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프린터에 정품잉크 놔드려야겠어요

“좋소. 프린터를 위해 내가 정품잉크 옷고름 한번 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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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 프린터를 위해 내가 정품잉크 옷고름 한번 풀지” (1)

자동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끝없이 오르는 휘발유값 때문에 차 끌고 나가기가 겁난다는 것. “돈이 문제라면 세X스 같은 유사휘발유나 시너(신나)는 어때?”라고 조언을 한다면 열에 아홉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리라. 아니, “내 자동차가 망가지면 책임질 거냐”고 되려 윽박지를지도 모르겠다. 설령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도, 휘발유 자동차에 휘발유 이외의 것을 넣는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반면 호환(비정품, 리필 등)잉크에 대한 시각은 관대하다. 잉크젯프린터 제조사들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 정품잉크의 우수성을 강조할라치면 “다 잉크 팔아먹으려는 장삿속”이라며 코웃음 친다. 주변에서 호환잉크를 쓰다가 프린터를 망가트린다고 할지라도, “이제껏 내 프린터는 그런 적 없으니 괜찮다”고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보인다. 휘발유를 이야기할 때와 완전히 다른 태도다.

물론 유사휘발유와 호환잉크를 비교하는 것은 어폐다. 유사휘발유는 불법이지만 호환잉크는 합법이다. 망가진 프린터는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자동차 사고는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호환잉크 쓴다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도 아니니 호환잉크를 써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게다가 호환잉크는 값도 싸다.하지만 인쇄 품질이나 기기 안정성까지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정품잉크와 호환잉크의 품질 차이

많은 사람들이 정품잉크와 호환잉크의 품질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잉크와 잉크 카트리지는 소모품이긴 해도 고도의 기술이 집적되어 있는 매우 섬세한 물건이다. 예를 들어 잉크 카트리지에서 잉크 방울을 너무 작게 내보내거나 필터가 불순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인쇄 품질은 크게 낮아진다. 또 잉크 조절을 담당하는 스펀지가 제 역할을 못하고 많은 양의 잉크를 내보내면 인쇄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품질의 차이는 컬러 인쇄, 특히 고화질 이미지에서 더 두드러진다. 언듯 봐서는 큰 차이가 없을 지 몰라도 출력된 이미지를 자세히 살펴 보면 차이가 드러날 수 있다. 특히 사용 기간이 늘어나면 이런 차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정품잉크만 사용하면 사용 기간이 길어져도 빈틈없이 이미지의 모든 부분을 채우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호환잉크를 사용하면 이미지 곳곳에 듬성듬성 빈 공간을 드러내곤한다. 이는 프린터 제조사들이 자사의 잉크 카트리지 및 잉크에 다양한 독자기술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잉크 카트리지의 노즐 수를 늘려 다른 크기의 잉크방울 2개를 분사하는 기술인 HP의 ‘듀얼 드롭 볼륨(Dual Drop Volume)’ 기술이다. 이 기술이 적용된 HP의 잉크 카트리지는 1,248개 노즐에서 1.3pl(피코리터)와 4.7pl의 잉크방울을 함께 발사한다. 각기 다른 잉크방울이 골고루 분포되어 컬러인쇄가 보다 부드럽고 선명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는 자갈만 넣은 병보다 자갈과 모래를 함께 넣은 병이 더 촘촘하게 채워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좋소. 프린터를 위해 내가 정품잉크 옷고름 한번 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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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 프린터를 위해 내가 정품잉크 옷고름 한번 풀지” (2)

엡손의 다중잉크방울분사(Variable Sized Droplet)기술도 이와 비슷하다. 단색의 컬러에는 큰 잉크방울을, 혼합 컬러에는 미세한 잉크방울을 분사해 품질뿐 아니라 출력속도까지 높인다.

저라면 지켰을 것입니다, 호환께선… 지키지 못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고화질 컬러 이미지를 자주 출력하지 않는 사람은 호환잉크를 써도 되는 것일까? 물론 흑백문서를 출력할 때는 인쇄품질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품질보다 비용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호환잉크를 택하곤 한다. 그러나 프린터 제조사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품잉크를 사용하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이득이라고 주장한다. 호환잉크는 불량률이 높고 잉크효율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독일의 테스트 기관 티유브이슈드 PSB가 2007년 조사한 품질테스트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판매된 HP 정품잉크의 경우 불량률이 1.4%에 불과했지만, 호환잉크의 경우 평균 42.8%가 초기불량이거나 조기에 성능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지역에 판매된 캐논의 호환잉크 역시 불량률이 56.5%에 달했다. 호환잉크 2개 중 1개는 제값을 못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불량품을 교환하는데 소모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호환잉크의 효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좋소. 프린터를 위해 내가 정품잉크 옷고름 한번 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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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 프린터를 위해 내가 정품잉크 옷고름 한번 풀지” (3)

특히 품질이 불량한 일부 호환잉크는 점성도가 정품잉크보다 높기 때문에, 잉크를 다 사용한 것 같아도 카트리지 안에 잔여물이 남는다는 것이 문제다. 잉크를 다 사용한 것 같아도 카트리지 안에 잔여물이 남는다는 것. 일반적으로 잉크를 리필할 때 공기에 노출되는 일이 많은데, 이 과정에서 점성도가 높아져 카트리지 내부에 잉크가 침전되거나 굳어 프린터가 고장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호환잉크를 쓰다가 고장난 프린터는 보증 기간이 남아있더라도 무상 A/S를 받을 수 없으며 아예 수리를 거부당하거나 수리를 해주더라도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호환잉크를 사용한다고 반드시 프린터가 고장나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 수리비를 감안하더라도 호환잉크를 쓰는 것이 더 저렴할 수 있다. 하지만 호환잉크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 프린터 제조사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호환잉크 판매처 역시 프린터 고장의 직접적인 원인이 잉크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보상을 하지 않는다. 결국 호환잉크로 발생한 문제는 소비자가 모두 떠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장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유혹을 쉽사리 떨쳐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정품잉크와 호환잉크의 가격 차이가 꽤 크기 때문이다. 이에 프린터 제조사들은 기존 잉크보다 저렴한 제품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고 있다. 예를 들어 HP는 콤보, 트윈, 대용량 팩 등 다양한 경제형 잉크를 출시했는데, 이 중 문서 출력에 특화된 제품인 잉크 어드밴티지 시리즈의 가격은 9,900원에 불과하다. HP 이외의 다른 제조사들도 경제성을 강조한 정품잉크를 다수 내놓는 추세다.

물론, 정품잉크가 싸졌다 해도 여전히 호환잉크보다는 비싸다. 게다가 품질을 생각하지 않고 대량인쇄를 주로 하는 경우라면 사용 도중에 프린터가 고장나더라도 그동안 호환잉크를 사용함으로서 아낀 비용이 새 프린터의 가격을 상회할 수도 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경우다. 호환잉크의 가장 큰 문제는 워낙 많은 업체에서 생산하다보니 품질이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운 좋게 몇 년을 쓸 수도 있지만, 운이 없으면 몇달, 혹은 몇 주만에 고장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어차피 소비해야 할 비용이라면 도박처럼 '한 탕'을 노리는 것 보다는, 약간의 비용을 '보험'으로 삼아 마음 편하게 안정적으로 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정품잉크의 다소 비싼 가격은 이를 위한 보험료와 같은 것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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