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 있는 문서엔 격식 있는 프린터, HP 레이저젯 500 컬러 M551
빌 게이츠는 1999년에 집필한 ‘생각의 속도’에서 미래의 사무실에는 종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업무 측정 및 진행 과정에서 압도적인 효율을 보이는 전자 문서와 이메일이 종이 문서를 빠르게 밀어낼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책상 한 켠과 서랍장에 빼곡히 들어찼던 서류철은 사라졌고, 웬만한 업무는 사내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 간혹 업무 결과를 개인적으로 확인해보거나 소량의 문건을 출력할 때나 프린터를 쓸 뿐이다. 출력을 할 일이 적다 보니 3~4명꼴에 한 대씩 배정되는 개인용 및 소호용 프린터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모든 사무실이 ‘종이 없는 사무실(Paperless Office)’이 된 것은 아니다. 다수의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대행사나 제안서를 제출할 일이 많은 영업부서에서는 여전히 많은 양의 인쇄물을 출력한다. 외부에 노출되는 문서다 보니 인쇄품질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웬만한 규모를 갖춘 기업이라면 고성능 기업용 프린터를 들여놓을 수밖에 없다. 사무실 곳곳마다 놓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 대는 꼭 있어야 하는 기업용 프린터, 마치 평소에는 잘 입지 않아도 격식을 차릴 때는 꼭 필요한 고급 정장과 같다고나 할까.
이번에 살펴볼 ‘HP 레이저젯 500 컬러 M551(이하 M551)’은 HP가 최근 출시한 고성능 레이저프린터다. 인쇄 속도나 인쇄 품질에서 나무랄 데가 없고, 월 1,500~5,000장 정도의 출력량이 필요한 사무실에 적합한 제품이다.
외모는 평범, 크기 및 무게는 미친 존재감
기업용 프린터다 보니 외관은 평범하다. 513 x 490 x 386(mm)의 크기에 약 34kg의 무게를 자랑한다. 혼자서는 운반이 힘들 정도의 덩치다. 낑낑거리며 겨우 책상 위에 놓았더니 공간이 급격하게 비좁아져 버렸다. 사무실 전체 인원이 사용할 프린터니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편이 낫겠다. 비록 출력물을 가지러 가는 동선이 급격하게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내 책상 위는 정중히 사양한다.
정면 덮개를 열면 4개의 잉크 카트리지가 보인다. 검정색, 청색, 빨간색, 노란색 4종의 독립된 카트리지를 손쉽게 교체할 수 있다. 참고로 HP는 온라인에서 바로 잉크 카트리지를 구매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M551이 신제품이라 그런지 한국어 페이지에는 아직 카트리지 가격이 명시되지 않았다(2012년 1월 기준). 하지만 해외 반응으로 살펴보아 그다지 저렴한 가격은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상단에는 조작 패널이 달려 있다. 인쇄 설정, 소모품 및 용지함 관리, 디스플레이 설정 등을 여기서 할 수 있다. 조작 패널과 연결된 컬러 디스플레이로 독립된 카트리지 잔량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표현할 수 있는 컬러는 딱 4가지다). 하지만 컬러로 표시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느 레이저프린터의 액정화면과 별 차이 없다.
