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인사이트] 新 대항해시대를 주도할 ‘자율(自律)운항 시대’
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흔치 않은 선박 운항 사고, 발생하면 대형 참사
1912년 4월 14일, 1,500여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알고 계시나요? 아마 영화 ‘타이타닉’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었죠. 여러 타이타닉호 침몰 원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빙산과의 충돌입니다. 갑자기 배 앞쪽에 나타난 거대한 빙산을 발견한 뒤, 빠르게 엔진을 모두 가동해 전속력으로 후진했지만, 타이타닉호는 거대한 빙산을 스치고 지나가며 침몰했다는 것이죠.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홍콩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크레인선이 충돌해 발생한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도 있습니다. 당시 이 사고로 인해 약 375km에 이르는 서해와 해안이 오염되었죠. 충남, 전북, 전남에 이르는 11개 시·군에 신고된 피해 액수만 약 4조 원을 육박했습니다. 국내에서 전례 없는 최대 규모의 해양오염 사건이죠.
2014년 4월 16일,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향했던 세월호 사건도 있습니다.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된 ‘4·16 세월호 참사’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민 모두가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비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선박 운항 사고는 대부분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갈 곳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이에 정부는 선박의 대형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선박 탑승 시 개인 신상정보 기록을 의무화하고, 재난 담당 인원을 늘리는 등 재난·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했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정부의 재난·안전 관리 관련 정책 대해 ‘여전히 갈 길은 멀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잊고 있던 지난 선박 사고 소식을 다시 보니,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는데, 사전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을까요?
변화해야 합니다. 전문성을 강화해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고 현장 지휘 역량을 키우는, 당연한 일부터 시작해야죠. 그리고, 사전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선박에 기술을 더해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말입니다. 지난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간한 ‘과학기술&ICT 정책·기술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노르웨이, 핀란드,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 조선·해운 산업을 이끌고 있는 나라들이 자율운항 선박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스태티스타(Statista)’는 자율운항 선박 시장 규모를 2019년 약 65억 7,000만 달러(한화 약 7조 8,000억 원) 규모에서 2030년 약 107억 4,000만 달러(한화 약 12조 7,43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자율운항 선박이라…, 믿을 수 있을까요?
지난 2018년 5월,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IMO)가 ‘제99차 해사안전 위원회’에서 자율운항 선박을 운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해사안전 및 보안과 관련한 14개 국제 협약 제정 착수에 합의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유럽은 지난 2012년부터 약 3년 동안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개발하는 ‘MUNIN(Maritime Unmanned Navigation through Intelligence in Networks)’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자율운항 선박의 기술적, 제도적, 경제적 측면 연구였죠.
2018년 12월, 핀란드의 선박 운수 업체인 ‘핀라인스(Finnlines)’는 ‘롤스로이스(Rolls-Royce)’와 협업해 완전 자율운항 선박인 ‘팔코(Falco)’를 개발하고, 승객 80명을 태운 뒤 시험 운항을 성공했습니다.
2019년 10월, 일본의 선박회사 ‘NYK’는 2만 톤 급 자동차 운반선 ‘아이리스리더호’의 시험 운항을 성공했으며, 중국도 같은 해 12월, 홍콩과 마카오 구간에서 무인 자율운항 선박 ‘근두운 0호’ 시험 운항을 성공했습니다.
자율운항 선박은 자율주행 자동차와 비슷한가요?
국제해사기구(IMO)은 자율운항 선박을 ‘다양한 자동화 수준으로 사람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선박’으로 규정하고, 레벨 1~4 단계로 나누어 정의합니다. 1단계는 자동화 프로세스 및 의사결정 보조 선박, 2단계는 선원이 탑승한 상태로 원격제어할 수 있는 선박, 3단계는 선원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로 원격제어할 수 있는 선박, 마지막 4단계는 선박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완전 자율운항 선박입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분류하는 단계와 비슷한데요. 다만, 선박은 자동차와 달리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명 또한 자동차와 비교해 매우 길기 때문에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만약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에 성공하면, 우리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요?
우선 현재 해결해야 하는 조선·해운 산업 과제부터 알아보죠. 한 통계에 따르면, 해양 사고의 75~96%는 인재(人災)로 인해 발생했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인력 부족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요. 대형 선박 사고 발생 시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어부에 도움을 요청하듯이 말이죠. 연료 문제도 있습니다. 해운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운송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 중 13%를 차지합니다. 차세대 친환경 연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죠. 참고로 선박 운용 비용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연료비와 인건비입니다. 약 80%에 달한다데요.
