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인사이트] 심해 자원 탐사와 관리를 자율주행으로?
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인류의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수중탐사
북미 지역에 있는 ‘챔플레인 호수’는 미국 버몬트 주 챔플레인 지역과 캐나다 퀘백 주를 관통합니다. 길이 약 172km, 최대너비 23km로 면적은 무려 1,269㎢에 달하는데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해 일찍부터 관광 지역으로 개발되었습니다. 낚시, 수상 스포츠 등 여가 활동을 일년 내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죠.
그런데 이 호수에는 무서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챔플레인 호수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수중 괴물 ‘챔프’에 대한 괴담이죠. 지난 2009년 챔플레인 호수를 방문해 휴가를 보내던 회사원 에릭 올센이 아름다운 호수 전경을 카메라로 담기 위해 촬영을 했는데요. 사진에는 거대하고 괴상한 생명체가 수면 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답니다. 이 사진을 계기로 챔플레인 호수의 괴물을 보았다는 증언들이 이어졌어요.
사실 이런 수중 괴물 괴담은 다양한 지역에 퍼져 있죠. 스코틀랜드 네스호에 출몰한다는 괴물 ‘네시’부터 백두산 천지에 살고 있다는 ‘백두산 천지 괴물’까지. 인적이 드물거나 넓은 호수에는 항상 괴생명체가 존재 한다는 미스터리한 소문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호수나 깊은 숲 속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괴담은 어릴 때부터 종종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괴물 이야기와 모빌리티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괴물의 존재 여부는 실제로 증명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죠. 그동안 많은 사람이 괴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장소를 방문하며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러 이유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앞으로는 모빌리티 기술을 활용해 괴물에 대한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깊은 호수 속, 빛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바다 속과 같은 미탐사 지역을 모빌리티 기술로 정복할 수 있으니까요. 심해 모빌리티 관련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류가 밝혀내지 못한 깊은 물 속의 다양한 생태계와 환경을 분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깊은 물 속’이라는 말만으로도 어쩐지 무섭습니다.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아무런 정보 없는 곳에 접근하거나 탐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목숨이 위험한 지역,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물 속에 들어가라면, 누구라도 시도하기 어렵죠. 하지만,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무인 잠수정이라면 어떨까요? 자율주행 자동차, 에어택시, 드론, 무인항공기 등 육상과 공중에는 이미 수많은 ‘무인’ 모빌리티 기기가 돌아다닙니다. 네, 맞습니다. 무인 잠수정을 보내는 거죠.
자율주행 선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 속은 또 다른 이야기네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이 잠수정을 운전하거나 탑승할 일은 많지 않겠죠. 당연히 잠수정 기술에 대한 관심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깊은 물 속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인류의 과제 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생물을 발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자, 지하 자원을 발견할 수 있는 개척지일 수도 있으니까요.
잠수정은 크게 ‘유인 잠수정(Manned Submarine)’과 ‘무인 잠수정(Unmanned Underwater Vehicle)’으로 분류합니다. 무인 잠수정은 한 번 더 ‘원격 무인 잠수정(Remotely Operated Vehicle, 이하 ROV)’과 ‘자율 무인 잠수정(Autonomous Underwater Vehicle, 이하 AUV)’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ROV는 모선에서 원격으로 조종해 수중에서 작업하는 로봇입니다. 일반적으로 모선과 잠수정을 케이블로 연결하는 형태인데요. 케이블을 통해 전력을 공급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현재 수중 작업의 80%를 담당하고 있으며, 각종 센서와 로봇 팔을 장착해 유전 탐사, 수중 구조물 조사, 난파선 조사 등에 투입됩니다.
AUV는 모선과 연결한 케이블 없이 스스로 작업을 수행합니다. 카메라, 음파 탐지기, 깊이 센서 등을 탑재하고 있는데요. 실시간으로 영상을 관제실에 전송하는 ROV와 심해 탐사 중 수집한 영상, 이미지, 각종 데이터 등을 저장합니다. 즉, 탐사를 마친 뒤에 확인할 수 있죠.
현재 무인 잠수정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 인가요?
