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로 자녀와 소통하기] 2. 지식착각과 디지털콘텐츠의 갈등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자녀들이 즐기는 디지털콘텐츠는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도구의 발달이 만들어낸 문화 산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콘텐츠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중요한 산업이나 국력의 지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전세계에 자랑스러워하는 '한류' 문화. 노래와 드라마, 웹툰, 게임같은 문화콘텐츠는 그 자체 시장도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한국과 한국사람들의 이미지도 함께 상승한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노래나 드라마, 게임을 즐기는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를 알려주는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하게 작용합니다. 사람의 품격과 수준을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 다른 말로 사람을 폼나게 만들어주 것들이지요. 브르디외(Bourdieu)라는 학자는 이런 현상을 ‘구별짓기’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이 부르는 노래와 춤, 그리고 그들이 태어난 한국, 그들이 사용하는 한국말은 최소한 ’아미(BTS 팬 집단) ‘들에게 대한민국의 위상과 품격을 한껏 올려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역사적으로 발전된 문화적 욕구는 본능적 욕구, 즉 누구나 느끼는 욕구가 아닙니다. 그런 문화를 경험하고 참여해 본 사람만 느끼는 욕구입니다. 그림을 직접 보거나, 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노래나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출처=엔바토 엘리먼트
출처=엔바토 엘리먼트

구한말 선교사들이 치열하게 테니스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힘든 일을 아랫사람들에게 시키지 않고 왜 직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고종황제의 사례는 문화 욕구가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여줍니다. 만일 고종황제가 요즘 테니스 열풍인 후손들을 직접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우리 후손들이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다며 흐뭇해할지, 아니면 저리 힘든 것을 왜 고생스럽게 하며 살까 하며 안타까워할까요.

스마트폰으로 자녀들이 유튜브, 게임, 웹툰과 같은 디지털콘텐츠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들이 느끼는 답답함이나 한심함 같은 부정적인 정서는 스마트폰이나 콘텐츠 때문이라기 보다는, 부모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상징과 자녀들의 문화적 상징과 달라서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세대간 경험의 차이가 만들어낸 가치관의 차이라고 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를 서로 간의 ‘차이’나 ‘다름’이라고 느끼기보다, ‘잘못된 것’ 또는 ‘고쳐야 할 것’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테니스를 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며 이를 못하게 막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소년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자주 일어나는 자녀와 콘텐츠 이용을 둘러싼 갈등 양상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요?

'지식착각(illusion of knowledge)'란 개념이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르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르니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에 찬 행동이 나옵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차브리스(Chabris)와 사이먼스(Simons)와 같은 학자들은 '익숙함이 지식착각을 유발한다'고 주장합니다. 겉모습에 익숙할 뿐인데,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대입해보면, 자녀들이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에 익숙할 뿐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스마트폰에서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는 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자녀들이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져 있다면, 그들이 어떤 것을 보고 있는지 왜 그것을 보는지, 거기서 무엇을 느끼는지 묻고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과 공동주의(joint attention)를 하지 않고, 순간 화부터 먼저 내는 부모라면 십중팔구 지식착각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처=엔바토 엘리먼트
출처=엔바토 엘리먼트

