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빅뱅] 검정밖에 모르는 너란 남자 진부한 남자
왜 노트북은 검정, 회색 등의 밋밋한 무채색 일색인 것일까. 물론 개중에는 눈에 띄게 화려한 것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지극히 평범한 색상을 고수하고 있다. 노트북 제조사들에게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개성 있고 독특한 노트북이 많이 나올 법도 한데…, 혹시 일을 하기 싫은 무능력한 노트북 디자이너들이 담합이라도 한 것은 아닐까? 당연히 아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노트북을 구매하는 소비자 스스로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HP 스테이시 월프(Stacy Wolff) PC 산업디자인 부사장은 “노트북의 색상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의 범위 안에서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HP의 자체 조사 결과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 1위는 검정, 2위는 회색, 3위는 파랑, 4위는 흰색으로 나타났다. 월프 부사장은 “남성들은 너무나 진부하다”라며, “다행히 여성들이 있어서 노트북의 색이 그나마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색은 빨강, 보라 순이었다.
남녀 모두에게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 색을 혼합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색이 HP 노트북 G시리즈에 적용한 ‘루비 레드’, ‘브라이트 퍼플’, ‘린넨 화이트’, ‘스파클링 블랙’ 등이다. 가령 스파클링 블랙의 경우 멀리서 보면 남성 취향의 무난한 검정색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도 좋아할 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독특한 검정색이다. 대량 생산되는 노트북의 특성상 색상 선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려는 노트북 디자인팀의 노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월프 부사장이 가장 자부심을 갖는 디자인은 ‘엔비 스펙터 XT’다. 심미적인 디자인은 물론이고 편의성과 일관성을 모두 잡는 디자인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터치패드는 멀티제스처가 많은 윈도8을 감안해 상당히 크게 만들어졌다. 사운드 시스템은 HP 프리미엄 노트북에 으레 들어가는 비츠 오디오를 채택했는데, 한 눈에 봐도 HP 노트북임을 알 수 있게끔 다른 노트북과 디자인을 통일했다. 뒷부분에 ‘HP’대신 ‘Hewlett-Packard’라는 풀네임을 새긴 것에도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하지만 엔비 스펙터 XT의 디자인이 애플의 ‘맥북 에어’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는 질문에는 강하게 부인했다. 노트북 구조상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은 있겠지만 의도하지는 않았다는 것. 월프 부사장은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일부러 모방한 것은 아니다”라며, “만일 (애플이) 은색은 자기들 것이라고 우긴다면 곤란하지 않겠냐”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글 / (중국 상하이)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