최근 자율주행, 로봇 기술 등 4차산업 기술 발전에 힘입어 AUV가 점차 ROV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양 선진국이 무인 잠수정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미국은 세계 최초로 무인 잠수정을 실전에 투입했습니다. 군대에서 효율적인 무인 잠수정을 운용하기 위해 감시·정찰(ISR), 대기뢰전(MCM), 대잠전(ASW), 탐지·식별, 해양조사, 통신네트워크, 운송, 정보작전 등으로 분류해 적합한 무인 잠수정을 분류하는 ‘UUV 마스터 플랜’을 발표하는 등 무인 잠수정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데요. 주요 석유 회사를 중심으로 석유, 가스, 광물 등 지하 자원을 조사하면서 미래 지향적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등 민간 분야에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기뢰 수색 및 수중 정찰 등 군사용으로 집중 개발하고 있습니다. 민간 분야에서는 주로 심해 탐사, 재난 구조 등에 활용하죠. 최근에는 여러 대를 동시에 투입하는 ‘군집 방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2월,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탐색할 당시에도 AUV 4대를 동시 투입해 이틀만에 블랙박스 위치를 찾아냈죠.
미국의 록히드마틴, 노스럽그루먼, 오션니어링인터내셔널, 스웨덴의 Saab, 노르웨이의 콩스버그 그루펜 등 글로벌 기업들도 무인 잠수정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글로벌 리서치펌 ‘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전 세계 무인 잠수정 시장 규모는 2020년 20억 달러(한화 약 2조 3,600억 원)에서 2025년 44억 달러(한화 약 5조 2,000억 원)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6.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무인 잠수정 시장에 참여하고 있었군요. 그렇다면 주목받는 무인 잠수정 기업은 어떤 곳 인가요?
영국 브리스톨에 본사를 둔 ‘로브코(ROVCO)’ 입니다. 로브코는 2016년 설립해 3D 컴퓨터 비전과 인공지능 기술을 장착한 AUV와 ROV 관련 기술을 활발하게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수중 구조물을 조사하고 검사하는 것과 3D 모델링에 초점을 맞춘 ROV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영국이나 중동, 태평양, 남미지역 등에서 ROV 탐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로브코의 AUV는 외부 센서에 의존하지 않고 사물의 위치를 추적해 데이터를 측정하고 수집하는데요. 머신러닝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결함을 감지하고, 부식 변화 등도 실시간 관측합니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3D 사진을 구현합니다. 수중 조사 중에 수집한 데이터의 품질을 향상시켜 실제 크기로 구현하죠. 사물 간 거리 측정, 표면적 및 부피 계산, CAD 도면 오버레이, 추가 조사 데이터 통합 등 다양한 측정 기술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로브코는 수중 탐사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해 3월, 별도의 로봇 기업인 ‘바스트(Vaarst)’를 출범시키기도 했습니다. 해양 작업을 자동화해서 프로젝트 공사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주목 받았죠.
우리나라는 무인 잠수정 개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우리나라도 꾸준히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해양수산부는 ‘차세대 심해용 무인 잠수정 개발 사업’을 통해 심해 무인 잠수정 ‘해미래’를 개발했죠.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 달성한 심해 무인 잠수정 개발입니다. 결코 해양 선진국에 뒤쳐지지 않죠. 해미래는 모선과 잠수정을 케이블로 연결한 ROV입니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지난 2020년부터 향후 5년 동안 수온, 염분 등을 감지하는 AUV 관련 기술 ‘수중 글라이더 핵심장비 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내 민간기업 중에서는 한화시스템이 있습니다. 수중 및 수상 자율운항 기술, 무인 군집제어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지난 6월,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KIMST)이 주관하는 ‘군집수색 자율 무인 잠수정 및 운용시스템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카이스트, 한국해양대 등과 함께 인명구조를 위한 군집 수색 자율무인 잠수정 및 운용시스템도 개발하고 있죠.
향후 우리나라가 해양 산업을 선도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다양한 연구과제를 통해 무인 잠수정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AUV의 비싼 가격이 걸림돌입니다. 유지 보수, 제조, 탐사, 측량 활동 등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죠.
그리고 지난 30년간 우리나라는 플랫폼 위주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반면, 로봇의 자율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개발은 미진했다고 하는데요. 잠수정 관련 기술 전문가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술개발 중심의 연구에서 알고리즘 개발로 전환해야 한다고 평가합니다. 해양 선진국럼 다양한 기업이 전문 소프트웨어를 활발하게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국내 연구사례에서는 아직까지 수중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상용화 제품이 전무합니다. 기술개발 수준에서 벗어나 ‘진짜 쓸모 있는’ 무인 잠수정을 개발해야 한다는 거죠. 향후 우리 기술로 제조하고, 운용하며, 유지보수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해봅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이경현 소장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 가능성을 파악한 뒤,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 컨퍼런스 개최를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 정보를 제공하는 웹서비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