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위를 보면 IT의 흐름이 보인다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구글이 전세계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1일(현지시각)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의 주가는 A형 보통주 기준 5,300억 8,000만 달러(약 640조 원)를 기록해, 5,346억 6,000만 달러(약 645.5조 원)를 기록한 애플보다 조금 처지는 상태로 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장 종료 1시간 후 알파벳의 주식이 5.7% 상승한 가격에 거래되면서, 구글이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차지했다. 마침내 구글이 라이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정상에 선 것이다.

구글, 애플
구글, 애플

시가총액이 그 기업의 실제 가치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시장이 그 기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파악하는 척도에 더 가깝다. 기업이 몸담고 있는 산업 분야와 해당 분야에서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해 주주들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때문에 시가총액을 보면 현재 가장 잘나가는 산업 분야가 무엇인지, 해당 산업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IT(컴퓨터)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금융, 에너지, 헬스 등 많은 분야가 IT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IT의 자리는 굳건하다. 지금까지 많은 IT(컴퓨터) 기업이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차지했고, 수성했으며, 그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시가총액 1위의 변천사를 통해 IT의 흐름을 되짚어보자.

IBM과 메인프레임의 시대

1980년, 세계 최초의 IT 기업 IBM이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2위는 IBM의 뒤를 잇는 실리콘밸리의 맏형 HP였다. 1980년대는 IBM의 시대였다. 비결은 컴퓨터와 메인프레임(고성능 일체형 컴퓨터)이다. 컴퓨터와 메인프레임은 전세계 기업 활동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손으로 일일이 작성하던 문서를 컴퓨터를 활용해 작성하기 시작했고, 고성능이 요구되던 기업의 업무는 메인프레임이 처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산업이 전산화되었다. IBM만은 못했지만, HP 역시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를 생산하며 변화를 주도했다.

IBM은 오늘날 PC의 모태가 되는 IBM 호환 PC를 개발하며 컴퓨터, 나아가 IT 산업의 토대를 다졌다. IBM의 비호 아래 또다른 거물 IT 기업이 태동했다. IBM 호환 PC용 프로세서를 개발하던 인텔과 IBM 호환 PC용 운영체제를 개발하던 MS다. 애플은 모토로라와 손잡고 IBM 호환 PC에 대항하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며 입지를 굳혔다.

메인프레임의 성공에 취해 IBM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컴퓨터는 기업용에 불과하며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IBM 호환 PC의 주도권을 인텔과 MS에게 넘겨준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컴퓨터의 가격은 비쌌으며, 개인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낮아지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IBM은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NTT(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에게 넘겨준 후 2위로 밀려나고 만다. NTT는 일본의 유선통신인프라 사업자다. 우리나라 사정에 비유하자면 SK텔레콤과 KT가 하나로 뭉친 사업자인 셈. NTT는 어떻게 IBM을 몰아내고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한 것일까? 답은 바로 거품경제다. 1980년대를 강타한 일본의 거품경제 탓에 NTT를 비롯한 일본 기업의 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것이다. IBM, GE, 엑손, 로열더치셸 만이 일본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거품이 꺼진 1989년 IBM은 다시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시장에는 새로운 제왕이 자라나고 있었다.

윈도우의 시대가 열리다

1990년 초반까지 IBM은 시가총액 1위를 수성했다. 아래에는 일본의 전자기업 투성이었지만, 기업 시장에서 나오는 높은 성과가 IBM의 가치를 올려줬다. 하지만 PC가 사용자에게 보급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메인프레임은 기업 전산실에서나 볼 수 있는 고리타분한 기기로 변했고, 기업의 활동은 PC 위주로 재편됐다. 결국 IBM은 GE에게 시가총액 1위를 내주고 만다.

1995년 역사적인 소프트웨어(SW)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윈도우95, 사용자들의 삶에 PC를 심어준 1등 공신이다. 윈도우95와 98의 잇따른 성공으로 MS는 98년 GE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MS는 누구도 부정못할 세계 최고의 기업이었다. 윈도우는 전세계 기업과 가정에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고, MS의 창업주 빌 게이츠도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제일의 부자로 등극한다. 1년 후 MS는 시가총액 6,189억 달러라는 역사적인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8,790억 달러(약 1,061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치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그 어떤 기업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인텔도 MS의 뒤를 이어 시가총액 2위를 차지했다. 그야말로 '윈텔' 시대였다.

