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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EO 열전] 항공물류의 아버지, 페덱스의 창업자 프레드릭 스미스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모든 산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혁신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이용되는 인터넷쇼핑몰이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 쇼핑몰이 태어나기 전부터 물류 산업은 점점 고도화되었고, 결국 이 토대 위에서 아마존, 알리바바, 옥션, 지마켓 등 인터넷 쇼핑몰이란 꽃이 필 수 있었다. 발전한 물류 산업이 없었다면 인터넷 쇼핑몰이란 산업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세기 전만 해도 물류 산업의 시스템은 주먹구구식이었다. 물류 사업자가 배달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 상품을 취합한 후 이를 목적지까지 일일이 전달해야만 했다. 물건이 하나 전달되는데 짧아도 몇 주, 길면 몇 달이 걸렸다. 사람, 기업, 심지어 물류 산업 종사자들도 이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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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가 물류를 운송하는 방법들을 소개한 내용 / 출처 페덱스>

1962년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수강하던 한 학부생이 이러한 물류 산업 전반을 혁신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트랜지스터 등 작은 크기에도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상품이 출현하는 것을 보고 비행기를 활용한 항공 물류가 크게 성장할 것임을 직감했다. 트럭, 기차 등보다 훨씬 빠른 비행기에 고부가가치 상품을 꽉꽉 실어서 물건을 배달하면 고객이 불과 며칠 만에 물건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될 터였다. 이를 통해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는 기존의 물류 산업 전반을 혁신할 수 있다. 소형 화물의 특급 운송이라는 비즈니스를 고안해낸 것이다.

이러한 항공 물류를 현실화하기 위해 자전거 바퀴에서 영감을 얻은 '허브&스포크'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미국 내 인구분포를 조사해서 그 중심이 되는 지역에 화물 집결지(허브)를 만든 후, 배달을 의뢰받은 모든 화물을 허브로 모은다. 그다음 화물을 목적지별로 분류해서 자전거 바큇살(스포크) 모양으로 펼쳐진 목적지로 화물을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바로 현대 물류 산업의 핵심인 화물 집결, 분류, 배송에 관한 내용이었다. 학생은 이 새로운 화물 수송 시스템에 관한 아이디어를 논문으로 작성해서 지도교수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지도교수는 이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C 학점을 주었다.

일반적인 학생이었다면 자신의 아이디어가 잘못된 것이라 여기고 포기하겠지만 이 친구는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낸 지 9년이 지난 1971년, 학생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항공 물류 회사를 설립했다. 이때 설립한 회사의 이름이 페더럴 익스프레스(연방 특급 배송), 줄여서 '페덱스(FedEx)'다. 현대 물류 산업의 토대가 된 화물 집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페덱스를 설립한 이 학생의 이름은 프레드릭 스미스(Frederick Wallace Smith) 페덱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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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스미스 페덱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 / 출처 페덱스 페이스북>

페덱스는 UPS, DHL과 함께 전 세계 항공 물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회사다. 전 세계 220개국에 매년 12억 개 이상의 화물을 배송하고 있다. 40만 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 중인 이 회사는 2016년에만 503억 달러의 매출과 30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냈다. 스미스 회장은 이러한 페덱스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로서 지난 46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왔다.

비행기와의 남다른 인연

스미스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와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1944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관절이 변형되는 질병에 시달려 목발에 의지해 걸어 다녀야 했다. 그는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체육 활동을 하며 자신감을 길렀다.

스미스 회장의 가족은 대대로 운송업에 종사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미시시피강을 운행하는 증기선의 선장이었고, 아버지는 버스 회사의 경영자였다. 배와 버스라는 운송업에 종사한 집안의 피는 스미스 회장에게도 그대로 흘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 조종법을 배웠고, 이를 토대로 농업용 비행기를 직접 몰아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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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조종할 줄 알았다. 하늘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 출처 페덱스 페이스북>

예일대 경제학과에 진학한 스미스 회장은 두 명의 조금은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한 명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다. 스미스 회장과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프레드릭 카바 엡실론 사교클럽에서 만나 금세 친해졌다. 다른 한 명은 존 캐리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다. 둘은 비행기 조종이라는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1966년 학교를 졸업한 후 스미스 회장은 미국 해병대에 징집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가해야 했다. 그는 여기서 비행기 뒷좌석을 담당하는 파일럿으로 4년간 복무했다. 당시 스미스 회장의 조종 파트너는 그의 친구였던 존 캐리였다.

