에는 노출장비 및 측정 기술의 한계가 반영됐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에 국내에선 실험 과정을 정밀하게 설정하여 일본과의 국제공동연구 형태로 체계적인 장기노출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해상충’이란 연구윤리의 문제
한편, 지난 2020년 보건정책 및 환경보건 분야에서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국제 환경연구 및 공중보건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에 스마트폰 RF 전자파와 암 발병과 관련된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다.
서울대학교와 국립암센터 명승권 교수 연구진 그리고 미국 UC버클리 보건대학원 조엘 모스코비츠 연구진은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휴대전화 사용과 건강에 관한 46편의 연구를 메타분석했다. 이들은 “통신 사업자에 의해 연구비를 부분적/전적으로 지원받은 연구는 스마트폰 사용에 따른 종양 발생위험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통신사업자에게 부분적으로 비용을 지원받은 Interphone studies와 관련된 연구들이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연구비가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많은 조사관들이 연구를 위한 펀딩을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놨다. 연구자들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해상충의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것.
연구에 참여한 모스코비츠 교수는 버클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메타분석을 통해서 총 1000시간, 혹은 10년간 하루에 17분씩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뇌의 종양이 발생할 확률이 60% 올라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미국의 통신사업자는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통신사업자의 고위직이 FCC 멤버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도 빈번하다. 통신사업자는 의회에 일 년에 1억 달러에 달하는 로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사업자를 관리해야 할 FCC가 사실상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FCC는 무선기기와 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것"
국내에선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기담요, 전기매트, 전자레인지, 전기밥솥은 제품을 판매하기 전 전자파인체보호기준에 적합한지 시험하고, 적합성 평가를 받는다. 일반 국민이 인체에 밀착해 사용하는 전자제품에 한해서 전자파인체보호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국립전파연은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인체보호기준 대비 약 10% 미만의 미약한 수준의 전자파가 나오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다양한 실험 경과를 종합해보면 전자파와 종양 발병률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전문가의 견해를 듣고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전파연구원(이하 국립전파연)에 스마트폰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지를 문의해봤다. 전자파안전담당 연구원은 “국립전파연이 만든 전자파 흡수율(SAR)이라는 기준치가 있다. 이 기준으로 휴대전화 제품을 다 시험해보고, 그 기준값을 넘지 않을 때 판매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시하는 기준을 넘지 않으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안내한다”고 답했다.
이어, 국립전파연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휴대전화가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이 있고, 아니라는 논문들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통해 전자파가 발생하고는 있지만 암이 유발될 정도의 전자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도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국내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전자파) 기준을 엄격하게 잡고 있다”고 했다.
전자파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지침을 따르는 것을 권한다. 전기장판은 두꺼운 담요나 이불을 깔고 사용하거나, 고온 모드가 아닌 저온 모드로 사용하는 게 좋다.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할 땐 커버를 분리하지 않는 게 전자파 노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스마트폰은 머리에서 멀어질수록 전자파가 급격하게 감소하므로 이어폰을 끼거나 블루투스 모드로 전화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잠잘 땐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두지 않는 걸 권한다. 전자파 차단 스티커를 붙이면 전자파 세기가 감소하게 되는데, 이때 기지국에서 더 높은 강도의 출력으로 신호를 보내게 되므로 오히려 전자파 강도는 강해진다. 때문에, 전자파 흡수율이 증가할 수 있는 것. 전자파를 감소시킨다고 알려진 선인장과 숯 역시 전자파 차단 효과가 없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