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 문성원 “따로 노는 건 그만, 이제 같이 놀자”
남초(男超) 현상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게임박람회 지스타 2011에서 남자가 주목을 받기란 쉽지 않다. 너무 갸냘퍼서 총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여인이 섹시한 군복을 입고 군사 FPS게임을 홍보한다던가, 한 무리의 처자들이 스팽글 의상을 입고 게임과 별 상관 없는 섹시 댄스를 추는 것도 이 때문이렷다. 게임 컨셉에 맞춘답시고 근육질의 남성 모델을 부스 한 가운데 세운다면 파리만 날릴 것은 불보듯 뻔한 일. 관심을 모으고 싶다면 (남성 모델 대신) 부스걸 기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부스걸을 동원하지 않았음에도 관람객이 몰려든 곳이 있다.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들을 초청해 친선 경기를 펼친 레이저(Razer) 부스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와 ‘테란의 황태자’ 문성원 선수가 등장하자 레이저 부스는 금세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성(性)을 뛰어넘는 그들의 인기에 미녀 부스걸들은 순간적으로 빛을 잃었다. “팬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어서 지스타에 참여했다”며 수줍게 웃는 남자들, 임요환과 문성원을 만났다.
‘꿀피부’ 임요환, ‘최강소두’ 문성원
임요환 선수와 문성원 선수는 게임단 슬레이어스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다. 임요환 선수가 SK텔레콤 T1에 몸담았던 시절, 2군에 있던 문성원 선수를 눈여겨봤다가 슬레이어스 팀을 창설하면서 발탁했다. 끊임없이 전략을 연구하는 모습이 과거의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문성원 선수는 GSL 시즌 6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임요환의 후계자’, ‘테란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원래도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진짜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서로를 아끼게 됐다.
같이 지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서로에 대해 평가한다면?
임요환 : 성원이는 착실하고, 침착하고,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아요. 선수로서 필요한 능력치를 두루 갖춘 사람이죠. 다른 선수들도 연습은 열심히 하는데, 성원이처럼 연구를 많이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아요.
문성원 : 요환이 형은 선수로서도 대단하지만, 형으로 봐도 대단해요. 젊은 우리도 힘들고 아플 때가 많은데, 30대에 게임을 하는 형을 보면 많이 배우고 느끼게 돼요. 저는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요환이 형이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꼭 팀원이 아니라도 개인적으로도 알고 지내고 싶은 형이죠.
임요환 : 자기관리는 니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 자세도 니가 훨씬 좋아. 나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 뿐이야.
문성원 : 그래도 요환이 형한테는 안되죠. 형이 워낙 피부가 좋아서.
임요환 : 너는 얼굴이 작잖아 대신.
문성원 : 형은 키가 크잖아요.
(서로에 대한 훈훈한 칭찬이 계속됐다)
그러고보니 문성원 선수의 아이디 ‘슬레이어스짭승우’를 만들어 준 사람이 임요환 선수라고 하던데요?
임요환 : 아이디는 특이해야 사람들이 빨리 기억하잖아요. 성원이가 탤런트 조승우씨를 닮았길래 짭승우가 어떻냐고 농담을 던졌죠. 그런데 진짜 그걸로 할 줄은 몰랐어요. 좋아하면서 쓰던데요?
문성원 : (수줍게 웃으며) 입에 착착 감겨요.
슬레이어스는 아침마다 구보를 한다고 들었어요.
임요환 : 맞아요. 체력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축구로 쌓은 체력이 있었는데, 23살을 넘어가니까 그 체력이 다 소진된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특성상 많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하는 게 필요하죠. 체력단련은 제가 담당하고, 외모나 마인드컨트롤은 우리 구단주(김가연)가 담당해요.
김가연 : (문성원 선수를 보며) 누나 무섭지? 애들이 모두 저를 무서워해요.
문성원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김가연 : 처음에는 걱정했어요. 다들 하기 싫다고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자기들끼리 밤에 조깅도 하러 가고 자전거도 타러 나가요.
임요환 : 다른 게임단과 축구 경기를 했는데 기초체력에서 우리 팀을 못이기더라구요. 참 뿌듯했어요.
문성원, “게임보다 격투기가 더 재미있어요”
문성원 선수는 원래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선수 생활을 접고 군대에 갔잖아요. 어떻게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로 복귀하게 됐나요?
문성원 : 건강 문제, 집안 문제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프로게이머를 완전히 그만두고 부사관으로 지원했는데, 훈련 13주차에 나왔어요. 무릎을 심하게 다쳤거든요. 물론 게임도 할 수 없었죠. 그런데 아는 동생 중 한 명이 스타크래프트2를 함께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 자신을 잘 아니까, (게임에) 빠질까봐 안한다고 했죠. 근데 어쩌다보니 (스타크래프트2를) 하게 됐고, 예상대로 빠져버렸어요(웃음).
