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스타트업 in 홍릉] 시프트바이오 “엑소좀 플랫폼, 희귀 난치병 치료의 열쇠”
[IT동아 차주경 기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교를 졸업한 의학자가 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며 살리는 의사의 길도 좋지만, 수많은 환자의 질병을 낫도록 돕는 신약 개발자의 길도 값지다는 판단 하에 고려대학교·한국과학기술원 융합대학원에 입학한다. 의학에 과학을 더해 효과 좋은 신약 개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그는 암 면역 치료를 연구하다가 한 세포 기술을 발견하고, 그의 지도 교수와 이 기술을 사업화할 연구 개발을 이어갔다.
그러던 그는 난치병 환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신약을 개발하려는 임상 의사와 만났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이들 세 명은 난치병 환자의 응급성, 이들을 돌볼 의료 수요를 충족하는 신약을 만들자는 목표 하에 손을 잡고 의료·바이오 스타트업 ‘시프트바이오’를 공동 창업했다.
위 이야기에서 의학자는 남기훈 시프트바이오 부대표다. 그의 지도교수 김인산 공동창업자는 암 면역학과 엑소좀 치료제 부문의 권위자다. 이원용 대표는 15년 이상 두경부암 환자를 돌보면서 안면 재건 임상 경력을 쌓은 전문가다.
이들이 주목한 기술은 우리 몸 속 모든 세포가 만드는 나노 입자 ‘세포밖 소포체(이하 엑소좀)’의 플랫폼화다. 엑소좀은 세포들이 대화할 때 쓰는 물질이자, 사람과 함께 꾸준히 진화한 물질이다. 모세포와 같은 세포 수준의 기능을 하며 체내 분포도가 각기 다르다. 차세대 신약의 필수 조건에 맞는 다양한 특성과 장점을 가졌다.
먼저 엑소좀은 세포의 대화 수단이므로, 치료 인자를 세포 곳곳에 전달할 매개체로 알맞다. 면역원성(면역을 일으키는 능력)도 낮아 이 물질로 만든 신약은 여러 번 투약 가능하다. 줄기세포처럼 다른 세포의 역할을 하기에 신약 공정 개발과 제약화도 쉽다. 엑소좀의 체내 분포도가 다른 특성을 활용하면 특정 질환을 겨냥한 신약을 만들 수도 있다.
엑소좀은 이미 우리 몸 속 세포에 있는 천연 물질이므로 생체 적합성이 우수하다. 백신에 주로 쓰는 LNP(Lipid Nano Particle, 치료 인자를 전달하는 매개체)의 치료 인자 전달 확률은 0.5% 선으로 알려졌다. 엑소좀은 이 확률이 30% 선으로 높은데, 나아가 시프트바이오는 이를 70% 이상으로 높이는 기술을 가졌다고 남기훈 부대표는 말한다.
시프트바이오는 엑소좀의 특성을 응용해 여러 부문의 신약을 만드는 플랫폼 기술을 갖췄다. 엑소좀 표면의 치료용 단백질 생성을 촉진, 단백질 치료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맥시좀(Maxisome)’, 엑소좀 안에 전사인자(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물질)를 넣어 세포 안으로의 전달 효능을 높이는 ‘인프로델(InProDel)’, 암세포의 막에 달라붙어 치료 물질을 효과 좋게 전달하는 ‘퓨소좀(Fusosome)’이 사례다.
남기훈 부대표는 엑소좀에 어떤 단백질·유전자·치료 인자를 넣느냐에 따라 효능이 바뀐다고 강조한다. 세포 하나에 다양한 효능을 가진 물질을 넣는 것도 되며, 이 물질이 세포에 치료 인자를 전달하는 확률도 극적으로 높인다. 즉, 엑소좀 플랫폼은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를 만들 유망한 기술이다.
