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EO 열전] 전 세계 가전 40% 생산하는 남자 어쩌다 혐한에 빠졌나, 궈 타이밍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애플 아이폰,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HP와 델 노트북, 아마존 킨들... 전 세계 수많은 사용자가 이용 중인 제품들이다. 그러나 이 제품들은 해당 업체들이 생산한 것이 아니다. 단지 설계만 했을 뿐이다. 당장 아이폰만 살펴봐도 그렇다. 제품 뒷면에는 '이 제품은 애플이 캘리포니아에서 설계했습니다(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라는 글귀만 적혀있다. 공장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애플이 어떻게 10억 대가 넘는 아이폰을 생산해서 판매할 수 있었을까?

비밀은 세계 최대의 제조 대행(Contract Manufacturing) 업체인 폭스콘(Foxconn)이 쥐고 있다. 이 제조 대행업체가 애플을 대신해서 생산, 공급한 것이다. 아이폰이 전부가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 킨들, 수많은 제조사의 노트북 등 수많은 전자 제품이 폭스콘에서 생산되어 사용자의 손에 쥐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가전의 40%가 폭스콘에서 생산되어 유통되고 있다고 추산했을 정도다(2012년 기준).

이러한 폭스콘을 창업한 인물이 바로 궈 타이밍(郭台銘, Guo Tai-ming) 폭스콘 회장이다. 우리에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대립하는 혐한(嫌韓) 사업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일대기를 통해 대만과 한국 전자산업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궈 타이밍
궈 타이밍

<궈 타이밍 폭스콘 회장 출처: 인터비즈>

중국 혈통 실향민에서 대만 최고의 부자로

폭스콘의 정확한 이름은 '훙하이(鴻海)정밀공업'이다. 폭스콘이란 브랜드는 훙하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서양 사람을 위해 따로 지은 이름이다. 때문에 대만이나 중국에선 훙하이라는 브랜드를 쓰고, 그 외의 국가에선 폭스콘이란 브랜드를 이용하고 있다. 폭스콘은 대만 타이베이에 본사를 두고 있다. 반도체 생산 대행 기업인 TSMC에 이어 대만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기업이다.

대만 타이베이, 홍콩, 영국 런던 등 전 세계 3군데 도시에 동시 상장되어 있으며 중국, 브라질, 인도, 말레이시아, 멕시코, 헝가리 등 전 세계 10여 개 국에 30여 개의 공장을 두고 전 세계인들에게 공급되는 전자제품을 만들고 있다. 현재 120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 중이다. 이는 울산시와 맞먹는 인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수치이며, 월마트와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규모를 바탕으로 약 1360억 달러(153조 9928억 원)의 매출과 약 49억 달러(5조 5482억 원)의 영업 이익을 내고 있다(비즈니스위크 2015년 기준).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2016년 폭스콘을 전 세계에서 25번째로 거대한 기업으로 평가했다.

궈 타이밍은 현재 102억 달러(11조 5504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대만 최고의 부자다(포브스, 2017년 9월 기준). 전 세계 부호들 가운데 182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테크 관련 부호로 대상을 압축하면 23위의 자산가가 된다. 과거 그의 자산은 60억 달러(6조 7944억 원) 내외로 대만 4위의 부자였으나, 12.6%의 지분을 소유한 폭스콘의 성장에 힘입어 대만 최고의 부자에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봉급을 1대만달러만 받고 있으며, 폭스콘의 모든 임원의 연봉을 자신의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궈 타이밍은 1950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중국 산시성 출신인 그의 아버지와 산둥성 출신인 그의 어머니는 중국 공산당을 피해 1949년 대만으로 이주했다. 대만 본토인이 아니라 산시성에 뿌리를 둔 외성인(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대만인을 가리키는 단어)인 셈이다. 물론 그가 차별을 당했다는 것은 아니다. 대만 사회의 주류는 대만 본토인이 아니라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외성인들이다.

궈 타이밍은 고무 공장에서 타이어를 생산하며 공장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을 쌓은 후 24살에 자신만의 회사 창업에 나섰다. 1974년 어머니가 준 10만 대만달러와 30만 대만달러의 자본금(40만 대만달러, 당시 환율 기준 7500달러)으로 훙하이정밀(폭스콘)을 창업한 그가 첫 번째로 선택한 사업은 플라스틱 제조업이었다. 텔레비전에 쓰이는 플라스틱 부품을 제작해 다른 전자 회사에 납품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그의 2명의 남동생 궈 타이창과 궈 타이청 역시 형의 회사에 합류해 회사 성장을 도왔다.

