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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열전] 일본 AV 산업 대부에서 콘텐츠 황제로... DMM.com 회장 카메야마 케이시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일본 인터넷 서비스 업계는 두 명의 거물이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명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손 마사요시(孫正義, 손정의) 소프트뱅크 최고경영자다. 일개 소프트웨어 유통사 겸 출판사에 불과했던 소프트뱅크를 이동통신(소프트뱅크), 인터넷 포털(야후 재팬), 종합 게임개발(겅호), 모바일 CPU 설계(ARM)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손 마사요시가 일본 인터넷 사업의 빛을 담당한다면, 카메야마 케이시(亀山敬司, かめやま けいし) 'DMM.com(디지털 미디어 마트)' 창업자 겸 회장은 일본 인터넷 사업의 어둠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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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야마 케이시 DMM 회장 및 창업자 캐릭터. 그는 인터뷰 등에서도 얼굴 등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식 인터뷰나 행사에서도 이와 같은 만화 캐릭터를 통해서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유튜브 캡쳐.>

그가 DMM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비결에 AV(어덜트 비디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래리 플린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최대 콘텐츠 유통사의 사장이자, 포르노 제작자였던 카메야마 회장은 고졸의 학력으로 노점상, 비디오 대여점을 거쳐 DMM을 창업해 DMM을 일본 최대의 콘텐츠 유통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미국의 경제지 블룸버그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카메야마 회장의 자산은 최소 35억 달러(약 3조800억 원)에 이른다. 일본 부자 순위에서 당당히 9위에 위치해 있다.

세무사는 미래가 없다... 노점상을 하다가 포르노 산업에 투신

카메야마 회장은 1961년 일본 이시카와 현 카가 시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58살이다. 그의 아버지는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포목점, 카메라 판매, 우동, 횟집에 이어 카바레(무대와 댄스홀이 있는 술집)까지 다양한 사업을 했다. 어린 카메야마 회장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돈을 버는 것 자체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커서 아버지처럼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무사에 흥미를 가지게 된 카메야마 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상경해 오하라 세무전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교수가 "세무사를 해봤자 별 재미를 볼 수 없을 겁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그는 그날로 학교를 그만두고 19세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도쿄 롯본기 일대의 주점, 호스트 클럽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노점상을 시작했다. 체인, 가죽 등 패션 액세서리를 파는 상점이었다. 노점상을 시작한 첫날 매출은 고작 1000엔에 불과했다.

노점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근처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야쿠자(일본의 조직폭력배)에게 "누가 멋대로 여기서 장사를 하라고 했나"라며 큰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카메야마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자기 자리를 옮겨가며 노점상을 계속했다. 칠석 축제 등 일본 전국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자리로 장소를 옮겨 물건을 판매하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을 카메야마 회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게릴라 같은 느낌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자본이 있었다면 자리를 빌려 당당히 장사를 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자본과 조직이 없는 저에겐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일반 가게가 팔지 않는 물건을 취급했고,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다녔습니다. 작은 업체가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아이디어와 신속한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1980년 중반 친누나의 임신 소식을 들은 카메야마 회장은 가업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그가 시작한 사업은 비디오 테이프(VHS) 대여점이었다. 매장 규모는 순조롭게 증가했다. 하지만 당시 큰 인기를 끈 SF영화 '백투더퓨처'를 본 카메야마 회장은 영화(콘텐츠)를 비디오 테이프 대신 전파로 보낼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직감하게 된다. 그날이 오면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이 발붙일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을 대신할 새로운 사업을 꿈꾼 그가 선택한 사업은 당황스럽게도 AV 제작이었다. 1990년 3월 '호쿠토'라는 이름의 AV 제작사를 설립하고 AV 제작 및 유통에 나섰다. 카메야마 회장은 호쿠토의 이름을 CA로 변경한 후 다른 AV 제작사를 인수합병해 세를 불렸다. 그리하여 소프트온디멘드(SOD)와 함께 일본의 양대 AV 제작사인 아웃비전이 탄생하게 된다. 노점상을 하던 청년이 일본 최대의 AV 제작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카메야마 회장이 처음부터 AV 제작자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가 원래 하고 싶었던 사업은 영화 제작이었다. 하지만 영화 제작에는 많은 자본이 필요했는데, 업계에 문외한이었던 카메야마 회장에게 투자할 곳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자본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는 AV 제작이 뛰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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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M 고졸 인턴 사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는 고졸 출신 인턴을 채용하고 직접 강의 등을 하는 등 고졸 사원들에게 각별히 신경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메야마 회장의 사진은 죄다 이런 식이다.) DMM 아카데이 캡쳐.>

카메야마 회장은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던 AV 업계에 데이터 경영을 도입했다. AV 판매점에 판매 단말기(POS)를 무료로 보내 AV 판매 데이터를 수집했다. 배우, 장르 등이 담긴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제목으로 AV를 촬영하면 얼마나 수익을 거둘 수 있는지 답을 내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존 성인물 유통망을 이용하지 않고 자체 판매루트를 개척하면서 회사가 커졌다.

