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人] 흙·농작물에 반한 젊은 농부, 퍼밋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 이야기
[IT동아 차주경 기자] ‘스타트업人’은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스타트업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정확히는 ‘그들은 무슨 일을 할까?’라는 궁금함을 풀고자 합니다. 많은 IT 기업이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데, 정작 해당 인재는 그 기업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잖아요. 예를 들어, 같은 부서, 같은 직함을 가진 구글의 인재와 페이스북의 인재는 똑 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요?
이번에 스타트업人으로 소개하는 기업은 스마트팜을 포함해 다양한 농업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퍼밋(FIRMMIT)’입니다. 농작물 혹은 설치 장소별 스마트팜 설계와 구축, 운영 관리 기법을 연구하고 데이터를 활용한 농작물의 생육 환경 개선까지 해 내는, 재주 많은 스마트팜 스타트업입니다. 창업 이후 매년 매출을 두 배씩 늘리며 순조롭게 성장 중이고, 하이트진로를 포함한 대기업과의 파트너십과 해외 농업 시장 진출 등 성과도 차근차근 내는 곳입니다.
퍼밋에서 만난 인재는 ‘손준형 퍼밋 매니저입니다. 그는 퍼밋의 농장과 스마트팜의 시설, 운영 인력과 일정을 관리하는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농작물 재배와 수확 기술을 연구하는 것도 그의 임무입니다. 이제 갓 나이 서른 살을 넘은 젊은이가 농장과 스마트팜, 흙과 농작물에 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는 퍼밋과 스마트팜 업계에서 재배 관리자로 일 하며 어떤 청사진을 그렸을까요?
IT동아 : 안녕하세요. 퍼밋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손준형 매니저 : 퍼밋은 직영 농장을 세 곳 운영합니다. 서울 송파와 경기 연천, 경기 양평인데요, 이 곳에 있는 스마트팜과 농작물 재배 시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책임자입니다. 시설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정 배분과 교육, 농작물의 재배와 수확 관리도 제 몫이에요.
IT동아 : 시설과 인력, 농작물 등 스마트팜 관리 전반을 책임진다고 보면 되겠네요. 스마트팜 관리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농장에 디지털·정보통신기술을 더한 것이 스마트팜이니, 아날로그 위주로 운영하던 기존의 농장과는 관리 방법과 체계가 다를 듯한데요.
손준형 매니저 : 네. 아무래도 스마트팜 자체가 최신 기술이다보니 일반 산업처럼 명확한 관리 체계가 세워지지 않았는데, 그 체계와 기준을 세우는데 힘을 보탠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일 하는 범위도 아주 넓고요.
스마트팜 관리라고 하면 대개 도시 안에 컨테이너, 식물 재배기를 설치하고 여기서 농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일을 떠올리기 쉽지요. 이것도 맞지만, 스마트팜 관리 업무의 범위는 더 넓습니다. 스마트팜의 개념 자체가 여러 가지에요.
스마트폰이나 PC로 기존 농장, 온실의 환경을 원격 통제하는 것도, 데이터를 반영해 수확량을 늘리고 농사를 짓는 수고를 줄이는 것도 모두 스마트팜입니다. 도심 공간에서 대형 식물 재배기로 엽채류를 기르는 것도, 사무실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과채류를 기르는 것도 스마트팜이에요. 기존의 농업 기술과 접목해 효율을 높이는 기술 모두 스마트팜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적용 범위가 이렇게 넓다 보니, 관리 체계도 잘 짜야 해요. 우선 스마트팜이 움직이는 원리와 기술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농장 현지에서 사람이 할 일을 정리합니다. 농작물 재배와 수확 데이터도 꼼꼼하게 살펴야 합니다.
농작물을 기를 때 약은 어떤 것을 얼마나 사용할지, 이 과정에서 병해충은 얼마나 피해를 입히는지, 약 투여와 재배 방식의 조합으로 농작물의 생육은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조사하고 관리해요. 물론, 수확과 포장 등 유통 관리도 필수입니다.
이렇게 스마트팜 전반을 체계화해 관리하면 다양한 데이터를 얻습니다. 이 데이터는 귀중한 경험이자 또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가 됩니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퍼밋 임직원들과 논의하며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실험하는 것도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의 역할입니다.
IT동아 :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는 정보통신기술과 농작물 재배 기술, 성과를 데이터화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해결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하는군요. 몸은 힘들어도 얻는 것이 많고,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농업 시장을 주도할 매력적인 직업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손준형 매니저 : 사실 전공은 스마트팜과 전혀 관계 없는 무역국제경상학이었어요. 어렸을 때 꿈도 무역 회사를 다니는 것이었고, 그래서 싱가포르로 유학을 떠나 영어를 배우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했죠. 미래지향적인 기술, 나만이 쌓을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요. 그 때 관심을 가진 부문이 대체에너지와 농업이었어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처음에는 농업이 대체에너지보다 더 접근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어요. 금방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스마트팜을 다루는 기업을 검색하다 퍼밋을 알게 됐어요. 이 기업은 왠지 저와 잘 맞을 듯하다는 판단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입사하고 나서 만난 농업은 정말 심오하고 배우기 어려운 것이었어요. 농사 기술과 비료 소재, 농작물 공부부터 열심히 했습니다. 퍼밋의 파트너 농부들, 재야에 있던 농업 고수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딸기 농가로부터 딸기 묘를 받는 방법과 수급처, 생육법 등 생생한 경험과 지식을 고스란히 전수 받았습니다. 파트너 농부들도 제가 적극 연락하고 도움과 조언을 요청하니, 마음을 열고 친절히 비법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낸 성과를 보고 뿌듯하다며 칭찬도 해 주셨습니다.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로 일 하는 보람도 느꼈고요.