시스코와 깜짝 닷컴버블

놀랍게도 2000년에 들어 MS는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시스코에게 내주고 만다. 인텔도 노키아에게 밀려 4위로 내려앉았다. 시스코는 통신 인프라와 네트워크 설비를 만드는 기업이다. 인터넷이 태동하고, 닷컴(.COM) 열풍이 불면서 통신 인프라와 네트워크 설비의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맞춰 네트워크 업계 1위 기업인 시스코의 가치도 급등했다. 노키아도 전세계 휴대폰 판매량 1위를 차지하며 인텔을 밀어냈다. IT의 흐름이 컴퓨터에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시스코 천하는 얼마가지 못했다. 닷컴 열풍이 거품처럼 사그라들면서 많은 인터넷 기업이 도산했고, 통신 인프라와 네트워크의 수요도 함께 줄어들었다. 결국 시스코의 시대는 1년 천하로 끝나고 만다.

윈도우와 오피스만 있으면 두려울게 없었지

2000년대는 여전히 MS의 시대였다. 윈도우 뿐만 아니라 MS 오피스라는 걸출한 사무용 문서도구를 앞세워 IT 시장을 지배했다. 10년 동안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수성했다.

하지만 MS에게도 불안요소가 존재했다.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것이다. 인터넷 업계는 닷컴 거품 속에서 살아남은 구글이라는 기업의 영역이었다. 새롭게 커지고 있는 시장을 외면해 IBM처럼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 MS는 MSN, 빙 등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출시하며 구글의 자리를 위협했다. 하지만 구글의 영역을 뺏어 올 수는 없었다.

무너진 제왕

파탄은 정작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PC 시장이 지고,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시발점은 MS가 잊고 있었던 오랜 라이벌 애플이었다. 애플이 선보인 아이폰은 기존의 불편하기 짝이없었던 PDA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한 물건이었다. MS도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측하긴 했다. 하지만 접근방법이 잘못되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예전 것을 버리지 못한 MS는 결국 편리함을 앞세운 애플과 아이폰 앞에 무너지고 만다.

2011년 애플은 MS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스마트의 시대, 애플의 시대

아이폰, 아이패드의 연이은 성공으로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다. 편리함과 세련됨을 바탕으로 애플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라는 거대한 시장의 1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중국 시장마저 장악했다.

하지만 애플은 전성기의 IBM이나 MS 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시장 장악력보다 막대한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수성했다. 언론과 분석가들이 틈만나면 애플 위기설을 떠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 장악력은 구글과 안드로이드가 더 컸다. MS도 PC와 기업 시장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시가총액을 회복해나갔다.

시가총액 1위의 비밀

결국 애플도 4년 만에 구글에게 시가총액 1위를 내주고 만다. 구글의 성장 비결은 플랫폼 장악력에 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아이폰, PC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해 사용자를 확보했다. 자체 플랫폼 안드로이드의 확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애플과 아이폰에 위기감을 느낀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를 포섭해 안드로이드 시장을 확대했다. 크롬 웹 브라우저를 출시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몰아내고 PC 인터넷 시장마저 장악했다. 거의 대부분의 PC, 스마트폰 사용자가 구글의 플랫폼 또는 서비스를 하나 이상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에 대한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머신러닝, 자율주행자동차, 인공지능, 로봇 등 다양한 미래 산업에서 핵심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구글에게도 불안한 점이 있다. 돈을 버는 영역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애플, MS 등 경쟁자들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것에 비해 구글은 인터넷 광고에만 목을 매고 있다. 인터넷 광고 산업이 흔들리면 회사가 같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영원한 1위는 없다. 지금은 구글이 시가총액 1위를 차지했지만, 금새 다른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 동안 그 기업이 IT 관련 기업일 것만은 분명하다. 시가총액 상위 10위 이내에 IT 기업이 여섯이나 포진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구글, 애플, MS, 아마존, 페이스북, GE(최근 GE는 다양한 빅데이터/시뮬레이션 SW를 출시하며 자사가 중공업이 아닌 IT 기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여섯이 차세대 시가총액 1위 후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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