궈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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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사업가에게 주어진 세 번의 기회

이렇게 플라스틱을 생산하던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세 번의 기회를 통해 오늘날 전 세계 최대의 생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기회는 1980년 미국의 게임기 생산업체 아타리로부터 비디오게임기 '아타리 2600'의 게임 컨트롤러와 게임기와 TV를 연결하는 커넥터 생산을 주문받으면서 시작되었다. 해외 업체의 제품 생산을 수주받으면서 폭스콘은 대만 국내에서만 비즈니스를 지속하던 기업에서 글로벌 생산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놀란 부시넬이 1972년 창업한 아타리는 1980년 비디오 게임의 1차 호황을 맞아 아타리 2600의 생산을 대폭 확대했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미국 내 공장 대신 해외의 제조업체에서 기기를 생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기회를 궈 타이밍이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비록 아타리와 아타리 2600은 4년 뒤 공급과다(이른바 아타리 쇼크)로 쫄딱 망했지만, 궈 타이밍과 폭스콘이라는 유산을 남길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도 폭스콘은 전 세계에 유통되는 비디오게임기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아타리와의 거래를 통해 궈 타이밍은 대만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초의 거래선이었던 아타리가 파산하자 이러한 궈 타이밍의 결심은 현실이 되었다.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떠나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다녔다. 11개월 동안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서 미국의 IT 기업을 드나들며 자사에 생산을 맡기라고 권유했다. 수많은 기업에서 문전박대를 당했고, 심지어 산업스파이로 의심받아 보안 검문을 당하기도 했지만 궈 타이밍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 끝에 미국의 여러 IT 기업으로부터 생산 계약을 수주할 수 있었다.

궈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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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 충칭 공장에서 직원들이 기계에 대한 검수를 실시하고 있다. 출처: 폭스콘>

두 번째 기회는 실향민이었던 그가 1988년 중국 본토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중국 공장 설립을 통해 폭스콘의 제품 생산량은 급격히 늘어났고, 굴지의 제조 대행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80년 후반 중국은 공산주의 경제 시스템을 버리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서방 자본주의와 기업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대만 기업들에게 중국 본토의 문호가 열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북한과 합작한 개성공단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대만 기업들은 이에 선뜻 응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적대적인 사이인 중국에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과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들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감안하면 대만 기업들의 고민은 지극히 타당하다.

반면 궈 타이밍은 다른 대만 기업과 달리 승부수를 던졌다. 원가절감과 생산관리가 주가 되는 제조 대행 산업을 지속하려면 수많은 인력과 저렴한 인건비가 필수였다. 중국 본토는 이러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국제 정세라는 위험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궈 타이밍은 1988년 중국 광둥성 선전에 폭스콘의 전자 공장을 지었다. 그냥 전자 공장이 아니라 중국 최대의 생산 공장이었다. 단순히 생산 시설만 건설하지 않고,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종업원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까지 함께 지었다. 수만 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는 숙소, 식당뿐만 아니라 진료소, 양계장 등도 함께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투자를 통해 중국 정부의 우호적인 지원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폭스콘의 공장이 들어선 이후 선전에는 다른 전자 기업들의 공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장뿐만 아니라 본사도 함께 들어섰다. 현재 선전은 실리콘밸리에 이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의 첨단 산업 단지로 평가받고 있다. 공장을 설립한다는 궈 타이밍의 결단이 이러한 선전의 발전에 한몫했다.

궈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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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 공장의 아이폰 조립라인. 출처: 폭스콘>

현재 폭스콘은 중국 8개 도시에서 15개가 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선전 롱후아 지역에 있는 폭스콘의 핵심 생산 공장에는 40만 명이 넘는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이 공장은 기숙사는 물론 자체 소방대, TV 방송국, 식당, 은행, 서점까지 갖추고 있다. 공장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이 공장 직원의 4분의 1은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나머지 직원은 근처 지역에서 통근 생활을 하고 있다. 브라질, 인도, 말레이시아, 멕시코, 헝가리 등에도 생산 공장을 두고 50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고용해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를 확보하기 위해 이렇게 저렴한 국가 위주로 공장을 설립하던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이제 최신 IT 기술 연구를 지속하고 미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일본과 미국에도 공장과 R&D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일본에는 샤프와 합작해 오사카 지역에 2개의 LCD 생산 공장을 설립했고, 미국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해 펜실바니아 지역에 2개의 공장과 1개의 R&D 센터를 지으려 하고 있다.

