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콘텐츠를 외치다, 2021 콘텐츠임팩트 (4)
[IT동아 남시현 기자] 랜디 저커버그(Randi zuckerberg)가 설립한 미국의 공연 액셀러레이터 기업 ‘애플스 앤 오렌지 아츠(Apples and Orange Arts)’는 연극 무대에 혼합 현실을 조합한 몰입형 가상 뮤지컬 극장 개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적 형태의 공연을 보유한 극단, 기획사가 애플스 앤 오렌지 아츠의 제작팀과 접촉하면, 기존의 공연은 새로운 포맷의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 콘서트나 실시간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이하 AR) 공연 등으로 재탄생한다. 공연 제작자는 새로운 차원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고, 후원자와 투자자 등 액셀러레이터는 공연의 소유권, 수익 등을 통해 이득을 내는 구조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기존의 공연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번에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2010년대 초에 잠깐 등장했던 3D 안경이나 4D 극장 등의 기술과는 추구하는 방향도, 결과물도 완전히 다르다. 기존에 등장한 기술들이 연극, 공연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부가적인 장치였다면, VR, AR 등 혼합 현실(mixed reality, 이하 MR)의 적용은 공연을 보는 시간이나 공간적 제약, 무대 장치의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공연을 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4차 산업의 등장으로 비상하는 공연 업계
우리나라에서도 기존 공연 업계의 역량과 4차 산업혁명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와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조현래, 콘진원)이 주최하는 ‘2021 콘텐츠임팩트’ 사업은 5G, 블록체인, 빅데이터, AR, VR 등 미래 기술과 관련된 콘텐츠 기업, 창작자와 개발자의 협업을 통해 차세대 문화 및 예술 시장을 이끌 미래 융복합 전문 인재를 양성을 목표로 한다. 사업은 지난 2018년 시작해 올해로 네 번째에 접어들고 있으며, 4차 산업 기술과 예체능을 결합한 창의적인 문화 예술 및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사업에는 총 193명의 교육생이 참가해 ▲ 과학 기술과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다빈치 프로젝트’ ▲ 감성 인식 기술과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조합한 ‘콘텐츠, 공감하다’ ▲ 공연 기술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합친 ‘Future on the Stage’ ▲ 실감 기술과 메타버스가 합쳐진 ‘콘텐츠, 메타버스로 진화하다’ ▲ 인공지능과 하이브리드 콘텐츠를 조합한 ‘AI Meets Hybrid’까지 다섯 개의 세부 주제를 두고 37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현재 모든 프로젝트는 지난 11월 2일에서 9일 사이에 걸쳐 결과를 발표하는 ‘통합 쇼케이스’까지 진행됐으며, 이들이 보여준 열정을 다섯 차례에 걸쳐 시리즈로 전달한다.
공연 기술x라이브 퍼포먼스를 조명하다
팀 ‘디컬리전’의 ‘SPOT-LIGHT’는 대구 지역 최초의 민족 자본 백화점, ‘무영당’의 유산을 재해석한 프로젝션 맵핑, 라이트 아트 등이 결합한 ‘무영당 재개점식’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무영당은 1937년 미국식 빌딩 개념을 도입해 콘크리트로 건립된 건물로, 상점 건물을 대형화하고 다양한 장식을 강조해 건축사적 의의가 상당하다. 현재 대구시는 무영당을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매입 후 보존에 나선 상황이다.
디컬리전은 무영당이 이상화, 이인성, 백기만 등 대구 지역 예술인들의 교류의 장이었던 점, 그러면서 지역민들에게 잊혀져가는 무영당의 역사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무영당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공연을 선보인다. 공연은 백화점 재개점을 알리는 영상과 미디어 아트가 전시되고, 쇼핑하러 온 이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연출한다.
‘레이어즈’ 팀의 ‘여정 - NEON 도깨비’는 다양한 특기와 개성을 가진 멤버 여섯 명이 모여 각자의 예술적 층계를 하나의 공연으로 선보인다. 팀 이름인 레이어즈도 층계를 뜻하는 영어 단어 Layers를 의미한다. 이들은 새로운 색깔로 재해석한 도깨비 이야기를 소재로, 콘텐츠임팩트가 진행되는 반 년의 시간동안 함께 ‘여정’하는 과정을 그린다. 공연의 주요 줄거리는 방망이를 잃어버린 도깨비들이 새로운 색을 찾아 나서면서 라이브 연주와 마술 공연 등을 진행하며, 공연과 함께 프로젝션 맵핑 기술과 사운드 인터랙션 기술이 가미된다.