그의 인생은 비행기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비행기와 인연이 깊다. 이러한 인연이 자연스레 비행기를 활용한 항공 물류 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제대 후 스미스 회장은 허브&스포크라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1971년 27살의 나이로 페덱스를 설립했다.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400만 달러(44억 원)와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9100만 달러(1017억 원)를 바탕으로 8대의 비행기를 구입해 미국 내 여러 도시로 화물을 배송하는 항공 물류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9500만 달러(1062억 원), 현재 기준으로는 5억 5000만 달러(6149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본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본금의 대부분은 화물 배송용 비행기와 자동차를 구매하는데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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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부유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6000억 원이 넘는 자본금으로 시작했다. 출발은 좋았다. 시련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출처 페덱스>

처음에는 아칸소주 리틀락시의 리틀락 내셔널 공항을 허브로 삼고 사업을 진행했지만, 지원이 부족함을 느끼고 자신의 고향인 멤피스시로 돌아왔다. 멤피스시의 작은 공항이었던 멤피스 국제공항을 허브로 삼고 미국 내 35개 도시에 화물을 배송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시련에 빠진 사업가의 황당무계한 재기 방법

페덱스의 핵심 사업은 비행기를 활용한 익일 배송이다. 조금 비싸지만 책임지고 다음 날까지 물건을 전달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은 스미스 회장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홍보 부족으로 고객들은 비싼 돈을 내고 특급 배송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1973년 일어난 1차 오일쇼크였다. 오일쇼크에 따른 기름값 급상승(약 3~4배)으로 회사는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었다. 회사 설립 후 2년 동안 1340만 달러(149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가 생겨났고, 때문에 회사는 파산할 지경에 이르고 만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스미스 회장은 이곳저곳에 투자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간신히 운영되던 회사의 자금은 결국 5000달러(559만 원)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파일럿에게 지급할 임금은 물론이고, 비행기에 넣을 기름을 살 돈마저 없어졌다.

페덱스가 후원하는 레이싱 경기 중 한 차량이 사고로 연기에 휩싸여 있다. 페덱스는 막대한 자본금으로 시작했지만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한 때 500만 원 정도의 돈만 남았을 때도 있었다. 스미스는 남은 돈을 갖고 라스베이거스로 향해 사업을 할 수 있는 실탄을 마련한다 / 출처 페덱스

일반적인 사업가였다면 여기서 파산을 선언하고, 회사 운영을 중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 회장은 다른 선택을 했다. 투자를 위한 마지막 만남이 좌절된 후 그는 멤피스행 비행기 대신 라스베이거스 행 비행기를 탔다.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5000달러를 자본 삼아 도박(블랙잭)에 뛰어들었고 이를 2만 7000달러(3018만 원)로 불리는데 성공했다. 이 돈을 가지고 돌아와 봉급을 주고 기름을 샀다. 그리고 다시 투자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페덱스의 임원들은 스미스 회장이 5000달러를 가지고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방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스미스 회장이 다시 돈을 들고 돌아오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뼈를 깎는 인고의 시절이었다. 스미스 회장은 자동차 등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 회사 운영에 투입했고, 가족들 명의로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75년 스미스 회장은 두 여동생과 금전적인 분쟁을 벌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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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페덱스>

이렇게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미스 회장과 페덱스는 '반드시 다음 날 배달한다'는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가치를 고수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고객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내 끝에 다시 햇빛이 찾아왔다. 스미스 회장의 노력으로 시티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20~30개 투자사로부터 7000만 달러(782억 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 벤처들이 받은 투자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였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배달용 비행기와 자동차를 사고 배송지를 늘려나갔다. 결국 1975년 하반기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고, 1976년에는 360만 달러(4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취급하는 화물의 양도 하루 평균 1만 9000개로 크게 늘어났다.

항공물류의 시대, 페덱스의 시대

1977년 미국 항공법의 변경으로 모든 항공 물류 회사는 운항지에 대한 제한이 없어졌다. 페덱스의 프레드릭 스미스 회장은 이 기회를 움켜쥐었다. 기존의 작은 비행기 대신 대형 항공기인 보잉 727 10기를 구매해 배송량을 크게 확대했다. 1978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회사를 상장했다. 1980년에는 미국 내 90개 도시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했고, 1981년에는 캐나다로의 국제 배송도 시작했다. 이와 함께 기존 멤피스 국제공항의 허브를 국제 배송까지 처리할 수 있는 '슈퍼 허브'로 개편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한적한 지방 공항이었던 멤피스 국제공항은 미국 최대 규모의 물류공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983년에는 인수 합병 없이 10년 만에 10억 달러(1조1185억 원)의 매출을 달성한 미국 최초의 기업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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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의 물류 운송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전광판 / 출처 페덱스>

무역의 장벽이 없어진 글로벌 시대를 맞아 페덱스는 거침없이 성장했다. 해외의 항공 물류 업체를 지속적으로 인수해 서비스 지역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1984년에는 컴퓨터 기반 자동 선적 시스템, 1986년에는 물품 추적을 위한 휴대용 바코드 스캐너, 1994년에는 온라인 기반 물품 배송상태 확인 서비스 등 혁신적인 물류 기술을 잇따라 선보였다.