궈 타이밍
궈 타이밍

<폭스콘 충칭 공장의 내부 모습. 출처: 폭스콘>

궈 타이밍과 폭스콘의 세 번째 기회는 1996년 미국의 PC 제조업체 컴팩 제품의 케이스를 생산한다는 계약을 따내면서 찾아왔다. 궈 타이밍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폭스콘의 생산 및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폭스콘은 단순 전자 제품을 만드는 업체에서 벗어나 당시 IT 기술의 총아였던 PC와 노트북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업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컴팩의 사례를 지켜본 델의 창업자 마이클 델은 케이스뿐만 아니라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던 PC와 노트북 제품 자체를 모두 폭스콘의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델의 결정을 본 다른 PC 기업도 하나둘씩 자사 제품 생산을 폭스콘에 맡기기 시작했다.

팀 쿡
팀 쿡

<아이폰 공장을 방문한 팀쿡 애플 CEO>

결정타는 애플의 결정이었다. 원래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자사 제품(아이맥)의 생산을 LG전자에게 위탁하고 있었다. (강력한 독자 브랜드를 갖춘 지금이야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한국 기업도 제조 대행을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제품 생산 관리 및 QA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애플과 스티브 잡스조차 폭스콘을 인정하고 자사 제품 생산을 폭스콘에 맡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누구인가. 반골 기질이 강하기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는 자사 제품에 '중국에서 생산(Made in China)'이라는 글씨를 적는 것을 거부하고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를 대신 적기 시작했고, 이는 곧 애플의 전통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애플과 폭스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현재 애플은 폭스콘의 최대 고객이다. 연 1억 대에 달하는 아이폰 생산량의 대부분을 폭스콘이 감당하고 있다. 폭스콘은 늘어나는 생산을 감당하기 위해 애플 제품 생산 라인을 위한 10만여 명의 추가 직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폭스콘과 IT 기업의 협업을 통해 제품 설계는 IT 기업이 하고, 생산은 폭스콘이 하는 현재 IT 제품 제조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폭스콘이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가전의 40%를 생산하는 비결이다. 궈 타이밍은 이러한 시스템이 완성될 수 있도록 많은 기업을 설득했고, 이를 통해 폭스콘을 모든 것을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다. 불과 15명의 직원으로 시작된 기업을 약 120만 명을 먹여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세계 최대 생산업체의 그늘, 노동착취

제조 대행업체가 많은 수익을 내려면 필연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오랜 노동 시간이 수반된다. 이 점에서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노동착취 사례로 꼽히고 있다.

2010년 폭스콘에서 일하던 노동자 18명이 자살을 기도해, 이 가운데 14명이 사망하면서 폭스콘의 열악한 근로조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상당수의 근로자가 하루 12시간씩 일주일에 6일을 근무한다는 사실이 전 직원을 통해 폭로되었다. 미국 언론은 앞다투어 이 사실을 보도했고, 폭스콘과 폭스콘에 제품 생산을 맡긴 미국 IT 기업들은 연일 소비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러한 근로자들의 초과근무를 부른 당사자인 애플에게 비판이 집중되었다.

궈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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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 충칭에서 임직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출처: 폭스콘>

이러한 비판을 막기 위해 애플은 폭스콘에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직원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근무조건 개선을 약속해야만 했다. 먼저 영국 산업혁명 시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긴 노동 시간을 개선하기 위해 추가 인력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직원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24시간 운영되는 직원고민상담센터도 운영하기 시작했고,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의 봉급도 단계적으로 2배 가까이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둬 폭스콘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자살은 2011년 4명, 2012년 1명, 2013년 2명, 2016년 1명 등 꾸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매년 자살자가 나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직원들의 자살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을 내놔 구설수에 올랐다. 대부분의 자살자가 기숙사에서 투신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숙사의 창문을 여는데 30초가 넘는 시간이 걸리도록 공사를 진행했다. 직원들은 예전에는 1초면 열 수 있었던 창문을 여는데 30초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에 어이없어 했다. 자살을 막는데 효과적인지 하나도 검증되지 않은 이 정책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궈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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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 충칭 공장 전경. 철창으로 가로막힌 폭스콘 공장이 근로조건 개선에 있어 꽉 막힌 정책을 보이고 있는 회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출처: 폭스콘>

