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전화의 주범, ‘엉덩이 전화’를 아시나요?
“911입니다. 신고할 내용이 뭐죠?”
미국 오하이오주 워런 카운티 911 센터에 근무하는 얀 토마스(Jan Thomas)가 반복해서 용건을 물었지만,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들리는 바람 소리, 그리고 여러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누군가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닐까? 다급해진 토마스는 위치추적을 시도하며 수화기에 귀를 바짝 대고 상황을 판단하려 애썼다. 그 상태로 몇 분이나 지났을까. 비명 소리 사이 사이에 웃음과 환호도 들리기 시작한다. ‘또 엉덩이 전화구나.’ 토마스는 그만 맥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누군가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휴대전화 버튼을 실수로 누른 게 틀림없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여름철이면 롤러코스터가 많이 설치된 오하이오주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엉덩이 전화(butt dialing) 또는 주머니 전화(pocket dialing)는 주머니 또는 가방 속의 휴대전화가 오작동을 일으켜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게 전화를 거는 것을 말한다. 주로 바지 뒷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은 채로 자리에 앉았다가 단축키나 최근통화 버튼이 눌려 발생한다. 따라서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나 긴급센터로 연결된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어렴풋이 들리는 잡담과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전부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라면 그냥 끊어버리겠는데, 아는 사람의 전화라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초창기 휴대전화는 버튼이 외부에 노출된 막대기(bar) 모양이었다. 따라서 외부에서 가볍게 압박만 해도 엉덩이 전화가 자주 발생했다. 사실 대부분의 휴대전화는 버튼잠금 기능을 지원했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귀찮다는 이유로 활성화하지 않기 일쑤였다.
이후 버튼이 숨겨진 플립형 휴대전화와 폴더형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엉덩이 전화의 발생률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또한 기업들이 엉덩이 전화에 대한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대표적인 예가 2009년 미국통신사 티모바일이 집행한 플립형 블랙베리 광고다. 이 광고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등장하는데, 남자가 소파에 앉으면서 실수로 여자에게 엉덩이 전화를 걸고 만다. 집안일에 바쁘게 열중하던 여자는 짜증난 표정으로 “이게 누구야? (당신의) 엉덩이로부터 전화가 왔네?”라며 남자를 몰아세우고, 남자는 “미안하다”며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당시 이 광고는 많은 휴대전화 사용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버튼잠금 기능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엉덩이 전화 문제는 또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미국, 영국 등 많은 국가에서 긴급센터가 받는 엉덩이 전화가 최소 20%에서 50%까지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2011년 119에 걸려 온 신고전화 중 무려 77%가량이 스마트폰의 오작동에 의한 것이었다.
스마트폰, 엉덩이 전화의 온상이 된 이유
이는 다소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정전식 터치스크린 방식이기에 옷깃이 스치는 정도로는 엉덩이 전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옷깃이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옷깃이 비밀번호를 순서대로 눌러서 화면잠금을 해제한 후 전화를 걸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문제는 화면잠금 기능에 대한 지나친 맹신에 있었다. 스마트폰, 특히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화면에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도 긴급통화는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해지된 폐휴대전화에서도 긴급통화는 무료로 쓸 수 있다. 이를 미처 몰랐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칭얼대는 어린 아이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장난감처럼 건네주기 일쑤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이것저것을 누르다 긴급통화 버튼에 손을 대기 마련이고, 긴급센터 직원들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엉덩이 전화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
모든 신고전화에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긴급센터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어린 아이의 칭얼거림만 들린다면 대부분 엉덩이 전화가 분명하지만, 만에 하나 어린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진짜로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분명히 판단하려면 통화를 계속 해야 하고, 위치추적까지 시도해야 한다. 이는 담당자의 근무 환경을 극심히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전화를 후순위로 밀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급증하는 엉덩이 전화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 안타깝게도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긴급통화를 거는 과정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면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이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다. 버튼을 여러 번 눌러야 전화를 할 수 있다면 긴급통화 버튼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모두에서 긴급통화 기능을 제거하거나 복잡하게 만들 수는 없다. ‘Call Confirm’, ‘AskToCall’ 등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하긴 하지만 탈옥 및 루팅을 해야 쓸 수 있고, 기본적으로 긴급전화를 막는 행동은 권장할만한 일이 아니다. 소방재난본부 역시 스마트폰 제조사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단말기 긴급통화 기능을 개선하도록 요청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은 얻지 못했다.
결국 사용자가 더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영유아에게는 가능한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 것이 좋고, 폐휴대전화라고 할지라도 간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내 엉덩이가 건 전화 한 통이 세금과 인력을 낭비하고, 최악의 경우 누군가의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명심해야 한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