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되어 돌아온 '몰아보기'…넷플릭스, 전략 바꿀까?
[IT동아 권택경 기자] 넷플릭스를 상징하는 편성 전략이었던 ‘일시 공개’가 흔들리고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경쟁이 심화하면서 콘텐츠 소모가 빠른 일시 공개 전략의 부담이 커진 탓이다.
지난 5월 27일, 넷플릭스는 간판 오리지널 콘텐츠인 ‘기묘한 이야기’의 네 번째 시즌의 1부를 공개했다. 전체 9개 에피소드 중 7개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나머지 두 에피소드가 담긴 2부는 한 달 남짓 지난 후 7월 1일에야 공개됐다.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을 국내에서 리메이크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도 지난 6월 24일 전체 12화 중 1부에 해당하는 6개 에피소드만 먼저 공개됐다. 이에 앞서 '오자크'도 지난 1월과 지난 4월, 1부와 2부가 3개월 간격을 두고 나눠 공개됐다.
2007년 DVD 대여업체에서 OTT로 변신한 넷플릭스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며 급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한 시즌을 방송처럼 한 주에 한 에피소드씩 공개하는 대신, 한 번에 모두 공개하는 ‘일시 공개’ 전략을 펼쳤다.
넷플릭스의 이같은 전략은 한 번에 많은 음식을 폭식하듯(Binge) 드라마 여러 편을 한 번에 몰아보는 ‘몰아보기(Binge-watching)’를 유도하며 넷플릭스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넷플릭스는 시즌 전체를 일시 공개하는 대신 ‘오자크’, ‘기묘한 이야기’,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사례처럼 한 시즌을 반으로 나눠 간격을 두고 공개하는 전략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넷플릭스가 이처럼 편성 전략을 바꾼 건 초창기와 달리 OTT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 새 HBO 맥스,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플러스, 파라마운트 플러스 등 경쟁 OTT가 속속 등장했다. OTT 시장이 무주공산에 가까웠던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한정된 구독자를 놓고 다퉈야 하는 상황이다. 범람하는 구독 서비스로 인해 구독 피로를 호소하는 소비자도 늘었다. 올해 1분기에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넷플릭스 유료 구독자가 20만 명 감소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 소모 속도가 빠른 일시 공개 전략을 유지하는 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순차적으로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방식에 비해 구독자를 가둬두는 록인(Lock-in) 효과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달리 경쟁 OTT들은 처음부터 고전적인 주간 편성을 택했거나, 일찌감치 편성 전략을 수정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간판 오리지널 콘텐츠인 ‘더 보이즈’ 시즌1은 전체를 일시에 공개했지만, 시즌2부터는 일시 공개와 순차 공개를 혼용하고 있다. 첫 3화만 한 번에 공개하고, 이후부터는 매주 한 편씩 순차 공개하는 방식이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몰아보기’ 친화적인 편성 전략을 버리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넷플릭스 테드 사란도스 공동 CEO는 지난 4월 1분기 실적발표에서 “시즌을 나눈 건 코로나19로 인한 제작 지연이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묘한 이야기’ 시즌4가 시즌3 공개 후 거의 3년이 지나서야 공개될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19로 한동안 촬영이 중단된 데 따른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 프로듀서 숀 레비는 미국 영화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분할 편성 이유에 대해 "9개 에피소드가 제때 준비될 것이라 생각치 않았고, 세상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고 밝혔다. 전체 완성이 늦어지자 기다림에 목마른 이용자들을 위해 완성된 만큼만 공개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피터 프리드랜더 넷플릭스 북미 드라마 부문 담당도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 회원들이 (콘텐츠를) 보는 방식에 대한 선택권을 주기를 원한다”며 편성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계속해서 이러한 전략을 고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넷플릭스가 수익성 강화를 위해 기존 정책을 뒤엎은 사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오랜 기간 광고 요금제 도입에 부정적이었으나 수익성 악화로 태도를 바꿨다. 지난 14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광고 요금제를 도입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