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가상현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입다
간밤에 미국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페이스북이 가상현실을 보여주는 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업체 오큘러스VR을 23억 달러(약 2조 5,000억 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이다. 인스타그램, 와츠앱 등 스타트업을 많이 인수하기로 유명한 것이 페이스북이지만, 그래도 모두 소셜 관련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점은 있었다. 반면 오큘러스VR은 소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페이스북과 오큘러스VR은 왜 갑작스럽게 하나가 된다는 결정을 한걸까. 이유와 파급력을 분석해보자.
개발기간 2년, 한계에 부딪힌 자금력
오큘러스VR은 지난 2012년 8월 창업자 팔머 러키(Palmer Luckey)가 킥스타터 방식(투자받은 금액이 일정액을 넘을 경우 사업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핵심사업은 가상현실을 구현해주는 HMD '오큘러스 리프트'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시중의 HMD는 무엇이 다른걸까. 시중의 HMD는 오직 영상 출력장치의 기능만 한다. 속된 말로 TV나 모니터를 사용자 눈 앞에 가져다 댄 것에 불과하다. 반면 오큘러스 리프트는 가속도 센서와 자이로 센서를 탑재해 사용자 얼굴의 움직임을 인식한다. 사용자가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게임 화면도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위아래로 흔들면 같이 흔들린다.
게임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1인칭 시점의 3D 게임을 즐길 때 주변을 둘러 보기 위해 마우스나 게임패드의 오른쪽 아날로그 스틱을 움직인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사용자 얼굴의 움직임'이 '마우스'나 '아날로그 스틱'의 역할을 대신하게 해주는 제품이다. 이를 통해 가상 현실을 보다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가격을 30만원 선으로 낮추기 위해 기존 HMD와 전혀 다른 영상 출력방식을 채택했다. 기존 HMD는 두 개의 작고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사용자 눈앞에 붙여 영상을 출력한다. 영상은 선명해지지만, 제품 가격이 비싸진다는 단점이 있다. 시중 HMD의 가격이 100만 원을 호가하는 이유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다른 방법을 채택했다. HD 해상도(1,280x720)의 6인치 디스플레이를 하나 배치한 후 이를 반으로 나눠 사용자의 눈에 하나씩 쏘아주는 방식이다. 각각의 해상도는 반토막(640x720)날지 몰라도 제품 단가는 낮아졌다.
여기에 오큘러스 리프트만의 또 다른 특징이 존재한다. 기존 HMD는 집이 협소해 대형 TV를 설치하지 못한 사용자를 위한 제품이다. 입어보면 '어두운 방' 안에서 '대형 TV'를 보는 느낌이 난다. 영상 감상에 최적화된 제품이란 의미다. 반면 오큘러스 리프트는 게임을 통한 가상현실 체험에 초점을 맞췄다. 가상현실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자의 눈과 디스플레이 사이에 시야를 왜곡시키는 어안렌즈를 배치했다. 이를 통해 FOV(Field of View, 시계)값을 실제 시야와 유사하게 일치시켰다. '어두운 방'은 사라지고 '화면'만 남는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게임, 입체영상 등을 한층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 기기로 각광받았다. 세계 최대의 게임 행사 E3 2013에서 올해의 하드웨어 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국내 최대의 게임 행사 지스타 2014에 출품해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비전을 쫓아 거물 개발자가 오큘러스VR에 합류하기도 했다. FPS 게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카멕이다. 그는 오큘러스VR의 CTO(최고기술관리자)로 합류해 오큘러스 리프트 전용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잘나가는 스타트업인 오큘러스VR에게도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자금이다. 스타트업은 보통 자신의 지분을 내주는 대가로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개발한다. 오큘러스VR도 예외는 아니었다. 킥스타터로 1억 달러(약 1,07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유치하고, 스타크캐피털 등 벤처캐피탈로부터 추가 자금을 수혈받았다. 하지만 개발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투자받은 자금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때문에 작년에도 오큘러스VR은 인수설에 시달렸다. 당시 러키 최고경영자는 이러한 인수설에 맞서 오큘러스VR을 판매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왜 개발기간이 길어진걸까. 사용자를 만족시킬 만한 수준의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아직 미완성이다. 개발자를 대상으로 베타테스트용 제품을 판매해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고 있다. 낮은 해상도를 지적받자 해상도를 풀HD(1,920x1,080)로 높이기로 결정했고, 몸의 움직임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받자 외장 카메라를 추가했다. 한층 정교한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 3D 사운드 기능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처럼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면서 개발비와 개발기간은 점점 늘어났고, 결국 러키 최고경영자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자금을 더 수혈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오큘러스VR의 비전을 이해해줄 회사에게 인수돼야 하는가.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와 만나 오큘러스VR의 비전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러키는 자신의 비전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저커버그는 "나는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엔 우리(페이스북)는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회사다"고 말했다.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5일(현지시각) 인수 소식을 발표하면서 러키는 "그들(페이스북)은 가상현실의 비전을 믿고 있다(They believe in our vision of virtual reality)"고 인수 소감을 밝혔다.
페이스북, 이제 소니와 MS도 우리 경쟁자
오큘러스VR을 인수함으로써 페이스북은 내년 게임업계의 화두로 떠오를 가상현실에 가장 큰 영향력을 회두를 수 있는 업체로 떠올랐다. 가상현실 구현을 위한 연구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셋이다. 오큘러스VR, 소니, 마이크로소프트(MS)다. 소니는 GDC2014에서 '프로젝트 모피어스'라는 PS4용 가상현실 HMD를 공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프로젝트 포르탈레자라'는 엑스박스 원 및 PC용 가상현실 기기를 연구 중이다. 때문에 페이스북은 인터넷 및 모바일 광고 시장에서 겨루고 있는 구글 뿐만 아니라 MS와 소니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얻게 됐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직 베타테스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오큘러스VR은 제품 가격과 출시 일정 그리고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등 구체적인 목표를 차근차근 달성해나가고 있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오큘러스 리프트를 게임과 영상 감상 뿐만 아니라 스포츠 중계, 원격 학습, 원격 진료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 플랫폼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페이스북이 사용자에게 가상현실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오는 8월 해상도를 풀HD로 강화한 2차 개발자 버전이 출시되고, 베타테스트가 끝나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정식 제품이 출시된다. 가격은 300~350달러(약 31만~36만 원)로 책정될 전망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