궈 타이밍 본인의 발언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직원들의 자살이 이어지자 궈 타이밍 회장은 "폭스콘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인력을 관리하고 있다. 인간도 동물인 만큼 100만의 동물을 관리하려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 이후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사람과 달리 골치를 썩이지 않는 기계를 적극 도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대 당 2만 5000달러(2832만 원)의 로봇 1만 대(이른바 '폭스봇')를 도입해 제품을 생산하려 했으나, 제조사들이 원하는 품질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아직은 모든 생산 공정에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로봇 기업과 협력해 인도네시아에 로봇 전용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로봇 도입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만 최고 부자가 혐한에 빠진 사연

“부끄러운 제품 갤럭시를 사지 말아라. 아이폰을 구입해라.”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은 뒤통수를 치지는 않는다.”

"일본 기업과 손잡고 5년 내로 삼성전자를 꺾겠다."

일본이나 대만 인터넷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혐한(嫌韓) 발언이 아니다. 대만 최고의 부자이자, 대만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기업인 훙하이정밀(폭스콘)의 회장 궈 타이밍이 2012년 공식 석상에서 거침없이 내뱉은 발언이다. 이 발언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평소에도 한국인을 ‘가오리방쯔(고려몽둥이놈이란 뜻으로,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얕잡아볼 때 쓰는 말)’라고 불렀으며, 삼성전자를 '고자질쟁이'로 표현했다. "배신자 삼성전자를 무너뜨리는 게 내 인생의 목표다"고 할 정도로 그의 혐한 감정은 유명하다.

궈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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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 타이밍 폭스콘 회장 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진짜로 뒤통수를 맞은 적은 있다

대체 어쩌다 그는 이렇게 극렬한 혐한 인사가 된 것일까. 일단 변명을 좀 해주자면, 실제로 궈 타이밍 회장은 한국과 삼성전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혐한에 빠진 일본과 대만의 인터넷 우익 인사들과 달리 이유 있는(?) 혐한 인사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 폭스콘의 LCD 생산 계열사인 치메이(Chimei)와 LG디스플레이 등 6개사를 유럽연합에 가격 담합 혐의로 고발했다. 때문에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유럽연합으로부터 담합에 따른 과징금 3억 유로를 내야만 했다. LG디스플레이도 이때 담합에 따른 과징금으로 2억 1500만 유로를 내야만 했다. 담합의 당사자 중 하나였던 삼성전자는 자진신고에 따른 혜택으로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았다.

이 사건 이후 궈 타이밍은 공개적인 석상에서 삼성전자를 "경쟁사의 등에 칼을 꽂는 소인배"라고 비난하며 본격적인 혐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폭스콘이 삼성전자 갤럭시의 경쟁 제품인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곳이라는 점도 궈 타이밍의 이러한 혐한 발언에 한몫 거들었다.

反삼성전자를 향한 그의 거침없는 행보

하지만 우리는 궈 타이밍의 이러한 발언을 주목해야 한다. 그가 말뿐만 아니라 반 삼성전자를 실천할 능력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메모리를 위시한 반도체 사업, 갤럭시를 앞세운 모바일 사업, OLED와 LCD를 생산하는 디스플레이 사업이 그것이다.

궈 타이밍과 폭스콘은 이미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에서 삼성전자를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다. 2012년 경영위기로 휘청이던 샤프에 투자를 단행하며 투자를 통한 삼성전자의 샤프 기술 확보를 위한 노력에 초를 쳤고, 결국 2016년 샤프를 인수해 TV용 고급 LCD 패널과 OLED 패널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했다. 이렇게 샤프 인수를 추진하면서 궈 타이밍은 놀라운 협상력을 보여줬다.