자녀들이 게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한심하다는 생각은, 게임이나 유튜브가 가치 없는 행동이라는 부모의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치판단 기준은 부모의 관점, 특히 자녀의 성공과 관련되어 실용적인 관점일 수 있습니다. 게임 대신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상황에서 거의 모든 부모가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는 다른 가치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한심하다는 부모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도 하고 학원에서도 합니다. 그런데 친구를 만나서 함께 놀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뽐내는 것도 자녀 입장에서 중요한 가치입니다. 자기에게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자녀들, 아니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좋은 반응이 나올 수 없지요. 짜증섞인 말을 하게 되고 마침내 큰소리가 나게 됩니다. 이때 부모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착하고 순하던 우리 아이가 게임에 빠지더니 성질이 저렇게 나빠졌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게임에 있지 않습니다. 자녀 행동에 대한 부모의 가치판단이 원인입니다. 게임이 아닌 그 어떤 행동, 예를 들어 친구와 어울려 놀거나, 아이돌 팬클럽 활동에 몰두하는 것도 게임과 동일한 패턴의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원인을 게임에서만 찾는다면 아마도 해결책은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은 일단 형성되면,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 출처나 근거를 확인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 그 믿음을 지지할 수 있는 증거만 찾게 되지요. 손에 망치를 든 사람은 세상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망치의 법칙’처럼 말입니다. 학업성적 저하나 버릇 없는 행동처럼, 꼭 게임이 아니더라도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을 그 믿음의 증거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에 부합하는 증거와 함께 더욱 더 강화됩니다. '저게 다 게임 때문'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면서 게임의 산업적, 문화적 영향이 강화된 지금 세상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도 점점 굳어집니다. 자녀와 갈등을 넘어, 급변하는 세상으로부터 부모 자신이 고립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부모 믿음의 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게임이 사라진다면,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는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바뀔까요. 이전에 게임이 없었을 시절에는 모든 자녀들이 공부만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른 행동만 했는지 생각해 보면, 게임 자체가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근거가 불확실한 믿음으로 자녀와 갈등을 만들기 보다는, 자녀가 생각하는 게임의 가치를 물어보고 그 가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부모의 영향력을 더욱 크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1부 연재 참조). 자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부모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자녀의 게임 행동을 바꾸려면 감시하거나 짜증을 낼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자녀의 말을 경청하고 자녀의 가치를 더욱 확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부모의 현명한 지혜입니다.

게임을 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화를 내는 경우는 좀더 복잡한 상황입니다. '화'라는 감정은 권력을 비롯해 심리적, 신체적 컨디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대개 부모들은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자녀에게 공격적인 말투로 쏘아붙입니다. 자녀는 '금방 끝난다'고 건성으로 말하고요. 이때 부모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자녀에게 화를 냅니다. 컴퓨터를 강제로 끄거나, 스마트폰을 아이 손에서 빼앗곤 합니다. 이에 반항하는 자녀에게 더욱 화가 나 큰소리가 연타로 나옵니다. 애초에 게임 행동을 통제하려던 의도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며 감정싸움이 격해집니다. 이때 부모는 자녀에게 게임을 통제하는 능력과 약속을 지키는 규범을 가르쳐야 겠다며 강하게 훈계할 생각을 갖습니다.

이러면 자녀도 화가 납니다. 화는 목표에 방해를 받았을 때 혹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부모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겠지만, 실제로 부모의 일방적인 말을 자녀가 듣지 않는 것에 화를 내는 상황입니다. 반면 자녀의 화는 게임이 강제로 중단된 것과 (자기가 생각할 때)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방해된 것 때문입니다.

잘못한 행동을 고치는데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게임시간 규칙 준수가 목적이라면, 이를 어기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를 알려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화'라는 감정의 이면에는 '내 자식에게 무시당했다'는 숨겨진 믿음이 작동합니다. 무시당했다고 여기면, 어떻게든 복수하려는 동기가 작동합니다. 그게 교육이란 외피를 썼을 뿐입다.

이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부모에게 강압적으로 무시당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에게 무시를 당했다면, 그 강도는 일반적인 무시와는 사뭇 다르지요. 게임 행동을 바로잡는다고 하다가 자칫 부모자녀 관계가 손상되는 소탐대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화'는 심리적, 신체적 컨디션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사소한 잘못 정도는 그냥 넘어가거나 좋은 말로 지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소한 것에도 감정과 행동의 통제가 어렵게 됩니다. 무례한 행동이 나오게 되죠. 특히 부모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는 부모가 자녀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회사나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게임 중인 자녀의 행동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감정적 쓰레기들을 쏟아내는 것이지요. 부모 역시 스트레스를 자신들에게 풀어내는 누구가를 끔찍하게 여기면서, 정작 자녀들에게도 그 끔찍한 행동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지식착각이 집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출처=엔바토 엘리먼트
출처=엔바토 엘리먼트

한 연구에 의하면, 서로 화가 난 상태는 가장 먼저 집중력이 저하되어 눈앞의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며, 정보를 공유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 등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오히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부모가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하더라도 자녀는 단번에 거부하게 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하는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꾸 의심하게 됩니다. 결코 현명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최악의 일이 무심결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글 /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소장 (zzazanlee@gmail.com)

첨단 기술이 사람의 마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문화심리학박사.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게임문화재단 이사,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한국중독심리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대중강연과 IT동아 등의 매체에 기고활동을 하고 있다.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십대를 위한 미래과학콘서트(공저)>등의 저서가 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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