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빅뱅] "다른 울트라북이 그냥 커피라면 이 울트라북은…"
2012년 5월 9일(현지시간), HP는 중국 상하이에서 ‘HP 빅뱅 2012’를 열고 PC 및 프린터 신제품을 대거 공개했다. 이번 행사는 HP가 PC사업부(PSG)와 프린터사업부(IPG)를 통합한 후 처음으로 개최하는 글로벌 행사로, 전세계 500여 명의 기자가 참석해 열띤 취재 경쟁을 펼쳤다. 그동안 HP는 ‘HP 빅뱅’이라는 이름을 걸고 매년 지역별로 프레스 컨퍼런스를 개최해 왔지만, 올해처럼 전세계를 아우르는 대규모 글로벌 행사를 개최한 적은 손에 꼽힌다.
이날 HP가 선보인 신제품은 80여 종에 달한다. 주요 전략 제품은 ‘엔비 스펙터 XT’, ‘엔비 슬릭북 및 엔비 울트라북’, ‘엘리트북 폴리오 9470m’, ‘t410 올인원 스마트 제로 클라이언트’, ‘Z220 워크스테이션 및 엘리트북 모바일 워크스테이션’, ‘오피스젯 150 모바일 복합기’, ‘레이저젯 프린터 및 스캔젯’ 등이다.
뛰는 울트라북 위에 나는 울트라북 있다
이 중 엔비 스펙터 XT가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기존에 나왔던 울트라북보다 휴대성과 성능에서 진일보한 프리미엄 울트라북이기 때문이다. 두께는 14.5mm, 무게는 1.39kg에 불과하지만 USB 3.0, HDMI 등 연결 단자는 빠짐없이 갖췄다. 그리고 256GB SSD와 최대 8시간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탑재했다. 얼마 전 HP가 출시한 첫 울트라북 ‘폴리오 13’보다 배터리 사용 시간만 약간 줄어들었을 뿐, 이를 제외한 다른 성능과 기능 등이 모두 눈에 띄게 향상된 것. 한편, HP는 배터리 사용 시간이 긴 폴리오 13을 기업용 노트북 라인업으로 바꾸고, 대신 그 자리에 엔비 스펙터 XT 등 다양한 일반 사용자용 노트북 라인업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어도비의 ‘포토샵’과 ‘프리미어’의 풀 버전을 함께 제공한다는 것이다. 고성능 울트라북의 주 소비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픽 및 영화 콘텐츠 종사자들을 노린 회심의 한 수다. 이로써 엔비 스펙터 XT는 HP의 소비자용 노트북 라인업 중 최상단에 자리잡게 됐다. 그렇다고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다. 공식 출시 가격은 999.99달러로 인텔이 제시한 울트라북의 가격 조건인 1,000달러 미만을 준수했다. 국내에는 8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현장에는 비교적 넉넉한 수의 엔비 스펙터 XT가 전시됐지만, 워낙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꼼꼼히 살펴볼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겉모습만 봐서는 애플의 ‘맥북 에어’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디자인을 자랑했다. 참고로 맥북 에어의 두께는 17mm다. 두께를 줄이기 위해 성능을 희생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과연 엔비 스펙터 XT가 맥북 에어의 ‘진짜’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울트라북 비싸면 ‘슬릭북’은 어때요?
엔비 스펙터 XT만큼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 슬릭북(Sleekbook)이다. 슬릭북은 HP의 울트라북 라인업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제품군으로, 인텔의 울트라북 기준에서 일부 부족한 울트라씬 노트북을 뜻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프로세서에 있다. 슬릭북의 프로세서는 인텔의 2세대 또는 3세대 코어 프로세서가 아닌 펜티엄 프로세서이다. 경우에 따라 인텔 프로세서가 아닌 AMD 프로세서를 탑재할 수도 있다. 또 SSD대신 HDD를 탑재한다. 울트라북의 장점 중 하나인 빠른 부팅 속도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두께와 무게 역시 울트라북보다 다소 두껍고 무거울 수 있다.
대신 가격은 울트라북보다 훨씬 저렴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업계에서는 AMD 프로세서를 장착한 가장 저렴한 슬릭북의 가격이 599달러일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비싼 제품일 지라도 울트라북보다 최소 100달러 이상 저렴한 셈이다.
현장에 전시한 슬릭북은 외관상 울트라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HP측은 “울트라북의 소재는 금속이지만 슬릭북의 소재는 플라스틱이 될 것”이라며, “울트라북에 도입한 수많은 혁신 기술 역시 슬릭북에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슬릭북의 수요층과 울트라북의 수요층은 완전히 구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컴팩 브랜드는 역사 속으로
울트라북이 대거 추가되면서 HP의 소비자용 노트북 라인업은 더 세분화됐지만, 가장 밑바닥에 위치해있던 ‘컴팩 프리자리오’는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작별을 고하게 됐다. HP 총 매출액에서 프리자리오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컴팩이라는 회사명이 브랜드 통일성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컴팩이라는 이름은 기업용 PC 일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HP는 프리미엄 노트북 라인업인 엔비 스펙터와 엔비에 집중할 계획이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되, 브랜드 구축에 방해가 되는 계륵은 과감히 쳐내겠다는 것이다. 얇고 가벼운 노트북이 대세가 되었을 때에도 시장 지배력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기자의 눈으로 본 행사
HP빅뱅 2012는 대규모 글로벌 행사에 걸맞게 다채로운 구성으로 꾸며졌으나, 매끄럽지 못한 진행은 오점으로 남았다. 500여 명의 기자단은 3개 팀으로 나뉘어 주제별 세션에 참가했는데, 마이크 및 통역 시설에서 계속 문제가 생겨 다른 세션의 음향이 혼선되는 등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궁여지책으로 육성 진행을 시도했으나 영어권 기자들 사이에서 음성이 안들린다는 불평이 속출했고, 비영어권 기자들은 통역기의 잡음 문제로 통역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또 키노트 시작 전에 중국 래퍼를 동원한 공연과 키노트 마지막에 ‘프로젝트 런웨이’ 우승자의 깜짝 패션쇼는 신선하긴 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신제품 설명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더 좋은 프레스 컨퍼런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글 / (중국 상하이)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