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고전 게임이 내 PC 속으로 - 게임 에뮬레이터(Game Emulator)
1962년, 미국 MIT의 학생들이 통계용 컴퓨터를 이용해 ‘스페이스 워’라는 원시적인 슈팅 게임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컴퓨터 게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78년, 일본 타이토(Taito)사의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가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면서 업소용 게임(Arcade Game)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미국 아타리(Atari)사의 ‘아타리 2600(1977년 출시)’, 일본 닌텐도(Nintendo)사의 ‘패밀리컴퓨터(Family Computer, 약자는 패미컴, 미국판 이름은 ‘NES’, 1983년 출시)등의 가정용 게임기(Game Console)가 크게 히트하면서 컴퓨터 게임은 매우 대중적인 오락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다만, 컴퓨터 게임들이 PC, 업소용, 가정용 등의 다양한 플랫폼(platform: 기반)으로 출시되면서 해당 하드웨어를 구매하거나 업소에 가지 않으면 모든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각 플랫폼은 게임을 구동하는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의 규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호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PC용 게임 소프트웨어 가정용 게임기에서 구동되지 않으며, 같은 가정용 게임기의 범주에 있더라도 A사 게임기용으로 나온 게임 소프트웨어는 B사 게임기에서 구동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성능이 향상된 새로운 규격의 PC 및 업소용 기판, 가정용 게임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같은 제조사의 제품이라도 신형 플랫폼에서는 구형 플랫폼용으로 나온 게임 소프트웨어가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매우 인기가 높았던 일부 게임 소프트웨어의 경우는 다른 플랫폼에서도 호환이 되도록 컨버전(conversion: 규격 변경) 작업을 거쳐 다시 출시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각 하드웨어의 성능 차이나 업체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컨버전이 원활히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정용 게임기용 게임을 PC로 즐긴다고?
여러 가지 하드웨어를 같이 구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혹은 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서 원하는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게이머들이 많아지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게임 에뮬레이터’다. 에뮬레이터(Emulator)란 특정 컴퓨터 시스템에서 규격이 다른 하드웨어 용으로 나온 소프트웨어를 흉내(emulate)내어 구동할 수 있게 하는 특수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전반을 의미한다. 에뮬레이터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게임용 에뮬레이터가 가장 유명하다.
예를 들어 MS 윈도우 기반 PC와 닌텐도 슈퍼패미컴(Super Famicom, 미국명은 슈퍼 NES, 1990년 출시) 게임기는 CPU(중앙처리장치)나 메모리 등의 하드웨어는 물론, 운영체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기반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PC에서 슈퍼패미컴용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PC용 슈퍼패미컴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인 ‘ZSNES’, ‘Snes9x’등을 사용하면 PC에서도 슈퍼패미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드웨어 구조가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흉내 내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요구하므로 완전한 에뮬레이터 제작을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프로그래밍 실력이 필요하며, 에뮬레이터가 구동되는 하드웨어 역시 원래 하드웨어보다 훨씬 높은 성능을 갖춰야 한다. 실제로 1990년에 나온 슈퍼패미컴의 CPU 속도는 3.58MHz에 불과하지만, PC용 슈퍼패미컴 에뮬레이터는 1997년에나 대중화된 200MHz 이상의 CPU를 갖춘 PC에서만 느려짐 없이 구동된다.
원 제조사에서 개발한 공식적인 게임 에뮬레이터도 있어
게임 에뮬레이터는 아마추어 프로그래머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개발되는 것이 많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하드웨어의 원래 제조사가 공식적으로 개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00년에 출시된 소니의 가정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2(PlayStation 2)’의 경우, 내부적으로 이전 모델인 플레이스테이션(1994년 출시)의 에뮬레이터를 포함하고 있어 플레이스테이션 2에서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신형 게임기가 출시된 직후에는 즐길만한 신형 게임기 전용 소프트웨어가 많지 않으므로, 이러한 하위기종 호환용 에뮬레이터를 탑재하면 구형 게임기용 소프트웨어라도 구동할 수 있게 하여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기존 게임 소프트웨어를 즐기던 고객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효과도 있어 플레이스테이션 2 이후에 출시된 가정용 게임기들은 대부분 하위 기종 호환용 에뮬레이터가 탑재되어 출시되고 있다.
게임 에뮬레이터는 불법인가 합법인가?
게임 에뮬레이터의 활성화로 인해 게이머들은 플랫폼의 장벽을 넘어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거의 즐길 수 없게 된 고전 게임들을 다시 만나면서 게임 발전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도 있다. 하지만 게임 에뮬레이터를 이용하면서 불가피하게 게임 제작사들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게임 에뮬레이터 프로그램 자체는 불법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를 즐기기 위해 비공식 경로로 게임 소프트웨어(롬 파일, CD 이미지 등)를 다운로드 받는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정품 게임 소프트웨어를 이미 소유한 사람이 자기 혼자 즐길 의도로 복사본을 만들거나, 게임 개발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경로를 통해 다운로드를 받는 등의 방법으로 게임 에뮬레이터를 즐긴다면 이는 불법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경우는 드물다.
다만, 게임 에뮬레이터 이용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신작 게임이 아닌 출시된 지 수십 년이 넘은 고전 게임의 경우, 상업적인 가치가 거의 소실되었기 때문에 에뮬레이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관용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다양한 법률적, 윤리적 문제점을 해소하면서 게임 에뮬레이터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게임 제조사들 및 에뮬레이터 개발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사용자들의 건전한 의식 확립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