팀 ‘시작’이 진행하는 공연, ‘신곡’은 한국의 전통 음악과 VR이 결합하고, 이를 토대로 인터넷 플랫폼에 따라 형성된 개인의 여러 가지 자아를 성찰해 보는 과정을 그렸다. 공연은 신석초의 ‘바라춤’을 인용하며, 진도 씻김굿과 자진 살풀이, 서양 오케스트라를 한데 엮어 VR로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다. 작품 구성은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身(몸 신), 申(거듭 신), 訊(물을 신), 神(귀신 신), 身(몸 신)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눠 자아성찰 과정과 자아성장을 그린다.
‘육감도’ 팀의 ‘상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 시인 이상이 쓴 ‘오감도 시제 15호’ 속의 거울 세계를 21세기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와 같은 세계 속에서 구현한다. 공연은 혼합 현실로 구현된 연극형 퍼포먼스 영상으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나를 뜻하는 ‘본 계정’과 화자인 ‘공개된 부계정’, 남에게 나를 알리는 것을 꺼리는 ‘비밀인 부계정’, 부정적인 마음을 담은 ‘비공개된 부계정’까지 네 개의 자아가 거울을 두고 대면하며 나를 수용하는 과정을 찾아간다.
‘일루션즈’의 ‘S.O.M(Strength of Music)’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음악의 힘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을 혼합 현실 영상으로 표현한 공연이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가상 공간은 언리얼 엔진으로 구현했으며, 아티스트의 K-팝 퍼포먼스는 일반 공연이 아닌 혼합 현실이라는 새로운 채널로 공연을 제공한다. S.O.M의 세계는 메타버스 구현 등에 활용되는 엔진으로 제작되므로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현실적인 무대로 생성돼 제공된다는 게 특징이다.
창작 오페라를 주제로 한 공연도 있다. ‘판이오’ 팀의 ‘파파가든 360°’은 창작 오페라 ‘파파가든’을 360도 시야로 제공하는 콘텐츠다. 주요 줄거리는 소녀 하루의 어머니가 동생을 낳는 과정에서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엄마와 동생을 살리기 위해 하루는 행복 전령사 피스와 함께 생명정원 파파가든으로 떠나 아기 씨앗들과 함께 생명 탄생의 여정으로 뛰어든다. 판이오는 프로젝션 맵핑 기법과 모션 인식 기술을 조합하고, 또 영상에 맞춰 변화하는 서라운드 음향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기존 오페라 장르의 제약 조건에서 탈피하고 관객이 무대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이머시브 오페라’를 선보인다.
‘휠러스’의 ‘Oh Happy Day’는 현실에 대한 반어적인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다. 오늘날 현실은 코로나로 인한 취업난과 생활고로 고독사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우리 주변의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단절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휠러스는 서커스와 무용이라는 몸의 언어, 그리고 참여형 공연과 프로젝션맵핑 기술을 활용해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난을 함께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고독사라는 우울한 주제를 비판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오감을 확대하고, 상상력을 실체화함으로써 반어적으로 사회 분위기를 시사한다.
팀 ‘X-그라운드’의 ‘숲속의 작은극장 <어부와 황금물고기>’는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동화, 어부와 황금물고기의 일러스트와 배우의 연기를 융합한 홀로그램 영상을 제작했다. 이를 관람하는 장소인 숲속의 작은극장은 유년 시절 다락방에서 가지고 놀았던 추억처럼 작고 포근한 나만의, 우리만의 아지트 공간을 캠핑장으로 가져온 텐트형 공연장이다. 관람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숲속의 자연환경을 즐기면서 이들이 준비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미래의 공연, 지금부터 준비해야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 기반 공연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비대면 문화가 가속화하면서 이제는 일부 분야에서 실험적으로 행해지는 단계를 넘어서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저스틴 비버는 내년에 월드 투어를 앞두고, 오는 11월 18일(현지 시각)에 대화형 가상 경험이 포함된 메타버스 기반의 콘서트를 먼저 진행한다. 이 콘서트는 메타버스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모습, 게임, 실시간 모션 캡쳐 및 라이브 공연이 포함된 몰입형 비대면 콘서트가 될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 19가 끝나고 공연 업계의 재기가 시작하면서, 메타버스나 혼합현실, 인터랙티브 공연 등을 결합한 새로운 공연 방식이 떠오르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이제는 4차 산업 기반의 공연에 추진력을 붙일 시기가 왔다.
글 / IT동아 남시현(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