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본격화한 AI PC…'진짜 대세? 마케팅 용어?'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글로벌 PC 업계에서 ‘AI PC’를 내세운 경쟁이 점차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온디바이스 AI로 옮겨가며 기기 자체의 AI 연산 성능이 중요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제품 판매 동력이 필요한 글로벌 PC 제조사와 칩세트 제조사, AI를 앞세워 PC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AI PC가 뭐길래

AI PC에 대한 정의는 각 제조사 진영, 시장조사기관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인공지능 연산에 최적화한 신경망 처리 장치(NPU)를 갖춘 PC로 정리된다. 인텔, AMD 등이 내놓고 있는 코어 울트라, 라이젠 AI 등 NPU 내장 CPU를 탑재하는 게 AI PC의 최소 요건이라는 의미다. 가령 인텔은 ‘코어 울트라의 CPU, GPU, NPU의 조합을 통해 생산성, 창조성, 보안 측면에서 새로운 AI 경험을 제공하는 PC’로 AI PC로 정의한다.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신경망 처리 장치가 탑재된 인텔 코어 울트라 / 출처=인텔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신경망 처리 장치가 탑재된 인텔 코어 울트라 / 출처=인텔

사실 NPU가 없다고 해서 AI 연산을 못 하거나 온디바이스 AI를 구동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GPU의 단순 병렬 연산 성능을 AI 연산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지금처럼 AI가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GPU를 그래픽 처리가 아닌 범용 연산에 활용하는 GPGPU 개념이 등장한 덕분이기도 하다.

문제는 GPU를 AI 연산 용도로만 쓰기에는 전력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고성능 GPU는 PC에서 가장 높은 전력을 소모하는 부품이다. PC의 체급이라 할 수 있는 열 설계 전력(TDP)을 사실상 GPU가 결정할 정도다. 이 때문에 AI 연산이란 목적에 좀 더 특화하면서 전력 효율을 높인 NPU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전력 효율이 중요한 스마트폰의 두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는 몇 년 전부터 일찌감치 NPU가 탑재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AMD와 인텔이 노트북에 들어가는 모바일 프로세서에 먼저 NPU 탑재 프로세서를 선보이거나, 이를 중심으로 AI PC 마케팅을 펼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PC는 사실 마케팅 용어?

다만 아직은 AI PC의 필요성이나 효용성이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들만한 게 윈도용 코파일럿을 앞세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I PC’ 마케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이 올해 3월 말 대만에서 연 ‘AI 서밋’을 통해 AI PC의 요건으로 '코파일럿을 지원할 것', '코파일럿 전용 키 탑재할 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코파일럿은 현재 온디바이스 AI가 아니라 클라우드 서버에서 처리되는 AI다. 기기 자체의 AI 연산 성능과 코파일럿 지원 여부, 응답 속도는 현재로서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셈이다.

코파일럿 전용 키를 AI PC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소 궁색하다. 지금도 시작 키와 알파벳 C를 함께 누르거나, 작업표시줄 오른쪽의 코파일럿 아이콘을 누르기만 하면 코파일럿을 얼마든지 호출할 수 있다. 코파일럿 키에 상징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미국 PC 전문 매체 탐스하드웨어는 “윈도우용 코파일럿은 새 PC를 살 이유가 못 된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AI PC를 표방하는 올해 신제품 PC부터 달려나오는 '코파일럿 전용 키' / 출처=IT동아
AI PC를 표방하는 올해 신제품 PC부터 달려나오는 '코파일럿 전용 키' / 출처=IT동아

PC 제조사들이 저마다 내놓는 AI 관련 기능이나 온디바이스 AI 소프트웨어도 사정은 비슷하다. MSI ‘AI 아티스트’, 레노버 ‘크리에이터 존’과 같은 이미지 생성 AI 소프트웨어는 신기하긴 하지만 소비자가 AI PC를 구매하게 만들 ‘킬러 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동 성능 최적화 기능처럼 NPU나 생성형 AI와 무관한 데다 이전에도 흔했던 기능을 AI PC 마케팅에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모습도 PC 제조사들의 신제품 홍보에서 흔히 나타난다.

업계에서도 AI PC가 아직은 마케팅에 좀 더 방점이 찍힌 용어라는 걸 자인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27, 28일(현지 시각) 양일간 태국에서 열린 레노버의 PC 신제품 소개 행사인 ‘레노버 이노베이트 2024’에서 한 인텔 관계자는 AI PC라는 용어가 PC 업계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이유가 “PC 판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건은 생태계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그렇다고 AI PC가 마케팅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황된 단어라고 보는 것도 섣부른 결론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아직 효용성이 부족한 신기술을 앞세워 제품을 홍보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는 TV 업계의 HDR처럼 기본 사양으로 자리 잡는 사례도, 3D TV처럼 몇 년 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사례도 있다. 관건은 그 효용성을 현실화할 생태계를 앞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AI PC의 미래에는 긍정적인 면도 많아 보인다. 일단 온디바이스 AI라는 대세가 굳건한 가운데,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주요 시장 참여자들의 생태계 활성화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인텔은 지난해 10월부터 AI PC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AI PC 가속화 프로그램’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을 지원해 왔으며, 지난달에는 이를 하드웨어 개발사 및 소규모 개발사로까지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윈도우용 코파일럿 기능 상당수를 향후 온디바이스 AI로 구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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