여담으로, 카메야마 회장이 호쿠토를 창업했을 때 함께한 창업 멤버들은 전부 고졸이었다. 때문에 카메야마 회장과 창업 멤버는 고졸 군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창업 멤버의 절반은 회사의 AV 비디오를 빼돌리다가 해고당했다. 남은 절반은 현재 DMM의 주요 간부로 재직 중이다.

오프라인 유통에서 온라인 유통사로 거듭나다

이렇게 성인물을 제작하던 카메야마 회장의 사업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이 예측했던 전파로 영화를 전송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사의 AV를 인터넷으로 유통하기 위해 1998년 DMM을 설립했다. 인터넷과 기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업계 전문가인 마츠 타츠야를 IT 책임자로 영입했다. 마츠 타츠야는 카메야마 회장을 도와 DMM의 성장을 견인했고, 현재도 DMM 그룹의 사장(CEO)으로 카메야마 회장을 돕고있다.

DMM은 2004년부터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AV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인터넷 스트리밍 업계의 리더인 넷플릭스조차도 DVD로 콘텐츠를 유통하고 있던 시기에, 카메야마 회장은 이미 인터넷 스트리밍이라는 거대한 사업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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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M 그룹사 로고. DMM홈페이지 캡쳐>

AV를 온라인으로 유통한다는 DMM의 전략은 일본 시장에서 제대로 먹혀들었다. AV가 제아무리 합법인 일본 시장이라도 이를 떳떳하게 구매하거나 빌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DMM의 온라인 유통 방식은 이렇게 AV 구매나 대여가 부끄러워 선뜻 이를 감상하지 못했던 사용자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유통하는 성인물의 범위도 확대했다. AV 뿐만 아니라 성인 만화와 게임도 유통하면서 DMM은 일본 성인물 업계의 큰 손이 되었다. 2018년 현재 일본에서 제작되는 성인물 대부분이 DMM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경쟁 서비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DMM의 규모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몰라... 야쿠자는 절대 아니다

카메야마 회장은 언론에 얼굴을 일절 노출하지 않은 신비의 인물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데다가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함이란다. 때문에 많은 악성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예를 들어 카메야마 회장의 정체가 야쿠자라는 루머다. 실제로 일본의 검색 사이트에 카메야마 회장을 검색하면 지금도 연관검색어로 야쿠자가 뜬다. 일본 AV 업계에 야쿠자가 많은 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AV 업계의 대부인 카메야마 회장을 두고 이러한 소문이 도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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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는 공식행사에서도 캐리커쳐가 그려진 판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뷰를 할 정도다. 2016년 가을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 스타트업 행사에서 연사로 참석한 카메야마 케이시 회장. 트위터 캡쳐>

이러한 루머를 일축하기 위해 카메야마 회장은 3~4년 전부터 언론 인터뷰에 적극 임하고 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상반신까지만 찍고 얼굴은 노출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 행사에 멘토로 참가해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기도 하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카메야마 회장의 외모나 행동거지를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은 것을 보니 야쿠자라는 루머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

2017년 4월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DMM은 IBM, 구글, 라쿠텐(일본의 인터넷 쇼핑몰) 등을 제치고 일본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100대 기업 가운데 한 군데로 꼽혔다. 이러한 조사 결과의 배경에는 카메야마 회장이 추구하는 경영전략 '거북이처럼 우직하게(亀チョク)'가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카메야마 회장을 포함한 회사의 중역 대신 젊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DMM은 회사의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이 적지 않았던 만큼 DMM이 성인 비디오와 음지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성인 산업으로 돈 번 '얼굴 없는 CEO', 밝은 곳을 꿈꾸다