현재 페덱스는 약 670대의 비행기와 17군데에 이르는 허브를 보유한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물류 사업자로 성장했다. 항공 물류뿐만 아니라 차량을 활용한 지상 물류, 사무용 제품 배달 등 다양한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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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가 물류를 옮기는 방법들 / 출처 페덱스>

스미스 회장은 한때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정치권의 부름을 받기도 했다. 그의 친구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참전과 비행기 산업 종사 경력을 인정해 스미스 회장을 국방장관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스미스 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이를 거절했고, 그 자리를 도널드 럼즈펠드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후 스미스 회장은 자신과 같이 베트남 전쟁에서 파일럿으로 활약했던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지원하기도 했지만, 정치권과는 꾸준히 거리를 두고 회사 경영에 집중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2014년 스미스 회장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 가운데 26위로 선정했다.

프레드릭 스미스의 네 가지 성공 비결

신한 FSB연구소 황규현 연구원은 스미스 회장의 성공 요인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는 '인간 중심의 경영'이다. 스미스 회장은 "직원을 제대로 보살피면 직원들이 알아서 고객이 원하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이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회장의 이러한 경영철학은 페덱스의 공정대우 보장 프로그램을 통해 보장되고 있다. 어떤 직원이든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상급자 대신 최고경영자인 스미스 회장에게 바로 잘못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페덱스는 포천 등 미국 경제지가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직장 리스트'에 항상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우 뿐만 아니라 인사 시스템도 공정하다. 누구나 성과만 내면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러한 문화 덕분에 페덱스의 지상 물류를 담당하는 페덱스 그라운드의 데이비드 레브홀츠 전 최고경영자는 1976년 밀워키 지점에 차를 닦고 물건을 나르는 계약직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까지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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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 CEO 프레드릭 스미스 / 출처 페덱스>

두 번째는 '솔선수범'이다. 스미스 회장은 회사가 적자에 시달리자 자신의 자동차, 비행기 등을 모두 매각해 회사의 빚을 갚는데 이용했고,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최고경영자의 솔선수범을 보고 직원들도 회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배송 직원들은 손목시계를 팔아 기름을 사서 배송을 진행했고, 집행관들이 비행기를 압류하려 하자 이를 감추기도 했다. 80만 건의 배송 물량이 발생하자 수 천명의 직원이 자율적으로 한밤중에 회사로 모여 밤샘 작업에 매달리기도 했다. 페덱스의 주요 임원들은 이렇게 스미스 회장과 어려운 시기를 함께한 직원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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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를 통해 이사를 가려는 모습. 스미스는 적자에 시달릴 때 자신의 부를 모두 처분하는 등 회사 위기를 자신의 리스크와 동일시하며 희생했다 / 출처 페덱스>

세 번째는 '모험정신'이다. 스미스 회장은 "시도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라는 좌우명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신사업영역 개척에 나섰다. 그는 지도교수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관철했고, 회사가 적자에 시달려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에 도전했다. 실패해도 실망하지 않았고 결국 성공을 일궈냈다.

네 번째는 '고객만족'이다. 스미스 회장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 '고객만족'을 꼽았다. 그는 "고객만족은 99%로도 부족하다. 99% 고객만족으론 언젠가 나타날 100% 고객만족 기업에게 고객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고객은 2등 기업에게 결코 애정을 베풀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고객 서비스 정신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 스미스 회장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페덱스에 서비스품질지수(SQI)를 도입했다. 품질 수준 평가는 제품에나 가능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고 서비스의 품질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진행한 작업이다. 이를 통해 창업 후 15년 동안 정시 배달률만 측정하던 것을 버리고 1988년부터는 고객의 품질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12개 요소(지금은 많이 줄었다)를 정한 후 고객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등 서비스 품질 평가의 계량화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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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페덱스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 / 출처 페덱스>

스미스 회장은 '1:10:100'이라는 법칙을 강조했다. 1:10:100은 '불량을 고치는 것에는 1의 노력이 들지만, 문책 등이 두려워 이를 숨기면 10의 노력이 필요하게 되며, 이 문제가 고객에게 들어가면 100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는 법칙이다. 이러한 법칙 등을 강조하며 고객만족을 추구한 덕분에 페덱스는 서비스 기업 가운데 최초로 '말콤볼드리지 국가품질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포천 스몰 비즈니스 '나는 상품을 어떻게 배달했는가(How I Delivered the Goods)': 프레드릭 스미스(2002), 신한 FSB 리뷰 이달의 CEO 프레드릭 스미스: FSB연구소 황규현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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