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리플라 “바이오 탱크로 플라스틱 재활용 새 시대 연다”
[KOAT x IT동아]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IT동아는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과 디지털 전환을 이끌 유망한 스타트업을 소개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품, 그리고 독창적인 기술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전국 각지의 농업 스타트업을 만나보세요.
[IT동아 차주경 기자] 플라스틱의 얼굴은 두 개다. 각종 일회용품이나 생필품의 소재로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천사의 얼굴,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아 환경을 오염시키고 미세플라스틱이 돼 사람과 동물의 건강을 위협하는 악마의 얼굴이다.
쓰임새가 많으니, 플라스틱을 우리 생활 속에서 완전히 퇴출할 수는 없다. 업계는 플라스틱의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더할 대안으로 재활용을 제시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면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레 환경 오염을 포함한 부작용도 줄어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활용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용도와 특성에 따라 플라스틱의 종류는 여러 가지로 나뉜다. 그러니 저마다 재활용 방법과 효율이 다르다. 플라스틱이 쓰인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를 재활용하는 기술은 최근에야 개발됐고 발전 속도도 더디다. 그래서 재활용해도 순도가 낮은, 상업 가치가 떨어지는 플라스틱만 나온다.
많은 이들이 이 단점을 해결하려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연구 개발한다. 이 가운데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보육 스타트업인 ‘리플라’는 미생물을 활용해 범용성이 높은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선보였다. 서동은 리플라 대표를 만나 이들의 기술의 원리와 장점, 계획을 물었다.
“리플라의 사업 부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2016년 곤충에서 발견한, 특정 플라스틱만 분해 가능한 균주를 활용해 플라스틱 재활용의 효율과 편의 모두 높이는 기술 ‘바이오 탱크’ 연구 개발이 첫 번째에요. 여러 플라스틱 성분이 섞인 폐기물에서 특정 플라스틱만 분해해 가장 쓰임새가 많고 가치가 높은 PP(폴리프로필렌) 플라스틱만 배출합니다.
이렇게 만든 PP 플라스틱의 순도는 100%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요. 게다가, 이 기술은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에 간편하게 추가 가능해요. 기존 공정의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강화합니다.
두 번째는 재활용 플라스틱의 순도를 측정해 품질을 인증하는 기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품질 인증 결과를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도 운영해요. 재활용 플라스틱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순도’에요.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때 불순물이 섞이면 순도가 낮아지고 상업 가치도 떨어집니다.
재활용 플라스틱의 순도를 검증하는 방법은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리플라는 간편하게, 정확하고 빠르게 재활용 플라스틱의 순도를 측정하는 기기를 제공합니다. 순도 측정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공유해서 재활용 플라스틱을 쓰려는 소비자가 손쉽게 정보를 얻도록 플랫폼도 만들었어요.
세 번째는 특정 플라스틱만 분해하는 기술을 응용한 농촌 폐비닐 처리 기술이에요. 지금까지 농가는 폐비닐 수거를 전문 처리 기업에 맡겼어요. 이 때 지출하는 폐비닐 유통 비용만 연간 5,000억 원이나 됩니다. 리플라의 기술을 농촌에 보급하면, 농가는 유통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손쉽게 인근 공장에 가서 폐비닐을 분해 가능합니다.
폐비닐을 태워 없애면 온실 가스를 만드는 일산화탄소가 나옵니다. 반면, 저희 기술로 폐비닐을 미생물 분해하면 물과 이산화탄소 등 무기물만 남아요. 우수한 친환경 겸 ESG 기술인 셈이에요. ”
미생물을 활용한 플라스틱 재활용 효율 증대와 친환경 분해, 재활용 플라스틱의 품질 검수에 이르기까지 리플라가 다루는 영역은 넓고 깊다. 서동은 대표는 플라스틱 재활용 업계에 혁신을 일으키려는 각오를, 스타트업을 운영하려는 생각을 고등학생 때부터 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시절, 도시광산을 주제로 다룬 전국 과학탐구대회에 참여했어요. 이 때 플라스틱의 재활용 효율이 낮아 많은 문제가 생기는 점을 처음 알았어요.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상품을 만들려면 순도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데, 플라스틱 쓰레기에는 불순물이 많아 순도 높게 재활용하기 어려웠어요. 재활용 비용도 비쌌고요. 자연스레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의 품질 문제가 자주 불거졌고 이는 시장 발전을 막는 장벽이 됐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플라스틱 재활용 논문을 여러 편 읽었고, 저자와 공장에 자문도 구했어요. 방법은 있었습니다. 재활용할 때 특정 플라스틱만 골라서 분해하면 돼요. 그러면 재활용 플라스틱의 순도와 품질을 높여 단가도 1.6배 비싸게 책정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예를 들어 순도 98%인 플라스틱의 가격이 ㎏당 660원이라면, 순도 99.65%인 플라스틱의 가격은 ㎏당 1,008원으로 책정 가능합니다.