만약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에 성공하면, 방금 언급한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크게 4가지 장점을 꼽을 수 있는데요. ‘사고 방지’, ‘인력 부족 해소’, ‘운용 비용 절감’, ‘온실가스 배출 저감’입니다. 자율운항 선박은 지형과 사물을 사전에 파악해 사고를 예방하고, 자율운항 기술을 보조하는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인력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인력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건비도 낮출 수 있죠. 또한, 효율적인 항로 운행으로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습니다.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 기업은 어느 곳인가요?
지난 8월, 올해 말 출항을 앞두고 있는 세계 최초 무인 화물선이 등장했습니다.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야라 인터내셔널(Yara International)’의 전기 무인 화물선인 ‘야라 버클랜드(Yara Birkeland)’입니다. 세계 3위 비료회사인 야라 인터내셔널은 육상으로 운송하던 비료를 친환경 무인선으로 옮기고자 ‘야라 버클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노르웨이 도시 두 곳에서 운항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야라 버클랜드는 지상에 위치한 3곳의 제어센터에서 선박을 모니터링합니다. 사람 없이 전기로 움직이는, 자율운항 선박이죠. 아직 항만 하역 인력은 필요한 상황이지만, 향후 선박 접안을 포함한 모든 작업에 기술을 적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자율운항 선박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 인가요?
우리나라는 세계 1위 조선 산업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해운 산업은 세계 7위 경쟁력을 갖추고 있죠. 대표적인 조선·해운 산업 선진 국가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에 발맞추어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정부도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사업 통합 사업단’을 발족했습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약 1,603억 원을 투입해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지난 2021년 9월, 산업통상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세계 친환경 선박 점유율 75%, 자율운항 선박 점유율 50%를 한국에서 건조하자는 내용의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 업체도 함께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1년 3월, 세계 최초로 스마트 선박을 개발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3단계 무인 자율운항 선박을 목표로 개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여러 사내·외 협력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차세대 스마트 선박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과 실증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라운호퍼’와 협업해 무인 항해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제품에 적용했죠. 또한, 선박 모니터링 및 관리 시스템, 최적 항로 계산 등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1년부터 스마트 선박 최적화를 위한 경제운항, 자율진단, 선제적 유지 보수 등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에는 독자적 기술인 스마트 쉽(Smart Ship) 솔루션 ‘에스베슬(SVESSEL)’을 개발해 셔틀탱커로는 세계 최초로 DNV-GL 공식 인증을 받기도 했죠.
앞으로 우리나라가 자율운항 선박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우리나라는 조선·해운 강국으로 높은 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 조선 및 해운 방식에서 ‘친환경’, ‘자율운항’ 등 차세대 선박으로 변화하는 흐름은, 기존의 ‘가격 경쟁 시장’에서 ‘기술 경쟁 시장’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자율운항 선박 기술은 유럽과 일본이 선도한다고 평가합니다. 빠르기도 했죠. 반면 우리나라는 약 5년 늦게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때문에 당분간 핵심 기술 및 기자재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국내 기업 중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자재 업체가 부족해요. 자율운항 선박 특화 센서, 통신, 데이터 분석, 제어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 등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핵심 기술과 기자재 산업을 국산화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기자재 산업은 기술 우위를 가진 기술사와 제조사로 이원화되어 국제적인 분업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인데요. 기술적, 경제적인 타당성을 검토해 선택과 집중해야 하는 동시에 국제적인 교역관계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자율운항 선박의 기본적인 개념은 자율주행 자동차와 비슷하다지만, 선박은 단단한 땅이 아니라 파도나 바람에 의해 크게 흔들리는 바다 위를 다닙니다. 특성상 더욱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죠. 때문에 소프트웨어 인력 육성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산학연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개발한 기술을 안정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환경도 구축해야죠. 현재 여러 정부 부처가 관련 기술 사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데, 원활한 연계를 위해 꾸준히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렵죠. 그래도 준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인력 부족 걱정 없고,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는 ‘자율운항 시대’를 기대해 봅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이경현 소장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 가능성을 파악한 뒤,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 컨퍼런스 개최를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 정보를 제공하는 웹서비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이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