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베껴도 몰라주네" 앱 개발자의 한숨
“어떻게든 이슈거리를 만들고 싶은 심정에 슈퍼마리오를 표절했지만…, 여전히 알아주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아요. 역시 안될 사람은 뭘 해도 안되는 걸까요?”
아이폰 게임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개발자 정해식(34)씨의 낯빛은 인터뷰 내내 어두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폰 앱스토어에 출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장밋빛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내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쳐야 했다. 출시한 게임들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당연히 수익도 기대 이하였다. 아직까지는 임신 중인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는 있지만, 올 겨울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일을 그만 두게 되면 정씨는 꿈을 완전히 접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개인 개발자의 엘도라도로 알려졌던 앱스토어는 사실 일개 신기루에 불과한 걸까.
정씨가 몸담고 있는 넥스트제로는 정씨와 조준현(37) 단 두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게임 개발사다. 정씨가 게임 기획 및 디자인을 담당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씨가 게임을 개발한다. 이들은 지난 해 회사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슈퍼캔디’, ‘스노키오’ 2개의 게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게임들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앱스토어에서 추천하는 신작게임 목록에 오르지도 않았거니와, 이 게임을 비중있게 다뤄주는 언론이나 커뮤니티 사이트도 없었기 때문이다.
“앱스토어에 게임을 출시하면 신작 목록에 자동으로 노출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게임들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정작 우리도 우리 게임들이 출시된 줄 몰랐어요. 며칠 지나서 검색을 해봤더니 목록에만 안뜰뿐, 있긴 있더군요.”
첫 게임으로 벌은 수익은 단돈 17만 원
물론 모든 게임이 다 신작 목록에 올라갈 수 없는 현실을 정씨도 이해한다. 퍼즐게임 슈퍼캔디가 출시되던 날, 앱스토어에는 비슷한 장르의 퍼즐게임만 30개가 넘게 올라왔다. 장르를 다 합하면 하루에 출시되는 신작 게임의 수는 수백을 넘어설 것이다. 이 중 이슈가 될 만한 게임만 선택적으로 목록에 올라가는데, 대부분은 대규모 게임개발사가 만든 것들이다. 개인 개발자들의 게임이 설 자리는 없다.
궁지에 몰린 개인 개발자들은 게임 커뮤니티나 아이폰 커뮤니티에 직접 홍보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운이 좋아야 한다. 하루에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만 수백 건이다보니,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금세 다음 페이지로 밀려난다. 그렇다고 같은 글을 여러 번 올리면 광고글로 분류되어 가차없이 삭제된다. 그렇게 정씨와 조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첫 게임 슈퍼캔디는 빛을 보지 못하고 밀려났다.
“슈퍼캔디는 2.99달러짜리 유료게임이에요. 하지만 각종 이벤트를 통해 0.99달러에 파는 경우가 많죠. 지난 해 7월에 출시됐는데 현재까지 통장에 들어온 돈은 달랑 17만 원이에요. 앱스토어 댓글에 별점이 높은 것을 보면 게임성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홍보가 안되니 답이 없는 거죠.”
정말 17만 원이 전부냐고 재차 확인하자, 조씨는 사실 조금 더 번 것 같다며 웃었다. 애플은 게임 판매액이 15만 원을 넘을 때마다 주기적으로 수익금을 지급하는데, 15만 원이 되지 않는 다음 판매액은 현재 애플 계좌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 금액도 8만 원 정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1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판매한 게임 수익이 고작 25만 원 남짓인 셈이다.
슈퍼마리오 표절했으나 무반응에 좌절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차기작부터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시도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정씨가 내놓은 전략은 바로 노이즈 마케팅. 닌텐도의 인기 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와 비슷한 캐릭터를 만들어, 표절 시비에 오르면 사람들이 좀 알아봐줄까 싶었다. 물론 ‘자칭’ 바른생활 사나이인 조씨는 반대했다. 게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표절 시비로 게임성이 묻히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게임이 성공하지 않으면 다음 게임을 개발할 돈이 없었다. 결국 정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슈퍼마리오의 캐릭터를 꼭 닮은 게임 스노키오가 출시됐다.
스노키오의 주인공 캐릭터는 누가 봐도 슈퍼마리오와 닮았다. 둥근 코, 멋드러진 콧수염은 영락없는 마리오 형제의 그것이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조금씩 다른 부분이 많다. 콧수염 모양도 자세히 보면 오리지널과는 다르다. 애초에 원치 않았던 표절이기에,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이 무의식중에 드러난 것이다.
“닌텐도가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만일 닌텐도의 슈퍼마리오가 아이폰 게임으로 나왔다면 우리도 이렇게 표절을 하지는 않았겠죠. 닌텐도가 이 게임으로 손해를 보는 것도 싫고,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거는 것도 바라지 않았어요. 그저 언론들이 한마디씩 던져서 논란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 뿐이죠.”
그러나 이들이 바랐던 표절 시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언론들은 무관심했고, 관련 커뮤니티에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금세 사그러들었다. 스노키오 역시 묻혀버린 것이다. 정씨는 “노이즈는 일으켰으나, 마케팅은 되지 않았다”라며, “괜히 자존심까지 버려 가며 욕만 먹은 것 같다”라고 씁쓸해 했다.
4월 8일 출시된 스노키오는 한달도 채 안돼 12,000여 건의 다운로드를 올렸다. 전작에 비해 시간 대비 높은 수치지만, 스노키오가 무료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수익은 미미했다. 광고플랫폼으로 얻은 광고료 몇 만 원, 단 7개 팔린 유료아이템이 수익의 전부다. 정씨는 “기획면에서 매우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라 욕만 먹고 버리긴 아쉽다”라며, “다음 스노키오 업데이트에는 표절 캐릭터를 오리지널 캐릭터로 바꾸고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기작에 개인 개발자 인생 올인한다
넥스트제로는 차기작인 디펜스게임 ‘바슬림 디펜더’에 남은 운을 모두 걸었다. 정씨는 조만간 책임져야 할 식구가 늘어나고, 조씨는 전세금까지 뺀 상태다. 수익 없이 2~3년을 버텼지만, 대출금이 늘어나면서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만일 바슬림마저도 실패하면 개인 개발자의 꿈을 접고 일반 회사에 취직할 생각이다.
“다행히도 바슬림 디펜더는 생각보다 잘 나올 것 같아요. 아직 5%정도만 완성됐지만 이를 본 다른 개발사들로부터 채용 제의가 들어올 정도니까요. 이번에는 노이즈 마케팅을 하지 않으려고요. 대신 이 정도 게임을 단 둘이서 만들었다는 게 알려지면 제법 화제가 되지 않을까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개발에 몰두하고 있어요.”
누구 못지 않게 힘든 2년을 보낸 정씨와 조씨지만,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애플 앱스토어의 생리도 이해하고, 대형 게임개발사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 정책에도 큰 불만은 없다. 그저 개인 개발자들도 완성도 높은 게임을 노출할 수 있는 환경을 바랄 뿐이다.
“개인 개발자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회사에 취직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 것도 좋지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노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요? 그 결과가 비록 실패로 끝나더라도 말이죠.”
“어차피 개발자의 끝은 통닭집 주인 아니겠냐”며 웃는 정씨와 조씨는 끝까지 게임 개발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