하지만, 특정 플라스틱만 분해하는 기술은 당시 걸음마 단계였어요. 설비 설치 가격도 수십억 원이 들 정도로 비싸고 기존의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에 적용하기도 어려웠지요. 문제를 해결하려 꾸준히 연구 개발하다가 마침내 미생물에서 단서를 찾았어요. 연구 개발을 거쳐 특정 플라스틱 성분만 분해하는 미생물을 찾아냈습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바로 창업을 결심했어요.”
대학생 시절, 발빠르게 창업을 준비한 서동은 대표 곁에 사업을 도울 인재들이 속속 합류했다. 박나라 COO는 환경식물신소재공학자다. 그녀는 원래 리플라의 여러 실험을 맡을 인턴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기술 개선에 적극 힘을 보태고 대외전략 수립에도 두각을 나타내자 COO로 섭외했다. 서동은 대표는 그녀를 ‘CFO 역할까지 겸하는 일당백 임원’으로 소개한다.
송한철 부사장은 혐기성 미생물 연구와 이를 활용한 공장 신설 경력, 정부의 각종 에너지 과제 평가와 기술을 자문해 온 백전노장이다. 그는 폐기물협회 행사에서 리플라의 기술을 보고, 서동은 대표에게 자신의 경력을 보태 상승 효과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송한철 부사장은 리플라의 서비스 홍보와 대외 협력, 영업을 책임진다.
김홍래 CTO는 리플라와 유사한 플라스틱 분해 기술 개발 기업을 이끌던 연구자 겸 대표였다. 서동은 대표는 그 기업의 인수합병을 결정하고, 자연스레 기술을 갈고 닦을 실력 있는 CTO를 영입하게 됐다.
서동은 대표와 박나라 COO, 김홍래 CTO는 모두 25세 동갑내기다.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을 더 좋게 만들자는 비전도 공유한다. 젊은이들의 아이디어와 실행력에, 송한철 부사장은 폐기물 시장에서의 오랜 경력과 업계를 분석하는 혜안을 더한다.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혁신이라는 비전 아래 든든한 팀원까지 모였지만, 서동은 대표는 창업 후 수 년간 고난의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실험 결과는 예상과 늘 빗나갔다. 실험 기자재를 확보하는 것도, 진행 자금을 얻는 것도 어려웠다. 어렵게 실험을 해도 결과가 쉬이 나오지 않았다. 1년 동안 한 실험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한다.
“창업 후 3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실험 결과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았거든요. 포기하려는 생각도 몇 번을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제게는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 대표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싶다는 굳은 창업 동기가 있었어요. 힘들 때 이 동기를 떠올리고 초심을 되찾으며 고난을 헤쳐나갔어요.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리플라와 같은 기술 스타트업은 실험을 거듭할 자금을 꼭 확보해야 합니다. 자금 구하러 다닐 시간도 아껴야 해요. 다행히 좋은 투자사를 만나 자금은 물론 멘토링 지원을 받은 덕분에 이 고난을 이겨냈어요. 투자사의 조언 덕분에 연구 기간을 줄이고 더 빨리 목표를 이룰 전략을 세웠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경험으로 삼아 나아가라는 조언도 고마웠어요.”
서동은 대표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지원 정책 덕분에 좋은 투자사를 만났다고 한다. 여느 지원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특히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유용했다고 강조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농업기술진흥원으로부터 여러가지 지원을 받았어요. 농식품 벤처 지원사업도 좋았지만, 제피러스랩 농식품 기술창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아주 큰 도움이 됐습니다. 농업을 다루는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 어려운데, 이 프로그램 덕분에 리플라와 결이 맞는 투자사를 소개 받았어요. 함께 여러 정부 지원 과제도 수행했습니다.
