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논의 중인 '단말기 유통법', 안녕하신가요?

단말기 유통법과, 단말기 자급제.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국내 이동통신 3사의 '보조금 대란'과 맞물리면서 계속해 등장하는, 흔한 말로 요즘 핫(Hot)한 용어다. 그런데, 낯설다. 아는 사람들만 알고, 몰라도 되는 그저 그런 것으로 치부한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단말기 유통법은 1년 가까이 표류 중이며, 단말기 자급제는 일부 알뜰폰에만 적용하는 반쪽짜리 제도로 전락했다. 이건 아니다. 좀더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보조금 120만 원이 난무하는 지금의 휴대폰 유통 구조는, 그 누가 말하더라도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다.

보조금 대란
보조금 대란

싸게 구매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여기 같은 스마트폰이 있다. 그것이 아이폰이든, 갤럭시 스마트폰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구매한 가격이 다르다. 누구는 10만 원에 샀다고 하고, 누구는 100만 원에 샀단다. 어떤 이는 3개월 뒤면 돈을 돌려 받는단다. 물론 스마트폰 아니, 제품이라는 것은, 처음 출시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고, 신제품이 구형 제품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마트폰은 불과 며칠 사이에 가격이 널뛴다. 어제 모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고 오늘 내방하면 100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공짜로 준단다. 몇 시간 뒤 같은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이번에는 60만 원을 내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어딘가 뒤틀려도 한참 뒤틀린 구조다.

2014년 2월 10일 저녁, SK텔레콤의 정책
공지
2014년 2월 10일 저녁, SK텔레콤의 정책 공지

여기 같은 스마트폰을 산 두 사람이 있다. A씨는 공짜로 구매했고, B씨는 60만 원에 샀단다. A씨는 B씨에게 묻는다.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은 했는지, 전화로 물어는 봤는지, 최소한 구매할 때 판매자에게 할부원금은 물어봤냐고 따진다. 그리고 A씨는 B씨에게 '바보'라며, 자기는 공짜로 샀다고 자랑한다. B씨는 억울하다.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면, A씨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B씨에게 더 알아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뿐이다. 왜 애꿎은 B씨는 바보가 되어야 하는가.

단말기 유통법과 단말기 자급제

이 같은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개선책이 단말기 유통법과 단말기 자급제다. 단말기 유통법은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안'의 줄임말이다. 현재 이동통신사가 제공하고 있는 '보조금'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최소한 보조금에 대해서 사용자들이 혜택을 누리는 사람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세부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동통신사가 특정 단말기에 보조금을 몰아주면, 해당 제조사에게도 불이익을 주며, 이동통신사는 가입방법(신규, 번호이동, 기기변경 등)에 따라서 보조금을 차등 지급할 수 없다. 또한, 기기별로 약정 내용이나 보조금 액수를 정확하게 공시해야 하고, 요금제에 따른 보조금 차별 지급도 금지한다. 제조사 장려금도 조사하며 관련 자료제출 의무화 등의 내용도 담는다.

즉, 단말기 유통법은 보조금을 인정하며, 이를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단말기 유통법을 시행하면 이동통신사, 단말기 제조사, 직영점/대리점 등 현 단말기 유통 구제에 개입되어 있는 모든 것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

단말기 자급제는 현 유통 구조를 처음부터 뒤집어 엎는 것과 같다(현재 일부 알뜰폰에 적용되고 있다). 제조사는 단말기를 생산하고, 대행사는 판매 및 유통 등을 관리하며, 이동통신사는 요금제와 같은 서비스만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는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원회 의장이 언급한 단말기 완전 자급제도 결국 단말기 자급제와 같은 의미다.

단말기 자급제
단말기 자급제

시점을 사용자로 바꿔보자. 앞서 언급한 A씨와 B씨는 삼성전자 직영점 또는 대리점에서 갤럭시 스마트폰을 같은 가격인 60만 원에 구매한다. 일시불일지, 할부일지는 본인들이 선택하면 그만. 그리고 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동통신사 직영점 또는 대리점을 찾아가 원하는 요금제에 가입하면 끝이다(참고로 과거 애플이 아이폰을, 구글이 넥서스 시리즈를 이 같은 방식으로 판매하려다 포기했다).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해

현 유통 구조는 이동통신사가 제조사의 휴대폰을 가져와 요금제 상품과 묶어서 판매한다. 이 같은 유통 구조는 휴대폰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보조금 경쟁을 유발하는 근본적 요인이다. 현실상 이를 처음부터 뜯어 고칠 수는 없다. 계단을 밟든 단계적으로 올라가야 한다. 너무 급작스런 변화는, 시장과 사용자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다.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직 단말기 자급제는 시기상조다. 생산과 유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금의 유통 구조는 한번에 뜯어고치기 어렵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 문제만 쌓이는 현 유통 구조에 미련 가질 필요는 없다. 가장 현실 가능성 높은 것은 단말기 유통법이다.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말기 유통법은 현재 1년 가까이 논의 '중'이다. 관련 법안은 국회 안에서 표류 중이다. 지난 12월 임시국회에 상정됐지만, 그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다. 그 동안 세부 조항이 바뀌고 있다. 제조사가 이동통신사에 제공하는 장려금 공개 여부, 개별 제조사가 아닌 전체 제조사 보조금의 합계 제출 등이 대표적. 최근에 이르러 단말기 유통법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묻고 싶다. 단말기 유통법, 지금 안녕하시냐고.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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