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하드 올인' 새로텍 박상인 대표, 90년대 IT벤처의 맥 이어간다

김영우 pengo@itdonga.com

1990년대 중반이나 2000년대 초 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 상당히 많은 PC 관련제품 제조사가 있었다. 메인보드 업체인 석정전자, 그래픽카드 업체인 가산전자, 사운드카드 업체인 훈테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대만이나 중국 업체들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생각해 보면 대표적인 국내 외장하드(외장형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사인 새로텍(www.sarotech.com)의 존재는 참으로 용하다. 1993년에 처음 설립되어 2014년 현재까지 꿋꿋이 사업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IT 벤처기업들은 태반이 문을 닫았지만 새로텍 만큼은 예외다. 새로텍의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인 박상인 대표를 만나 새로텍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외장하드 사업을 시작한 이유, '남들이 하지 않으니까'

IT동아: 새로텍의 설립하기까지 걸어온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상인: 본래 전공은 반도체였고, 졸업 이후 금성사(현재의 LG전자), 삼보컴퓨터, 큐닉스 컴퓨터 등을 거친 후 새로텍을 설립했습니다.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만 약 35년을 일한 셈이죠.

새로텍 박상인
새로텍 박상인

IT동아: 새로텍을 설립한 이유, 회사명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박상인: 컴퓨터 분야에서 일하며 나이를 먹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사업을 가져야 할 때가 옵니다. 저 역시 그걸 느낀 거죠. 새로텍(Sarotech)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뭔가 새로운 걸 세상에 보여주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본래 '사라(Sarah)'라는 단어를 넣으려 했는데, 당시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이 외설 논란이 되고 있던 터라 이는 그만뒀습니다.

IT동아: 1990년대 초반이면 외장하드가 아직은 생소했던 시기였는데 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박상인: 사실 설립 초기에는 의료기기 사업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건 무엇보다 영업이 중요한데 이게 여의치 않더군요. 그래서 불과 1년만에 외장하드로 방향을 틀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외장하드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해요. 당시 다른 회사들이 하지 않았으니까.

살아남은 비결은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

IT동아: 1990년대에 국내에는 정말로 많은 PC 관련 제품 제조사가 있었지만 지금 살아남은 건 새로텍을 포함해 소수에 불과합니다. 새로텍이 지금껏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박상인: 간단히 말해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창 IT 벤처 붐이 불 때 'MP3 플레이어 사업을 하자', '내비게이션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는가' 하는 식의 제안이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외장하드 사업만 제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무리를 하던 업체들은 결국 쓰러졌죠.

새로텍 박상인 대표
새로텍 박상인 대표

IT동아: 지금은 외장하드를 파는 업체가 정말로 많지만 그래도 대표적인 한국산 외장하드라면 새로텍을 꼽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새로텍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입니까?

박상인: 일단은 제품 설계에 있어 나름의 고집이 있었습니다. 해외 수출도 적극적으로 했고요. 이를테면 별도의 외부 전원 어댑터 없이 본체에 전원부를 내장한 일체형 외장하드는 새로텍 설립 초기부터 계속 생산하고 있는데, 이런 걸 다른 업체에선 그다지 내놓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제품이 특히 해외 시장에서 꾸준하게 팔립니다. 물론 전원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직접 설계를 해야 하니 좀 손이 많이 가고 단가를 낮추는데도 불리하긴 하죠.

시장 커졌지만 대기업 입김, 해외 시장 침체로 어려움도 커져

IT동아: PC 시장에 축소하는 와중에도 외장하드 시장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덕분에 새로텍 역시 이득을 보고 있나요?

박상인: PC 시장에 데스크탑에서 노트북 중심으로, 그리고 내장용 저장장치가 HDD에서 SSD로 바뀌면서 오히려 고용량 휴대용 저장장치의 수요는 늘어났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경쟁 역시 극심해져서 우리는 고민이 많습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본격 진출한 것도 부담이 되고요. 게다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해외 시장의 수요가 줄어들었죠. 본래 새로텍 매출의 절반 가량이 해외 시장에서 발생했는데, 지금의 비중은 30% 정도입니다.

유명 디자이너 일러스트 적용한 새로텍
외장하드
유명 디자이너 일러스트 적용한 새로텍 외장하드

IT동아: 외장하드 시장이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새로텍에게 그저 좋은 상황만은 아니라는 것이 아이러니군요. 이를 극복할 방안은 있습니까?

박상인: 제품 자체로 승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최근 4K(UHD급) 영상 편집을 하는 전문가들이 고속 외장하드를 요구하고 있는데, 썬더볼트 인터페이스 기반의 새로텍 외장하드가 이런 이유로 꾸준하게 팔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소비자용으로는 키스 해링이나 크리스티앙 볼츠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일러스트를 넣은 제품을 출시했고요. 그리고 향후 USB 3.1 규격 제품도 최대한 빨리 출시하려 합니다.

다품종소량생산 전략, 자부심 큰 만큼 경영은 복잡

IT동아: 제품 자체로, 특히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수익 면에선 불리하지 않습니까?

박상인: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영업이나 마케팅 역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외장하드의 개발에서 생산, 판매까지 자체적으로 하는 국내업체는 새로텍이 거의 유일합니다. 물론 이런 게 자부심은 크지만 그만큼 경영 자체는 복잡해지죠.

IT동아: 외장하드 외의 제품도 비중은 적지만 취급은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상인: 아무래도 모바일 시장이 커지다 보니 보조배터리나 와이파이 지원 무선 외장하드 같은 제품도 출시를 했죠. 그래도 여전히 주력 제품은 일반 외장하드 입니다. 다만, 가정용 IP 카메라 같은 경우는 특히 주부들에게 반응이 좋아서 향후 시장 확대가 기대가 됩니다.

새로텍 박상인 대표
새로텍 박상인 대표

IT동아: 최근 스토리지 부문에서 NAS(Network Attached Storage) 시장이 부쩍 커지고 있습니다. NAS는 자신만의 고용량 클라우드 공간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인데, 새로텍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박상인: 사실 우리는 벌써 10여년 전에 NAS를 개발해 출시했습니다. 지금도 물론 팔고 있고요. 아마 국내 제조사 중 거의 최초 출시일 거에요. 하지만 NAS 개발이라는 것이 펌웨어 개발이나 네트워크 환경 구축 등과 같이 워낙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은데다 해외 업체들의 공세가 워낙 거세서 투자한 비용에 비해 그다지 재미는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틈틈이 기회는 노리고 있죠.

IT동아: 마지막으로 소비자들과 IT동아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박상인: 이 분야에서 제법 오래 일을 했지만 아직도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까지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단골 손님들이 꾸준하게 찾아주시죠. 직원들에게는 늘 진보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을 대할 때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일반 소비자들의 생활 편의를 높여주는 제품 개발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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