IT동아 : 우여곡절이 많았군요.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를 꿈꾸는 이에게 줄 조언이 있다면?
손준형 매니저 : 현장에 답이 있어요. 대학교나 학원 등지에서 농업을 배우는 것도 좋은데, 거기에 농사를 오래 지은 농부들의 현장의 노하우를 더해야 비로소 성과를 얻을 것입니다. 농사 기술은 당연히 농장에서 배워야 해요. 교재로, 강의로, 동영상으로 배울 수도 있지만, 거기에 반드시 실전을 더해 경험을 체득해야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농업에는 변수가 정말 많아요. 온습도와 강수량은 기본이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대응할 일이 분명 생깁니다. 그러려면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어요. 농사 고수들과 함께 일 하며 이들의 노하우를 배우세요. 그러다가 나만의 기술과 이론을 만들면, 이를 또 농부들과 나누며 발전시켜야 합니다.
스마트팜은 농업의 다양한 변수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농업에는 왕도가 없어요. 예를 들어 벼에 물을 주는 것만 해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해의 방향과 햇빛의 세기에 따라 물의 양은 물론 주는 시간까지 조절해야 합니다. 이건 공식으로 만들 수 없어요. 그러니 꼭 농사 현장에서의 경험을 쌓고, 농부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는 농장과 농작물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한 퍼밋 직원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도 이곳저곳 농장을 보러 다녔습니다. 대표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처럼 스마트팜과 농작물에 애정을 갖고 돌보고 키워야 해요.
IT동아 : 회사를 사랑하는 직원이 많을 수록 대표는 행복해지고 기업은 발전하기 마련이지요. 스마트팜을 다루는 많은 기업 가운데 퍼밋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손준형 매니저 : 퍼밋은 다양한 시도를 권장하는 기업이에요. 일반 기업은 업무 수주량과 매출 등 숫자로서의 실적을 우선하는데, 퍼밋은 경험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직원이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길러보고 싶다고 하면, 근무 시간을 조절하고 농장을 내 주는 등 전폭 지원해줘요. 한두 주일이 아니라 한두 달씩 농사에 매진하는 것까지도요. 물론, 여기 들어가는 비용도 퍼밋이 지원합니다. 직원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아요.
퍼밋의 가치관은 ‘농민과 함께 일 하며 이들을 돕는 것’입니다. 스마트팜 기업은 대개 농장의 효율을 높이는 정보통신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데 집중합니다. 반면, 퍼밋은 스마트팜과 정보통신기술은 물론 농작물 재배 기술도 연구 개발해요. 그래야 농가의 문제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농민의 입장에 서서 문제와 고민을 알아내고 기술로 푸는 기업입니다. 이 점도 인상 깊었어요.
IT동아 :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 유망한 지식을 배우면서 농민과 함께 성장하고 수확물도 얻는 매력적인 직업으로 보이는데요, 고민이나 힘든 점은 없나요?
손준형 매니저 : 퍼밋 농장과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농작물은 대부분 지인에게 선물로 줍니다. 노력의 결과물을 받은 지인들로부터 ‘맛있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정말 행복해요.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다’나 ‘작년에 받은 것보다 맛있다’는 칭찬도 좋아합니다. 이것은 제 역량이, 나아가 퍼밋이라는 회사의 역량이 그 만큼 발전했다는 의미니까요.
물론 고민도 있어요. 스마트팜, 농작물 재배 관리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농업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온습도와 강수량, 날씨 변화 등을 세심히 살펴야 하는데, 이것은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어요.
게다가 농업에서 작기(작물의 생육 기간)는 대부분 1년 단위로 운영합니다. 즉, 내가 농작물을 재배할 때 실수를 한 번 하면 그것을 바로 만회할 수 없고, 다음 작기인 1년 후에 고쳐야 해요. 한 번의 선택이 1년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신중하게 판단해도 실수가 생기고, 그러면 자책하게 돼요. 오래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도 이런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되도록 농부들의 지식을 많이 배우고 경험하며 체득해서 고민할 일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IT동아 : 퍼밋에서, 스마트팜 업계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성장하고 싶나요?
손준형 매니저 : 우선은 퍼밋에서 스마트팜 경험을 쌓아 최고의 농부이자 스마트팜 재배 관리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저와 회사가 함께 발전한 후, 나중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짓고 싶어요. 농장이라기보다는, 누구든지 와서 농사를 체험하고 농작물을 얻는 카페, 커뮤니티로 소개하는 것이 알맞겠네요. 딸기를 예로 들면, 소비자가 농장에 와서 딸기 농사와 수확을 체험하고, 자신이 수확한 딸기로 빵이나 과자를 만들어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물론, 농사와 수확 체험을 할 때에는 퍼밋의 스마트팜 기술을 활용해야지요. 그러면, 퍼밋과 제가 함께 성장하겠지요? 이를 응용하면 지역 특산물과 상품을 홍보하는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해요. 또한,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농사 체험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커뮤니티도 됩니다. 농사를 오래 지은 농부와 귀농하려는 젊은이를 연결하는 세대융합의 장이기도 하고요.
퍼밋에서 일 하면서 경기도와 전라남도 일부 지역에 스마트팜을 보급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농촌 대부분은 스마트팜의 수혜를 입지 못했어요. 아직 스마트팜이 보급되지 않은 지역에 퍼밋의 기술과 제 농장을 전파하고, 퍼밋과 농촌과 제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