시프트바이오가 엑소좀 플랫폼 기술로 만든 첫 신약은 희귀 질환인 ‘급성 간부전’ 치료제가 될 전망이다. 급성 간부전 환자는 안타깝게도 70% 이상 사망한다고 한다. 남기훈 부대표는 엑소좀 플랫폼 기술 가운데 맥시좀을 응용, 환자의 몸 안 면역 세포를 활성화하면서 병변을 제거하는 신개념 신약을 연구 중이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병변 제거 혹은 재생, 둘 중 한 가지 역할만 한다. 시프트바이오의 신약은 이 두 역할을 동시에 한다. 먼저 면역 세포가 나쁜 세포를 더 많이 먹어치우도록 촉진하는 탐식작용촉진 단백질을 병변에 효과 좋게 전달, 간부전의 병변을 제거한다. 이어 엑소좀의 특징 중 하나인 세포 재생 효과를 촉진해 간 조직을 정상화한다. 이 신약을 미국 FDA(식품의약국)에 소개해 희귀 질환 지정을 받고 임상을 서둘러 진행하는 것이 시프트바이오의 목표다.
남기훈 부대표와 이원용 대표, 김인산 공동창업자는 5년 전 시프트바이오를 세울 때 ‘비전을 공유하는 인재’를 모으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합성·바이오 치료제에 이어 주류가 된 유전자·세포 치료제, 그를 뛰어넘을 유망 치료제를 땀 흘려 연구하는 연구자. 희귀 질환 환자에게 또 다른 기회와 새로운 삶의 희망을 줄 신약 개발자.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할 시스템 수준의 치료제를 만들기 원하는 의학자. 비전을 공유하는 인재들이 속속 모인 덕분에, 남기훈 부대표는 시프트바이오가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희귀 난치병을 치료할 신약을 개발하려는 임원들의 비전, 여기에 공감한 우수한 인력이 속속 참여한 덕분에 시프트바이오는 2022년 많은 성과를 거뒀다. 의료·바이오 스타트업 가운데 드물게 신용보증기금의 유망 스타트업 보증 제도 ‘퍼스트 펭귄’에 선정됐다. 남기훈 부대표는 이 도움을 계기로 ‘엑소좀 플랫폼 기술 특허’를 여러 개 마련한 것도 성과로 소개했다. 우리나라 변리사와 미국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촘촘한 특허 장벽을 구축, 기술을 지키고 고도화할 발판으로 삼은 셈이다.
일본의 한 위탁연구서비스가 시프트바이오의 기술의 재현성을 입증한 것도 큰 성과다. 이는 신약 개발 기업이 거쳐야 하는 중요한 단계다. 기술 고도화에 이어 신약 양산 체제도 마련했다. 시프트바이오는 미국의 한 대형 바이오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고, 임상 대량 생산 공정을 확보했다.
남기훈 부대표의 모교인 KIST와 헬스케어 클러스터 홍릉강소연구특구도 시프트바이오가 잘 성장하도록 힘을 보탰다. KIST는 기술을 출자했고, 홍릉강소연구특구는 초기 창업 지원금과 연구 공간을 제공했다. 인사·노무·회계 등 스타트업 운영에 필요한 지식은 물론 의료·바이오 스타트업이 꼭 알아야 할 특허 컨설팅도 제공했다. 이렇게 과학 역량을 쌓은 시프트바이오는 홍릉강소연구특구의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IR 컨설팅을 거쳐 지금 단계까지의 투자금도 유치했다.
시프트바이오는 2023년의 도약 계획을 세웠다. 먼저 미국 FDA 임상 1상의 진입을 준비한다. 이미 여러 차례 미팅을 거쳐 IND(개발 최종 단계의 임상 실험에서 쓸 신약) 데이터 패키지를 마련했다. 이 연구에 필요한 석박사급 인재도 더 많이 채용한다.
나아가 엑소좀을 포함한 신약 개발 플랫폼을 고도화, 파트너 기업과 제약사에게 믿음을 주고 이들의 파이프라인 설계를 돕는다. 지금까지 거둔 성과를 논문으로 증명하고 학회에도 참가해 적극 알린다.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 바이오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도록 도우려 한다.
남기훈 부대표는 “신약을 개발하는 여정은 아주 험난하지만, 일단 개발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만들어야 한다. 시프트바이오의 과학 역량과 곁에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신약 개발을 완수하겠다. 치료제가 없어 고통 받는 세계의 수억 명의 환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의료 바이오 스타트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