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정혁 대성 “스마트하이브 탈봉 로봇으로 벌·양봉업 가치 높인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벌은 꿀을 모으려 하루에 수 km 거리를 날아다니며 꽃과 꽃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에서 꽃의 수분(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붙는 현상)이 이뤄진다. 수분을 이뤄야 식물은 열매를 맺고 번식한다.
벌이 없어지면 꿀도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나무, 꽃 등 식물 번식도 어려워진다. 사람이 먹는 농작물 가운데 약 30%, 17만 종이 벌 덕분에 번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를 경제 가치로 환산하면 300조 원에 달한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자는 의미로, 국제 연합(UN)은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 벌과 양봉업이지만, 세계 스타트업 가운데 양봉업을 다루는 곳은 매우 드물다. 꿀, 로열젤리 등 고부가가치 부산물의 가공이나 생산성 증대, 벌의 생태 감시와 개체수 증가 등을 비즈니스모델로 삼은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대성은 이들 비즈니스모델은 물론, ‘로봇’을 활용한 양봉 자동화를 고민한다.
정혁 대표는 2016년 대성을 세울 때부터 비전·로봇·자동화 기술을 이용한 무인 양봉을 목표로 삼았다. 벌은 자연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주역이다. 따라서 양봉업은 자연과 환경에 이바지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농·축·수산업에 비해 양봉업은 상대적으로 외면 받았다. 스타트업 창업도, 투자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정혁 대표의 눈에는 양봉업에 숨겨진 가능성이 보였다. 양봉업은 환경, 사람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그린 뉴딜과 밀접히 연결된 산업이다.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는 친환경 산업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양봉 부산물이라는 부가가치까지 갖췄다. 그럼에도 정작 기술의 개발은 잘 이뤄지지 않은 부문이다. 여기에 기술을 더해 디지털 전환을 이끌면, 양봉의 상징성과 부가가치 모두 빛을 발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대성이 꿈꾸는 미래 양봉업, 그 첫 발걸음은 스마트하이브 자동 탈봉 로봇이다. 버튼 조작 한 번이면 로봇이 벌통 속 벌집을 꺼내 안전하게 벌을 털어준다.
사람이 꿀을 채취할 때, 일반적으로 세 명이 함께 일한다. 한 명이 벌통 안 벌집을 꺼내면, 다른 한 명이 꿀을 긁어 채취한다. 또 한 명은 벌집을 정리해 다시 벌통에 넣는다. 농·축·수산 농가와 마찬가지로 양봉 농가도 인력 노령화에 고민한다. 꿀이 가득 찬 벌집의 무게는 3kg에서 5kg에 달한다. 연로한 양봉업자가 들고, 정리하고 다시 넣기에는 부담스러운 무게다.
벌통 위에 스마트하이브 자동 탈봉 로봇을 올려놓고 버튼만 누르면, 로봇이 벌통 안 벌집을 꺼내서 자동으로 벌을 털고 벌집을 보관한다. 넓이 조절 기능이 있어 벌통의 크기나 형태를 가리지 않고 설치 가능하다. 본체 무게도 10kg쯤으로 가벼워 운반하기 쉽다. 이 제품은 일반적인 크기와 형태의 벌통 하나에 담긴 벌집을 단 1분만에 꺼내 모은다.
대성 스마트하이브 양봉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양봉 농가는, 우선 꿀을 채취하는 인력을 세 명에서 한 명으로 줄일 수 있다. 가장 힘든 작업, 벌집을 꺼내 벌을 털고 보관하는 작업을 대신하므로 양봉업자가 다치는 것을 막는다. 벌집을 단시간에 꺼내 보관하는 덕분에 작업 시간을 줄이고 채취 효율은 높인다. 양봉업자 2명~5명이 벌통 150개를 작업할 때 보통 4시간~8시간이 걸린다. 대성 스마트하이브 시스템을 도입하면 단 두명이 5시간만에 벌통 150개를 작업 가능하다.
이 제품은 벌통에 설치한 후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될 만큼 쓰기 쉽다. 양봉을 배우지 않은 초보 양봉업자나 젊은이들도 쉽게 사용 가능하다. 자연스레 양봉업의 효율은 높이고, 장벽은 허문다. 양봉업을 널리 전파한다. 실제로 건물 옥상이나 도심의 녹지, 수도권 인근의 도시 농장 등에 벌통과 스마트하이브 자동 탈봉 로봇 한 대만 놓으면 그 곳이 바로 소규모 양봉장이 된다.
