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상표권 분쟁, 애플의 완패다
중국에서 진행중인 ‘아이패드’ 상표권 분쟁에서 결국 애플이 백기를 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BBC 등 주요 외신들은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 법원이 17일(현지시각) 전자양판점 ‘순단(Sundan)’에 아이패드 판매중단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어 허베이, 후난 등 중국 10여 개 도시의 상점에서는 아이패드가 일제히 회수됐다. 아이패드의 상표권이 자신에게 있다며 애플을 기소한 중국 IT업체 프로뷰(Proview)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만일 22일 상하이 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진다면 중국 내 아이패드 판매에 본격적인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동안 중국 태블릿PC 시장에서 확고한 일인자로 군림해온 애플의 입지도 크게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현재 중국 태블릿PC 시장에서 아이패드는 약 76%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1위를 고수중이다. 2위 레노버(7%)와 3위 삼성전자(3%)가 추월할 엄두도 못낼 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점유율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홍콩IDC의 애널리스트 딕키 창(Dickie Chang)은 “가장 큰 수혜자는 삼성전자”라며 “하이엔드 사용자들이 아이패드의 대체품으로 갤럭시 탭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반면 레노버의 경우 그보다 저렴한 태블릿PC를 찾는 사용자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변동폭이 적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중국에서 판매중인 아이패드와 갤럭시 탭 7.0의 가격은 모두 3,688위안으로 동일하다.
애플로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프로뷰에 맞소송을 펼치는 강경책을 계속 실시하겠지만, 뒤에서는 원만히 합의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프로뷰가 푼돈에 합의해줄리가 만무하다. 현재 프로뷰는 애플에게 보상금으로 20억달러(한화 약 2조원)를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 아이패드 상표권을 양도하겠다는 조건은 없다. 애플이 중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패드의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애플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프로뷰에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애플의 완벽한 패배다.
이는 상표권 인수 당시 모든 조항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애플의 실수 때문이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출시하기 전인 1998년, 프로뷰는 미니 데스크탑PC을 출시하며 ‘iPAD(Internet Personal Access Device)’라는 상표를 전 세계에 등록했다. 애플의 ‘아이맥’을 빼닮은 이 제품은 1만~2만 대가 생산됐으며, 2009년 단종됐다. 프로뷰의 대만 본사는 이 상표를 3만5,000파운드(한화 약 6,000만원)라는 헐값에 애플에 매각했다.
문제는 여기에 중국 내 상표권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프로뷰는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 자회사인 ‘프로뷰 선전’을 설립했는데, 이 프로뷰 선전이 중국 상표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플은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아이패드 상표권만 구입한 셈이다. 이후 파산 위기에 처한 프로뷰는 과거 상표권 매각 과정에서 허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소송을 통해 애플을 물고 늘어졌다. 중국 상표권도 소유하고 있다고 믿은 애플로서는 단단히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아이맥을 베낀 프로뷰가 아이패드 상표권을 주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프로뷰가 도덕적인 면에서 비난을 받을 수는 있어도,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은 애플이다.
혹시 애플에게는 학습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애플은 19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맥 OS의 디자인을 빌려주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을 때도 계약서의 애매한 조항때문에 땅을 치고 후회한 적이 있다. 윈도 시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계약은 윈도 1.0에만 적용된다”고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지만 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맥OS에서 영감을 받은 GUI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윈도 시리즈가 맥OS를 제치고 범세계적인 운영체제로 거듭나는데 애플도 일조를 한 셈이다.
한 번 답안지를 밀려 쓰면 실수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 실력이 된다는 말을 애플이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