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노키아쇼크 극복한 핀란드를 배우다] 언제나 변해왔다, 노키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노키아, 참으로 영욕의 이름이다. 한때 노키아는 휴대폰 사업의 상징과 같은 기업이었다.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휴대폰 업체로 등극했다. 2007년 최대 전성기 시절에는 전 세계 휴대폰 판매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자랑이었다. 2003년 핀란드 정부의 총 법인세 가운데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달했다. 2011년 노키아의 수입은 핀란드 총 GDP의 20%였다. 핀란드 전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 가운데 60%를 노키아가 차지하던 시절마저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스마트폰이 시장에 등장하고 모바일 시대가 열리자 노키아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사용자들이 일반 휴대폰(피처폰) 대신 스마트폰을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노키아의 휴대폰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에게 전 세계 휴대폰 판매량 1위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부랴부랴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 심비안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운영체제 윈도우폰OS를 채택한 제품을 시장에 내놨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시장점유율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적자는 나날이 커졌고, 결국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노키아는 2013년 9월 휴대폰과 스마트폰 생산을 담당하던 디바이스 및 서비스 사업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매각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만다. 세계 최대의 휴대폰 기업의 허망한 최후였다.

시리즈 순서
1. 핀란드 알람시계는 1시간 일찍 울린다… 5가지 핵심 경쟁력
2. 화려한 불 쇼 레이저쇼 열리는 스타트업 경연 대회… 7주간 육성해 글로벌 무대 위로
3.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핀란드의 디지털 라이트하우스 전략
4. 언제나 변해왔다, 노키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5. 헬스케어 산업의 요람
6. 나라 전체가 테스트베드, 기업 유치를 위한 새로운 기법
7. 핀란드의 강소기업을 만나다

노키아는 왜 이렇게 급격히 몰락한 것일까.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노키아는 결코 스마트폰 사업에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 '심비안'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한 스마트폰을 시장에 선보이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노키아의 첫 번째 패착은 비용절감을 통한 이익 극대화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프리미엄 스마트폰 수요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고, 그 탓에 자체 모바일 생태계 활성화에 실패했다는 것에 있다.

애플 아이폰이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노키아의 최고경영자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었던 올리페카 칼라스부오였다. 그는 CFO 출신답게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 확보에 치중했다. 돈을 잘 버는 피처폰 사업에 집중하고 별다른 성과가 나지 않는 스마트폰 사업을 소홀히 했다. 그 탓에 노키아의 모바일 운영체제 심비안은 스마트폰 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칼라스부오는 아이폰을 보고 "이해하기 힘든 제품이다. 결코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으나, 시장은 그 평가와 반대로 움직였다. 삼성전자 등 다른 경쟁사는 아이폰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시장에 출시해서 애플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원가 절감에 치중하던 노키아는 그런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시장에 선보이지 못했다.

노키아
노키아

<핀란드 에스푸 시에 있는 노키아의 본사. 원래 노키아는 헬싱키 시 호수 옆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본사 건물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회사가 힘들던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건물을 매각하고 R&D 센터가 있던 현재 위치로 본사의 위치를 옮겼다. 과거 노키아의 본사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핀란드의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일반 휴대폰 시장마저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 잠식되자 노키아도 경각심을 느꼈다. 회사의 체질을 일반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인 스티븐 엘롭을 CEO로 영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이 노키아의 두 번째 패착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인 엘롭은 모바일 운영체제의 대세인 구글 안드로이드 대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폰에 집중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윈도우폰은 안드로이드에 밀려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고, 노키아의 존재감도 덩달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 살아남기 위한 노키아의 몸부림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노키아의 경영 실패 사례다. 잘 나가던 기업이 몇 가지 선택 실수로 순식간에 몰락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런데 많은 사용자가 이 뒤에 얘기가 더 있다는 것을 모른다.

노키아는 망하지 않았다. 단지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체질 개선을 진행했다. 스티븐 엘롭의 뒤를 이어 노키아의 최고경영자가 된 인물은 인도 출신의 영국인 라지브 수리였다. 그는 노키아가 지멘스와 합작해서 설립한 통신장비(무선 네트워크) 기업 '노키아 지멘스 네트워크'의 최고경영자였다.

노키아
노키아

<실패와 몰락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노키아. 하지만 노키아는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불사조처럼 부활했다. 출처: 인터비즈>

라지브 수리는 미래를 잃어버린 노키아가 재기할 수 있는 길은 통신장비 사업 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는 일단 회사의 미래를 위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서와 서비스를 모두 처분해서 자금을 확보했다. MS에 디바이스 부서를 팔아치우고,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자동차 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디지털 맵 서비스 '히어(Here)'를 매각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노키아 지멘스 네트워크에서 지멘스 지분을 매입하는데 이용했다. 이를 통해 노키아 지멘스 네트워크는 노키아의 완벽한 자회사 '노키아 네트웍스'가 되었다.

노키아 네트웍스의 시장점유율은 4위였다. 1위인 에릭슨(27.3%)은커녕 2위인 화웨이(22.6%)에게도 미치지 못했다. 라지브 수리는 이 격차를 단번에 좁히기 위해 2015년 대규모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프랑스의 무선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 알카텔 루슨트를 인수한 것이다. 이 인수를 통해 노키아는 30.5%의 점유율을 확보해 단번에 전 세계 무선 네트워크 장비 시장점유율 1위 업체가 될 수 있었다. 최근 화웨이의 급성장으로 2위로 다시 밀리기도 했으나, 5G와 사물인터넷 활성화에 따른 네트워크 장비 수요 증가에 올라타 1위 탈환을 노리고 있다.