일본 AV 업계의 대부로 군림했던 카메야마 케이시 DMM회장은 이제 더 이상 AV 제작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DMM 그룹 차원에서 성인물에 기대는 비중을 줄이고 있는 데다가, 지난 2016년 이슈가된 일본 AV 배우 성 착취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DMM.com<카메야마 회장이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일본 롯본기 일대. 유튜브 캡쳐>

2016년 성매매 방지를 위한 일본의 비영리 재단 '라이트하우스'는 AV 배우 가운데 상당수가 강요와 협박에 못 이겨 AV에 출연하고 있으며, 온갖 불공정 계약에 시달리고 있다고 폭로했다. 일본 검경(검찰과 경찰)의 수사결과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많은 AV 제작사의 사주와 직원들이 줄줄이 입건되거나 구속되었다. 이렇게 문제가 된 AV 제작사 가운데 CA산하의 브랜드 '무디즈'도 존재했다. 일본 검경은 무디즈의 모기업 CA의 사장인 카네야마 회장과 직원 7명, 촬영 스태프 10명 등을 공연 외설 및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이 일을 계기로 카네야마 회장은 DMM 사업의 근간인 AV 제작을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CA를 다른 기업에 매각하고 제작 쪽에선 연을 끊었다. 비록 DMM이 아직까지는 성인물을 유통하고 있지만, 그 비중을 계속 줄여 궁극적으론 성인물과 관계없는 일반 콘텐츠 유통기업이 되도록 하겠다는 장기 비즈니스 플랜도 세웠다.

온라인 유통사를 넘어서 사업 다각화 수순으로

일반 콘텐츠 유통 자체는 그가 오랫동안 공을 들이면서 준비해온 작업이기도 하다. 카메야마 회장은 성인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벌어들인 많은 현금을 활용해 2009년부터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던 것. 자신의 동생이 DMM 같이 성인물을 다루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성인 콘텐츠 제작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는 상황에서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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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M은 일본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DMM 홈페이지 캡쳐>

DMM은 태양광 발전사업, 온라인 게임 개발 및 유통, 알뜰폰(MVNO), 로봇 개발, VR 극장, 3D 프린트, 가상화폐 거래소 등 첨단 기술이라고 여겨지는 사업이라면 가리지 않고 손을 대고 있다. 일본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고, 해외의 유망 게임을 일본 국내에 유통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넥스트플로어가 개발한 모바일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는 DMM을 통해 일본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DMM은 성인시장을 넘어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DMM홈페이지 캡쳐. 제법 괜찮은 성과를 낸 사업도 있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본 사업도 있다. 실패를 맛본 카메야마 회장은 방침을 변경하게 된다. 자신 대신 젊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신규 사업을 책임지고 추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유망한 기업에 투자해 콘텐츠와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를 DMM을 통해 제공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그리하여 함대콜렉션, 'DMM.make'. 'DMM 영어'라는 세 가지 대박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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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콜렉션은 2014~2016년 일본 모바일 게임 업계에서 큰 인기를 끈 웹, 모바일 게임이다. 현재 한국에서 제법 괜찮은 인기를 끌고 있는 '소녀전선'처럼 의인화 기반의 시뮬레이션 게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카도카와가 개발한 게임이지만, 정작 카도카와는 이 게임으로 별다른 수익을 얻지 못했다. 모든 수익은 DMM으로 넘어갔다. 개발비를 전부 DMM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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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게임 배틀그라운드도 DMM을 통해서 일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DMM 게임즈 캡쳐>

DMM.make는 일본의 장인과 스타트업들에게 3D 프린터와 제작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이다.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もの 造り, 모든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장인정신을 뜻함.)' 문화와 맞물려 많은 1인 창작 스타트업을 발굴해내는데 성공했다. DMM 영어는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던 일본 영어 교육을 온라인 위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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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M.make 공간 대여 사업이 이뤄지는 일본 아키하바라의 관련 오피스. 해당 홈페이지 캡쳐>

현재 DMM의 본사는 스미모토 롯본기 그랜드 타워에 위치해 있다. 롯본기힐즈 모리 타워와 함께 일본 최고의 비즈니스 타워로 손꼽히는 곳이다. 젊은 날 자신이 노점상을 하며 고생했던 롯본기 골목을 내려다보며 카메야마 회장은 DMM의 미래 전략을 세우고 있다. 현재 카메야마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일본 내수에 지나치게 편중된 DMM의 사업 영역을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DMM 홈페이지의 모든 서비스를 영어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결제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전 세계 모든 사용자들이 DMM에서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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