원래 일본 정부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보유한 샤프를 제아무리 관계가 좋다고 하나 외국인 대만 기업에 넘기는 것을 꺼려했다. 대신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외부 투자를 유치해 경영정상화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궈 타이밍은 인수액을 6000억 엔으로 올리고, 샤프의 기존 고용 인원을 모두 승계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이러한 일본 정부의 의지를 꺾었다. 정부 대신 민간 기업이 인수해야 기업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궈 타이밍의 논리도 매각이라는 결정에 한몫했다. 심지어 앞에서 얘기한 혐한 발언을 쏟아내며 일본 내 여론도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계약 체결 직전 궈 타이밍은 샤프 장부에서 3500억 엔의 채무와 악성 재고들을 발견하고, 인수 계약을 보류했다. 정부의 지원은 매각 결정이 나온 후 빠져나갔다. 당장 돈을 구할 길이 없어져서 공장 운영이 불가능해진 샤프는 다급해졌다. 결국 궈 타이밍은 이러한 샤프의 다급함을 활용해 인수액을 1000억 엔 이상 낮춰 7000억 엔에 샤프를 인수했다. 샤프의 인수가 결정된 후 궈 타이밍은 처음의 말을 뒤집고 폭스콘과 인력이 겹치는 해외 유통망과 태양전지 사업부의 인력 7000명을 해고하는 등 강력한 체질 개선을 진행했다.

혐한
혐한

<궈 타이밍 회장은 삼성전자와 갤럭시를 이렇게 짓밟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체질 개선과 폭스콘의 자금 수혈로 샤프의 상황은 급격히 호전되었다. 샤프의 기술과 폭스콘의 생산력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이미 폭스콘은 치메이 이노룩스 브랜드로 전 세계 모니터 패널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고, 샤프의 브랜드로 TV 패널 시장에서도 입지를 확보했다.

심지어 차세대 패널로 불리는 OLED 패널과 대형 TV용 LCD 패널 양산을 위해 샤프 브랜드로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등 반 삼성전자의 기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유통되는 중저가 대형 TV의 패널 상당수가 샤프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궈 타이밍 회장이 삼성전자에게 조금이나마 타격을 주기 위해 다소 적자가 나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시장 경쟁뿐만 아니라 지위를 활용한 영향력 행사에도 나섰다. 궈 타이밍이 인수한 샤프는 지난해 말 갑자기 삼성전자에 LCD 패널 공급을 중단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생산 원가 상승에 따른 재협상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연말 삼성전자의 TV 생산에 차질을 줘 2017년 TV시장에서 샤프의 점유율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샤프 대신 경쟁사 LG디스플레이로부터 TV 패널을 공급받기로 하는 등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샤프에게 뉴욕 국제상업재판소에 4억 2900만 달러(4854억 원)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중재 신청을 내기도 했다.

궈 타이밍은 이렇게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반도체면에서도 삼성전자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폭스콘의 막대한 생산력을 감안하면 추후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폭스콘은 2016년 핀란드의 신생회사 HMD글로벌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노키아 스마트폰 브랜드에 관한 권리를 사들였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전 직원으로 구성된 HMD글로벌이 제품 설계를 담당하고, 폭스콘이 제품 생산과 설계 지원을 담당한다. 독자 브랜드 없이 제품 생산에 관한 노하우만 쌓아온 폭스콘이 간접적이나마 독자 브랜드를 확보해서 스마트폰 생산에 진출한 것이다. 고가 시장에선 아직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저가 안드로이드폰 시장에선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궈 타이밍은 지난 4월 도시바의 반도체 산업(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위해 3조 엔(30조6597억 원)을 배팅하는 등 삼성전자 타도를 위해 반도체 산업 진출에 대한 야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 배팅은 기업의 미래를 위해 절대로 물러날 수 없는 WD(웨스턴디지털)와 SK하이닉스에 묻혀 무산되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혐한 발언... 진짜 목적은 미래 먹거리 확보

사실 궈 타이밍의 혐한 발언은 그가 진짜 한국을 혐오해서 하는 발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폭스콘의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계산된 발언으로 보는 것이 옳다.

앞에서 설명한 행보를 보면 알겠지만, 궈 타이밍과 폭스콘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조 대행을 하던 기존 사업에서 벗어나 전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한 독자 브랜드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 브랜드를 만들기보다는 강력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경영 상의 문제로 매물로 나온 기존 브랜드를 인수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디스플레이, 모바일, 반도체라는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려는 궈 타이밍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만 한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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