노키아
노키아

<4차산업혁명의 개념과 5G의 중요성을 설명 중인 라우리 옥사넨 노키아 기술부문 총괄 부사장>

라우리 옥사넨 노키아 기술부문 총괄 부사장은 "무선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규모의 경제가 지배한다. 결국 한두 기업밖에 살아남을 수 없다. 노키아는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로 5G와 사물인터넷 관련 기술을 확보해 치열한 무선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생존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노키아의 미래? 5G에 '올인'

노키아 R&D 센터, 노키아뿐만 아니라 최근 폭스콘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노키아 스마트폰에 대한 권리를 사들인 HMD 글로벌도 입주해 있다. 노키아는 HMD 글로벌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HMD 글로벌은 전 노키아 디바이스 부문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도 노키아와 함께 이용하고 있다.

노키아는 1865년 설립된 기업이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 긴 세월 동안 주변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맞춰서 주력 비즈니스를 바꿔왔다. 자의로 바꾼 적도 있고 타의로 바꾼 적도 있었으나, 적어도 망하지는 않고 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변화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처음 노키아의 비즈니스는 핀란드의 주력 사업인 목재 수출에 맞춘 제재소와 종이 생산이었다. 이후 핀란드와 소련의 관계에 맞춰 케이블과 타이어를 생산해 소련에 수출하는 사업에 진행했고, 휴대폰 사업이 떠오르자 적극적인 인수 합병으로 휴대폰 사업에 진출하고 과거의 사업을 정리했다. 지금은 휴대폰 사업을 정리하고 무선 네트워크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노키아의 다음 목표는 5G 활성화를 통한 '무선 네트워크 사업 강화'다.

라우리 부사장은 5G와 사물인터넷이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라우리 부사장이 자신의 입으로 4차산업혁명을 명확하게 언급했다는 점이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개념 대신 인공지능 혁명이라는 개념을 밀어붙이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유럽은 데이터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4차산업혁명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차산업혁명은 데이터 혁명이다. 데이터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매년 데이터 생산량은 2배씩 늘어난다. 기업은 이렇게 폭증하는 데이터 속에서 기업의 미래를 책임질 인사이트(통찰력)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데이터가 폭증하는 이유가 뭘까. 서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시대에서 벗어나 사람과 기기가 연결되고, 기기와 기기가 연결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기업이 이렇게 연결된 기기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수집, 저장, 분석하고 있다.

데이터 수집, 저장, 분석을 위해 5G와 5G를 구현하기 위한 네트워크 장비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5G 시대에서는 연결 도중 사소한 장애가 발생해도 치명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예를 들어 5G가 적용된 응급차는 병원에 환자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이를 통해 의사는 어떤 환자가 오는 중이고, 이 환자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연결이 잠시라도 끊긴다면?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따른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진다. 때문에 5G는 고성능 네트워크 장비를 통해 수백만 기기를 안정적으로 연결해 끊임없는 연결성(미션 크리티컬)을 제공해야 한다.

노키아
노키아

<5G 기술을 활용한 로봇. 원거리에 있는 고성능 하드웨어와 통신 함으로써 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균형을 잡는다>

라우리 부사장은 5G가 비즈니스 전반에 3가지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혁신은 '하이퍼 로컬'이다.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야외 콘서트 전체를 수 천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후 5G를 활용해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사용자들은 이 전달받은 데이터를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실제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가 발생한 기기를 수많은 카메라로 촬영해서 멀리 있는 엔지니어에게 5G로 바로 전송한다. 엔지니어는 이 가상현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멀리서 로봇을 조작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두 번째 혁신은 '하이퍼 모바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기가 서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연결을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기기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모든 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빠르게 연결되는 5G로 상호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하이퍼 모바일의 대표적인 사례로 핀란드 정부(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EU)와 스타트업이 추진 중인 MaaS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MaaS: Mobility as a Service, 서비스로 제공되는 이동수단) 이를 활용하면 사용자는 어디로든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집 앞으로 나가면 택시가 대기하고 있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기차를 탈 수 있으며, 기차에서 내린 뒤엔 대기 중인 차를 몰고 목적지에 가면 된다. 별도의 반납도 필요 없다. 근처에 있는 다른 사용자가 택시를 타고 와서 그 차에 올라탄 후 자신의 목적지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5G를 활용하면 이렇게 모든 교통수단이 하나로 통합되는 MaaS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노키아
노키아

<노키아의 헬스케어 제품>

세 번째 혁신은 '하이퍼 스케일'이다. 협업의 범위가 더욱 확장된다는 뜻이다.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가 연결되면서 과거에는 꿈꾸지 못했던 더 큰 규모의 협업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협업의 한계를 돌파해 더 큰 비즈니스를 이끌어낼 수 있다.

5G는 단순히 데이터 통신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다. 네트워크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5G를 통해 스마트홈, 스마트팩토리, 스마트병원, 자율주행물류 시스템 등이 상용화될 것이고, 이를 통해 도시 전체가 연결되는 스마트 시티가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5G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앞으로의 기업 핵심 경쟁력이라는 게 라우리 부사장의 설명이다.

노키아는 이러한 5G를 현실화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 및 국내 이통통신 3사와 적극 협력하고 있다. 얼마 전 라지브 수리 사장이 직접 방한해 이통통신 3사 CEO와 앞으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KT와 협력해 평창 동계올림픽 때 5G를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스타디움도 운영할 계획이다.

라우리 부사장은 "5G는 2년 내로 상용화를 위한 모든 네트워크적 준비가 마무리될 것이다. 한국은 핀란드와 함께 전 세계에서 5G로의 이행이 가장 빠른 국가다. 2019년이면 5G 상용화가 시작되어 2020년이면 상용화 준비가 마무리될 전망이다"고 5G 서비스 개시 시기를 예측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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