투자 지원뿐만 아니라, 성격이 비슷한 스타트업과 매칭해 상승 효과를 내도록 이끄는 지원도 좋았어요. 실제로 이 프로그램 덕분에 인연을 맺은 한 스타트업과 농촌 폐비닐 재활용 및 운용 사업을 펼 계획입니다. 이름 그대로 농업 스타트업의 액셀러레이팅에 가장 알맞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든든한 팀원의 합류, 여러 기관과 파트너 스타트업의 도움에 힘입어 리플라는 기술과 사업을 순조롭게 고도화 중이다. 이들이 가장 집중하는 사업 부문은 첫 번째,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의 효율과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재활용할 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분류하는 방법은 정확도가 떨어지고 인건비도 많이 써야 합니다. 근적외선 기술도 있는데, 이 경우 검은색 플라스틱은 알아보지 못하고 플라스틱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잘못 분류하기도 해요. 플라스틱마다 비중이 다른 점을 활용해 물에 띄워 분류하는 방법도 있어요. 이러면 밀도가 비슷한 플라스틱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즉, 재활용 플라스틱의 분류 방식에 한계가 있기에 순도를 높이기 어려웠어요. 리플라는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의 맨 마지막에 바이오 탱크를 설치, 미생물로 특정 플라스틱만 분해해 순도를 높이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분류된 플라스틱을 플레이크로 만들고, 건식 살균 후 바이오 탱크에 넣으면 배양액에 들어있는 미생물이 플라스틱 가운데 PP만 남기고 모두 분해합니다. 그 결과물을 건져서 세척 건조하면 고순도 재활용 플라스틱(PP)이 남아요. 물론, 이 미생물은 인체에 무해합니다. 심지어 사람이 먹어도 돼요.
플라스틱 성분 가운데 PP만 남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플라스틱 성분은 분리하기 쉬워요. 그리고 재활용 플라스틱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이 PP입니다. 녹는 점이 높아 배달 식품이나 도시락 용기의 소재로 쓰기에 최근 사용량이 급증했어요. 수요는 많은데, 고순도 PP를 얻을 방법이 마땅찮다는 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기술을 개발했어요.
지난해에 500㎖ 용량, 플라스크로 구현한 바이오 탱크의 효능을 검증 완료했어요. 올해에는 실제 공장에 적용할 5ℓ~5㎘ 대용량 시스템 배양기 설계를 마쳤고, 지금은 이 시스템 배양기의 성능을 검증 중입니다. 이론상으로는 배양기의 크기가 클 수록 미생물의 활동도 활발해지지만, 이를 실제 검증하는 것은 다른 문제에요.”
재활용 플라스틱 순도 측정기의 보급, 농촌의 고민을 해결할 폐비닐 분해 기술 개량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재활용 플라스틱 순도 측정기도 개량 중이에요.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이 원하는 대로 기기를 맞춤형 설계해 공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B2G용 건타입, 초소형 재활용 플라스틱 순도 측정기도 만들었어요. 이 제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재활용 플라스틱의 순도를 측정 가능합니다. 순도 측정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성분별 함유 비율까지 측정하는 똑똑한 제품이에요.
농촌의 폐비닐 처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TIPS 사업에 참가해서 5ℓ 분량의 폐비닐을 분해하는 실험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어요. 목표는 폐비닐 100ℓ를 분해하도록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입니다. 리플라의 친환경 폐비닐 분해 기술을 농가에 보급해 처리 비용과 환경 오염 모두를 줄일 거에요.”
서동은 대표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에 혁신을 일으켜 새로운 가치를 만들 각오를 밝혔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환경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기술입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재활용 플라스틱의 순도를 높이는 것이에요. 리플라는 기존의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 전반에 손쉽게 추가 가능한 범용·고순도 재활용 기술을 보급할 것입니다.
그러면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에는 더 많은 수익을,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자에게는 안정적인 수급원을 각각 가져다 줍니다. 생산자와 수요자를 연결, 고순도 재활용 플라스틱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서 이 산업 자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리플라의 목표입니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