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서충모 미드바르 “에어로포닉스 스마트팜, 푸른 광야와 우주에 꽃 피운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신기한 광경이었다. 실험실 안에서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벽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벽 뒤에는 안개처럼 부옇게 물이 뿌려졌다. 흔히 식물은 흙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빨아들인 물과 내리쬐는 빛을 양분 삼아 자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팜 스타트업 ‘미드바르’의 실험실에서는 흙과 물 없이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서충모 대표가 이끄는 미드바르는 히브리어로 ‘광야’를 말한다. 학창시절부터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을 가진 그는 20대가 되자마자 세계 곳곳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했다. 태국 고아원의 무구한 아이들, 네팔에서 하루에 1 달러(1,170 원)도 채 되지 않는 적은 돈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만난 그는 스타트업 창업을 결심한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기술로 바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목표도 세웠다. 척박한 땅 광야에 꽃을 피우는 스타트업이기에 이름을 광야, ‘미드바르’로 정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봉민균 COO가 서충모 대표의 미드바르에 합류했다. 모교 한동대학교도 힘을 실어줬다. 한동대학교의 표어가 ‘배워서 남 주자’와 ‘Why Not Change the World’라고 한다. 서충모 대표는 한동대학교와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MBA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해 첨단 농업 기술을 배웠다. 그 곳에서 미드바르의 사업 영역이 될 기술 ‘에어로포닉스’를 발견했다.
에어로포닉스는 땅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식물을 기르는 기술이다. 지지대를 세우고 이 곳에 식물을 심는다. 식물의 뿌리만 노출하도록 고정한다. 노출된 뿌리에 물과 영양제를 섞어 안개처럼 분무한다. 그러면 뿌리가 산소, 물과 영양제를 많이 빨아들여 식물이 더 빨리, 잘 자란다.
이 기술은 엽채류, 의료용 헴프, 당근, 감자 등 다양한 작물에 적용 가능하다. 넓은 논밭이나 농장 없이 언제 어디서나 식물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지지대도 벽에 세우거나 천장에 매다는 식으로 어디에든 설치 가능하다. 책상 위에 올려놓을 작은 것에서부터 일반 논밭과 비슷한 큰 것까지, 크기도 자유자재로 설계한다.
미드바르의 무기는 에어로포닉스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공기 중에서 물을 모으는 기술을 더한다. 그러면 물이 없는 곳, 건물 안은 물론 사막이나 건조한 나라에 농장을 세울 수 있다. 심지어 우주에서 식물을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 까닭에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도 에어로포닉스 기술을 주목한다. 최소한의 물로 어디서든 농업이 가능한 세상, 서충모 대표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 기술 특허를 이스라엘에 출원, 기술 등록을 마친 박다니엘 CTO도 미드바르의 일원이다.
광야를 푸르게 만들려는 이들의 모임, 미드바르를 업계가 주목했다. 문을 연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지만, 미드바르는 Tips R&D 정부 사업에 선정되고 시드 투자까지 마쳤다. 성과를 토대로 2022년에는 경북 안동 의료용 헴프(Hemp) 규제자유특구에 참여해 의료용 헴프를 지배한다.
헴프는 중독 성분을 없애고 약용으로 재배하는 ‘대마’다. 간질과 뇌전증, 치매와 루게릭 병 등 불치병으로 알려진 질병을 개선하는 탁월한 효과를 내는 작물로 알려졌다. 북미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헴프의 효능을 강화하려 재배에 나선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안동이 규제 특구에 선정돼 19개 기업과 함께 의료용 헴프를 연구한다. 이 기업 중 한 곳이 미드바르다.
서충모 대표는 미드바르의 에어로포닉스 기술을 의료용 헴프를 재배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소개한다. 선진국의 의료용 헴프 재배 연구 결과에서도 같은 설명이 나온다. 비교적 단순한 시스템이지만, 헴프를 키우는 효율이 높은 덕분이다. 미드바르는 나아가 고부가가치 작물인 의료용 헴프를 개발도상국에 보급하려 한다. 에어로포닉스 기술을 쓰면 자연 파괴 없이, 어디에든 의료용 헴프 농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선진국은 양질의 의료용 헴프를, 개발도상국은 수익을 얻는다.
미드바르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IoT를 기반으로 생육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을 구축한다. 에어로포닉스로 구성한 스마트팜의 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생육 데이터를 활용해 작물을 재배할 때 쓰는 비용과 자원을 절감하는 것, 앞으로 농업을 포함한 기업 운영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ESG 경영 기조와도 알맞다.
서충모 대표는 세계 곳곳의 광야를 푸르게 만드는 꿈을 가졌다. 물론, 우리나라의 광야도 포함된다. 식물뿐 아니라 농업 문화와 기술을 전파하고 젊은 피를 수혈하려 시도한다. 미드바르는 경북 문경 가은읍에 스마트팜 공동체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약 3만 평의 공간을 확보하고, 이 곳에 에어로포닉스 설비를 세울 예정이다. 청년 농부들이 농업을 배우고 실험하며 거주하는 공간이 될 전망이다.
동시에 이 곳은 우리나라 곳곳에 에어로포닉스를 보급할 전초 기지가 된다. 에어로포닉스는 고가의 설비를 대규모로 갖춰야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서충모 대표는 규모가 작은 농가들도 에어로포닉스의 효과를 제대로 얻도록, 충분한 생산 효율을 내도록 기술을 연구개발 중이다.
이스라엘 현지 특허를 가진 만큼, 그 곳의 농업 기술 기업과의 협력도 강화한다. 정밀 제어 농업 기술을 가진 이스라엘 회사들과 협력 관계를 만들고, 양국의 연구개발 펀드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뜻이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성과가 빨리 나온다. 이미 미드바르가 여러 번 증명한 명제다. 이를 이끌 이스라엘 지사 설립도 검토 중이다.
쉬지 않고 달려와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성과를 거둔 서충모 대표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TIPS 과제 선정과 시드 투자 유치 덕분에 자금은 확보했지만, 농업 기술을 연구개발할 인력을 구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고 고백한다.
그는 ‘광야를 푸르게 한다’는 미드바르의 비전 안에서 함께 협력할 동료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은 청년, 농업을 바꿀 기술을 가진 이, 농업 경험을 쌓고 싶은 누구에게나 미드바르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서충모 대표는 2022년, 경북 안동 의료용 헴프 규제자유특구에서 헴프 재배 기술과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스마트팜은 지역 농민 누구나 손쉽게 쓰도록 가격대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시범 농가를 세 곳쯤 구축한다. 공기 중 물을 포집하는 기술도 고도화, 농업 용수를 공기에서 얻는 스마트팜도 연구개발한다. 이를 토대로 그는 미드바르의 목표, 푸르러진 광야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