오른쪽 측면에 급지대가, 하단에는 용지함이 있다. 양쪽 모두 4 x 6 엽서 규격부터 A4 규격 사이의 용지만 넣을 수 있으며 급지대에는 100장까지, 용지함에는 최대 500장까지 넣을 수 있다. 대량으로 출력해야 할 대부분의 문서가 A4로 만들어지니 사용에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상단에는 USB 2.0 단자가 있다. PC에 연결하지 않고도 USB에 저장된 문서를 바로 뽑을 수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인식하는 파일 포맷이 제한적이다. 국내 사무 환경에서는 MS오피스로 작성한 문서나 JPG 이미지 파일을 주로 사용하는데, M551은 아쉽게도 doc, xls, JPG 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해외 사례를 찾아봤더니 PDF, PRN, PS, CHT 파일만 인식한다고 한다. 사무용 프린터인 만큼 워드, 액셀 파일 등은 기본으로 지원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쇄속도와 인쇄품질에서는 대만족
다음은 가장 중요한 성능을 점검할 차례다. 기업용 프린터의 미덕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인쇄속도와 인쇄품질이다. 특히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할 부분이 컬러인쇄다. 흑백문서 몇 장 뽑자고 기업용 프린터를 구매하는 회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고품질의 컬러문서를 단시간에 많이 인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먼저 A4 흑백문서를 출력해봤다. 대기모드에서 첫 장이 출력될 때까지는 10초 남짓, 두 번째 장부터는 거의 쉴 새 없이 출력된다. 2~3초에 한 장 꼴로 나온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실 출력속도에서 이보다 더 빠를 수는 없으니, 다른 프린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A4 컬러문서를 출력해봤더니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마찬가지로 첫 장이 출력될 때까지 11초 정도 걸렸고, 다음 장도 연속적으로 출력됐다. HP가 밝힌 컬러 인쇄속도는 A4 기준 최대 32ppm(1분당 출력수), 레터용지 기준 최대 33ppm이다. 인쇄소에서 쓸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속도다.
인쇄품질은 매우 높다. 최대 해상도는 1200 x 1200 dpi며, 작게 쓰여진 글자도 또렷하게 보이고 컬러 이미지 역시 세밀하게 표현된다. 모니터 화면보다 약간 어둡게 표현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정도면 어떤 공식적인 문서를 인쇄한다고 할지라도 회사의 체면에 누를 끼치진 않을 것이다. 컬러 제안서를 자주 출력해야 하는 기업 마케팅팀이나 대행사가 쓰기에 적합하리라 본다.
일부 해외 리뷰어들이 인쇄 시 발생하는 소음이 크다고 지적했는데, 직접 사용해보니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리뷰를 하기 위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더니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여타의 기업용 프린터처럼 별도의 장소에 따로 설치한다면, M551의 인쇄소음 따위는 벽걸이 시계의 초침가는 속도만큼이나 신경 쓰이지 않는 수준일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 만한 덩치의 기기가 돌아가는데 소음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HP가 출시하는 여타 프린터와 마찬가지로, M551 역시 ‘e프린트’ 솔루션을 지원한다. e프린트란 스마트폰이나 PC에서 프린터로 이메일과 첨부문서를 직접 보내 인쇄하는 기능이다. 이 M551은 출고할 때부터 자체 이메일 주소를 내장하고 있다. 이 주소는 조작패널에서 기본메뉴, 연결 방법, e프린트 주소 순으로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이메일 주소가 ‘1234abcd567@hpeprint.com’처럼 무작위로 조합되는 방식이라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HP의 e프린트센터(http://eprintcenter.com)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메일 주소로 바꿀 수 있으니, 자주 사용할 예정이라면 기억하기 쉬운 이메일 주소로 바꾸길 추천한다.
경제성은 다른 제품 대비 무난한 편
원래 기업용 레이저프린터는 소비전력이 대단히 높은 기기다. 인쇄시 평균 600W에 달하는 전력을 소모한다. 일반 PC 모니터의 소비전력이 30~50W, 잉크젯프린터의 인쇄 소비전력이 35W니 대충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M551의 소비전력은 인쇄 시 605W, 대기모드시 51W로 여타 레이저프린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높은 편이다. 외산 IT제품이라면 겉면에 흔히 붙는 에너지 인증 마크인 ‘에너지스타’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슬립모드로 들어가면 소비전력이 6.9W로 급격하게 떨어지며, 오프상태의 소비전력은 1W 미만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사무실에서는 24시간 내내 프린터를 사용하지는 않으니, 생각보다 전력을 많이 소모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용 레이저프린터 치고는 경제성이 나쁘지는 않은 셈이다. 다만 카트리지 가격이 얼마일지 알 수가 없어 장당 출력비용은 계산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M551은 경제성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면에서 우수한 레이저프린터라고 할 수 있다. 그 경제성조차도 레이저프린터 제품군 자체에서 오는 한계 때문일 뿐, 다른 제품에 비해 특별히 떨어지는 부분은 아니다. 어느 정도 출력량이 많고 높은 인쇄품질이 필요한 중견기업 이상의 사무실에 추천할만한 제품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