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하루에 600원"…구독 서비스 '역린' 건드렸다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구독권을 1일 단위로 쪼개 파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웨이브, 왓챠, 티빙 등 국내 OTT 3사는 각각 영업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습니다. 이같은 서비스가 확산하면 자칫 월정액 기반의 OTT 서비스 모델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문제가 된 서비스는 지난달 무렵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페이센스입니다. 페이센스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디즈니+. 라프텔 이용권을 400~600원 수준의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페이센스가 직접 4인 이용 계정을 확보한 뒤 이를 쪼개서 되파는 방식인 거죠.

출처=페이센스
출처=페이센스

넷플릭스 1일 이용권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페이센스는 계정 하나당 30일 동안 최대 약 7만 2000원(600×4×30=72000)의 매출을 올릴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프리미엄 구독료가 월 1만 7000원이니, 5만 5000원 정도를 차익으로 남길 수 있는 셈입니다. 참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페이센스는 매우 편리한 서비스처럼 보입니다. 한 달 구독료를 다 내는 대신 원하는 기간만큼만 이용하며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OTT 플랫폼이 파편화하면서 증가한 구독 비용에 대한 부담, 이른바 ‘구독 피로’를 잘 노린 서비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 덕분에 페이센스는 등장 직후부터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높은 관심이 실제 수요로 이어진 듯 일부 플랫폼 이용권이 품절되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OTT 업계에서는 페이센스의 등장을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4인팟’을 꾸리며 OTT 계정 하나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저렴한 가격에 사용한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는 명백히 약관 위반입니다. 국내외 OTT 서비스는 대부분 가족이나 가구 구성원을 제외한 타인에게 계정을 공유하는 걸 약관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계정을 재판매해 이익을 거두는 영리 활동도 물론 금지합니다.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 허용 범위를 '가구 내'로 제한한다. 다른 OTT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 허용 범위를 '가구 내'로 제한한다. 다른 OTT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출처=넷플릭스

그동안 OTT 업체들은 이러한 이용 행태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은 한편, 이용자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하는 면도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묵인이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죠. 수익성 악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넷플릭스 정도만 계정 공유에 추가 요금을 추과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이센스는 앞선 사례들과 달리 ‘선을 넘는다’는 게 OTT 업계의 판단입니다.

실제로 구독 서비스를 지탱하는 힘은 낙전 수입에서 나옵니다. 낙전 수입은 정액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제공되는 혜택을 다 누리지 못하고 남겼을 때 발생하는 수입을 말합니다. 구독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한 달에 드라마나 영화 두세 편 볼까 말까 한 라이트 유저들이 매일 부지런히 서비스를 이용하는 헤비 유저들로부터 발생하는 비용을 떠받치는 구조인 거죠. 뷔페식당에 대식가 몇 명쯤 나타나더라도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은 ‘본전’을 뽑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수익이 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나타나 뷔페에서 무제한 제공되는 음식들을 보관용기에 쓸어 담은 뒤 이를 입구에 차린 가판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재판매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뷔페는 얼마 안 가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물론 그 전에 뷔페식당이 그런 일을 가만 두고 볼 리가 없겠죠. OTT 업계가 페이센스에 유독 발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페이센스가 구독 서비스의 수익 구조를 근간부터 뒤흔들기 때문입니다. OTT 업체들은 피해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수익을 분배받는 콘텐츠 제공사들에게까지도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한 OTT 업체 관계자는 “단건으로 이용하려면 몇천 원에서 몇만 원까지 드는 여러 콘텐츠를 한 곳에 모아놓고 월정액으로 저렴하게 공급하는 게 구독 서비스다. 이러한 서비스를 월정액 기반이 아닌 단건으로 이용할 수 있게 제공하는 건 구독 서비스 모델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출처=페이센스
출처=페이센스

페이센스 측의 입장은 어떨까요? 페이센스는 홈페이지 내 ‘자주 묻는 질문’ 문서에서 “페이센스는 법으로 정해진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OTT 업체들 판단은 다릅니다. 이들은 페이센스 서비스가 저작권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고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이센스가 이번 주 내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서둘러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한 페이센스 측의 입장을 묻기 위해 연락했으나 “페이센스는 오픈한 지 막 2주 된 서비스이고 작은 스타트업이다. 취재 요청에 응하기 많이 부담스러운 상황임을 양해 부탁드린다”는 말 외에 추가적인 답변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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