문성원 선수는 과거에 격투기 선수로 활동했다고 들었어요.
문성원 :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약 1년 6개월간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했어요. 새끼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그만뒀죠.
임요환 : (프로게이머한테는) 제일 필요없는 손가락이네.
문성원 : 게임을 할 때는 멀쩡한데 펀치를 치면 아파요.
혹시 격투기가 게임에 도움이 된 것이 있을까요?
문성원 : 격투기라는 것이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운동이라 많이 도움이 됐어요. 운동을 그만둔지 오래됐는데도 또래에 비해 체력이 좋아요. 오래 의자에 붙어있을 수 있어 유리하죠.
격투기 선수, 군인, 프로게이머를 모두 겪어보니 어떤 일이 가장 재미있던가요?
문성원 : (고민하지 않고)격투기요. 저는 극한에 달하는 상황이 좋아요.
임요환 : 극한에 달할 때까지 게임 연습하면 되겠는데?
문성원 : (웃다가)게임은 지금 좋아하는 일이니, 싫어질 때까지는 계속 할 것 같아요.
임요환, “해설은 팬서비스 차원, 나는 선수다”
임요환 선수는 최근 WCG 2011에서 해설자로 데뷔했는데, 느낌이 어떤가요?
임요환 : 선수 생활을 마치고 해설자를 하기 위해 미리 경험 삼아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어디까지나 팬서비스 이벤트 차원에서 한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해설을 못한다’는 말이 많더라구요(웃음).
아닌 것 같은데… 지금도 말 잘하시는데요?
임요환 : 편하게 이야기를 할 때는 괜찮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안그래요. 사실 그 전에도 이벤트 차원에서 해설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는 말이 술술 잘 풀렸는데, WCG 2011에서는 그렇게 안되던데요? 그 이후로는 하고 싶어도 불러주지 않아서 못했고, 저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까지는 선수 생활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래도 최근 들어 성적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임요환 : 그런가요? 아직 멀었어요. 버려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새로운 전략을 구상할 때마다 처음에는 ‘왜 다른 선수들은 이 전략을 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런데 막상 실전에 사용해보면 ‘아~ 이래서 쓰지 않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웃음). 10번 중 9번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고보니 어깨는 많이 좋아졌나요?
임요환 : 그동안 제 나름대로 몸관리를 했는데, 예전만큼 게임을 많이 하지는 못해요. 연습 게임이 30번 넘어가면 다음 날은 게임을 못할 정도죠. 병원에 꾸준히 가야 하는데… 물리치료가 너무 아파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병원에 가지 않아요.
후원사 레이저가 고맙다
그동안 임요환 선수를 후원한 기업은 많았다. 그 중 레이저는 다른 후원사에 비해 각별히 신경을 써주는 편이라고 한다. 해외에 나가게 될 때는 경비 지원은 물론이고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수시로 챙겨준다고 했다. 문성원 선수가 미국에서 GSL 우승을 차지했을 때 인터뷰에서 “레이저 민 리앙 탄 대표에게 감사하며, 만나서 꼭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한 것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지스타 2011 참가도 임요환 쪽에서 먼저 제안해 성사됐다.
민 리앙 탄 대표에게 감사의 뜻은 전했나요? 민 대표는 당시 인터뷰 내용을 트위터로 전해 듣고 매우 기뻤다고 하더라고요.
문성원 : 아 그래요? 아직 직접 만나서 인사하지는 못했는데… 다행이네요.
김가연 : 사실 그 전에도 슬레이어스의 일원 자격으로 만난 적은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야기는 따로 나누지 못했겠지만. 몇 달 사이에 성원이가 ‘대어’가 됐네요.
임요환 : 민 대표가 원래 게임을 좋아해서 여러 가지로 잘 챙겨주세요.
문성원 : 오늘 일정이 모두 끝나면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
어느새 스타크래프트2 리그가 자리잡은지 1년이 지났네요.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부탁해요.
임요환 :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처음 출발했을 때에 비하면 스타크래프트2 리그 시작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해외에서는 큰 붐이 일어나고 있어 뿌듯하죠. 하지만 만족스럽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에요.
김가연 :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2가 동화되지 못한 것이 아쉽죠. 이렇게 판이 갈라지는 것은 올바른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수와 팬들은 융합을 바라지만, 일부 세력이 싫어하는 것 같아요.
임요환 : 따로 놀지 말고 완전히 합쳐서 더 큰 e스포츠가 됐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우리끼리 놀지 말고, 해외로 활발히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