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자판기 시대’ 열릴까…과기정통부 실증 특례 부여
[IT동아 김동진 기자] 2000년 8월부터 진료를 의사에게, 약 조제를 약사에게 각각 맡기는 의약분업이 시작됐다. 동시에 많은 약국이 병·의원 진료 시간에 맞춰 운영한다. 이에 심야나 휴일에 약을 구하기 어렵다는 환자들의 지적이 나왔다.
보완책으로 지역약사회가 휴일에 번갈아 문을 여는 당번약국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자율 운영이라 한계가 있다.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는 제도 또한 한정된 약품 종류와 전문 약사의 상담 부재로 오남용의 우려가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정보통신기술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약 자판기로 불리는 ‘화상투약기’를 규제특례 과제로 승인했다.
약국 문 닫아도 24시간 상담 가능…11종류 의약품 제공
화상투약기는 일종의 스마트 판매기다. 심야나 공휴일에 약국 문이 닫았을 때, 화상투약기의 통화 버튼을 누르면 약사와 원격 통화가 가능하다.
환자는 화상투약기로 약사와 통화하며 복약 지도를 받는다. 따라서 편의점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에서 불거진 약사의 상담 부재와 오남용 우려를 던다.
제공되는 약의 종류는 11가지로 ▲해열·진통·소염제 ▲진경제 ▲안과용제 ▲항히스타민제 ▲진해거담제 ▲정장제 ▲하제 ▲제산제 ▲진토제 ▲화농성 질환용제 ▲진통·진양·수렴·소염제 등 효능품목군인 일반의약품이다.
왜 규제샌드박스 대상이었나
화상투약기는 지난 2012년 이미 약사인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가 개발한 제품이다. 그간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규제 때문이다.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약사의 의약품 판매를 금지한 약사법에 따른 것이다.
과기정통부 디지털신산업제도과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약국 운영시간 외에도 전문약사와 상담해 의약품을 제공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신기술이 이를 도와 국민 편익을 증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심의위원회가 특례를 승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화상투약기 결사반대” 입장 표명
한편, 화상투약기 규제특례 허용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결사 반대 입장이다. 최근 규탄 성명도 발표했다.
반대 이유로는 ▲화상투약기 실증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이 있고 ▲ 인근 약국의 경영 피해를 줄 수 있으며 ▲대한약사회가 추진하는 공공심야약국의 추진 동력이 약화된다는 점을 꼽았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제조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벽 1시까지 문을 열겠다는 약사들을 지원해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화상투약기 시범사업으로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 판매를 금지하는 약사법 위반과 오투약 사고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화상투약기를 개발한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오히려 새벽 1시까지 문을 열지 않아도 집에서 화상으로 복약지도를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약사도 있다”며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규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충분히 검증했고, 현행법에 따라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취자들이 수시로 통화버튼을 누를 것에 대비해 신용카드를 넣어야만 약사와 통화가 연결되는 기능을 넣어 약사를 보호하고 있다”며 “약사가 약을 관리, 제조하며 모든 기록이 시스템 로그데이터로 남기 때문에 오히려 오투약의 위험이 적다”고 주장했다.
연말쯤 서울 시내 10개 약국에 화상투약기 설치
과기정통부 디지털신산업제도과 관계자는 “대한약사회가 반발하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규제특례가 허용된 이상 제조사가 일정대로 화상투약기를 설치한다면, 연말께 서울 시내 10개 약국에 기기가 들어설 것”이라며 “대한약사회가 지지하는 공공심야약국 정책과 화상투약기가 조화를 이루도록 규제특례를 진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가지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건 화상투약기 설치를 확정한 것이 아닌 효용을 살펴보는 과정이라는 점”이라며 “연말쯤 기계를 설치한 약국 이용자들을 면밀히 살피고 무엇이 국민 편익을 증진하는 방향인지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