벌통 하나가 만드는 부가가치는 나무 한 그루의 그것과 비슷하다. 양봉업을 전파하면 그만큼 벌의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다. 벌이 늘어나면 그만큼 자연 생태계는 더 굳건해질 것이다. 양봉 업계는 수익 증대뿐만 아니라 새로운 양봉업자 유입을 기대한다.
대성은 올 2월부터 우리나라 양봉 농가에서 스마트하이브 자동 탈봉 로봇을 실증했다. 피드백도 충실히 반영 중이다. 양봉 농가들은 가장 힘든 일, 벌통에서 벌집을 꺼내는 작업을 대신하고 작업 속도도 빠르다는 점에서 스마트하이브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를 토대로 해외 진출도 시도 중이다.
대성은 이미 2020년, 미국 진출을 위한 법인을 만들었다. 올해 7월에는 에티오피아 농림부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에티오피아 농림부 장관 앞에서 스마트하이브 자동 탈봉 로봇을 시연하고 현지 실증도 진행 중이다. 올해 10월부터는 일본 양봉 농가에서의 실증에도 나섰다. 프랑스와의 협업도 타진 중이며, 양봉 강국으로 불리는 중동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정보통신 기술·기기 전시회 CES.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으로 열린 올해 CES에서 대성 스마트하이브는 ‘로봇공학 혁신상’을 받았다. 올 10월에는 유럽의 3대 스타트업 전시회로 불리는 ‘TNW 피치 배틀’ 본선에도 진출했다. 세계가 대성의 자동화 양봉 기술의 가능성을 인정한 셈이다.
정혁 대성 대표는 스마트하이브의 성능을 꾸준히 강화한다. 3년 후 출시를 목표로 꿀과 화분 채취까지 자동으로 하는 기능을 넣는다. 이를 토대로 무인 양봉 시스템을 만든다. 스마트폰 앱으로 벌통을 관리해 누구나 쉽게 벌을 기르고 꿀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말로 하기에는 쉽지만, 실제로 어려운 연구다. 사람이 하던 일을 모두 로봇에게 맡긴다고 해도 무인 양봉 시스템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벌은 예민한 곤충이다. 벌집에 작은 센서 하나만 붙어 있어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벌집과 벌통을 연구해야 한다.
벌의 번식을 돕고 개체수를 늘릴 기술도 연구한다. 인공지능(AI)으로 벌의 천적 말벌의 접근을 감지해 알림을 울리는 기술을 대성은 이미 개발했다. 이어 어떤 말벌이 접근하는지 종류까지 분석하도록 이 기술을 고도화한다. 말벌의 종류에 따라 벌에게 입히는 피해가 다르므로, 벌집에 접근하는 말벌의 종류를 판별하면 더 효과적으로 대응 가능하다는 것이 대성의 설명이다. 이를 토대로 말벌이 출몰하는 지역의 지도, 말벌의 생태를 추적 관찰하는 기술도 연구한다.
벌의 질병 관리 기술도 눈여겨볼 만하다. 낭충봉아부패병이나 부저병, 석고병 등 벌의 번식을 방해하는 질병을 미리 관리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원리다. 대성은 벌집의 크기에 따른 벌의 개체수 조절 기술도 연구한다. 벌집 안에 벌이 너무 많으면 분봉, 벌이 이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반대로 벌집 안에 벌이 너무 적으면 벌집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벌집에 사는 벌의 밀도를 알맞게 유지해 번식률을 높인다. 벌의 생식을 주관하는 여왕벌 관리 기술도 대성의 연구 분야다. 여왕벌의 산란율과 이동 거리 등을 추적해 벌집의 생산 능력을 추산하는 원리다.
양봉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환경 생태계를 유지하는 숨은 역군이다. 그렇기에 양봉업의 디지털 전환은 곧 환경 생태계의 디지털 전환, 인류가 더 풍족한 삶을 살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정혁 대성 대표는 “다양한 양봉 자동화 시스템과 제품을 개발 양봉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 세계 양봉인들에게 대성 스마트하이브라는 양봉 브랜드를 각인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