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장 가까운 게임 - 시뮬레이션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은 현실과 비슷한 환경을 구현해 간접 체험을 누릴 수 있는 게임을 뜻한다. 처음에는 자동차 운전 연습이나 전쟁 모의 게임 등 교육적인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게임 장르가 다변화되면서 순수하게 오락을 위한 시뮬레이션 게임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규칙이나 진행 방식으로 구분하는 다른 게임 장르와 다르게, 얼마나 사실적이냐로 장르를 구분한다. 이 때문에 스포츠 게임, 슈팅 게임, 레이싱 게임, 전략 게임 등 다른 게임 장르와의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퍼즐 게임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은 시뮬레이션 게임에 속한다. 가령 ‘수퍼마리오 브라더스’는 공주를 구하려는 한 배관공의 인생을 간접 체험하는 게임이며, ‘스타크래프트’는 가상의 종족들이 벌이는 우주 전쟁을 간접 체험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모든 게임을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사실성을 온전히 갖춘 극히 일부 게임만이 시뮬레이션 게임에 속한다.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말하는 사실성은 사실적인 그래픽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 현실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허구를 그린 게임이라면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반대로 그래픽은 엉성하지만 현실적인 구조를 갖췄다면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했느냐가 시뮬레이션 게임의 핵심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뮬레이션 게임이 반드시 실재하는 모델만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상의 동물을 키우는 게임이나 사용자가 신의 입장에 서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갓 게임(god game) 장르도 엄연히 시뮬레이션 게임에 속한다. 즉, 실존하지 않는 모델을 다루더라도 사용자를 논리적으로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다면 시뮬레이션 게임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
이처럼 시뮬레이션의 사실성은 주관적인 판단에 상당수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게임이 시뮬레이션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FPS다. FPS 중 대다수가 시뮬레이션 게임에 필적할만한 사실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 전쟁을 배경으로 한 FPS들은 총기의 조작이나 아바타의 움직임이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이 때문에 일부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오락성을 포기하고 사실성에 치중한 나머지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기도 한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종류
건설/경영 시뮬레이션(CMS)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제한된 자원이나 시간을 활용해 도시, 정부, 건물, 집단 등을 운영하는 게임이다. 황무지에 도시를 건설하는 게임 ‘심시티(Simcity)’가 대표적이다. 이 가상의 도시 심시티는 현실세계의 도시와 매우 흡사하다. 거주자들은 교통, 전력, 우범지역을 고려해 집과 상가를 스스로 건설해 나간다. 사용자는 이 도시의 시장이 되어 세금을 걷고 도시를 발전시켜야 하며,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자연재해에도 대비해야 한다. 1989년 출시된 심시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건설/경영 시뮬레이션의 기틀을 잡았다.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나 ‘풋볼 매니저, ‘프로야구 매니저’도 대표적인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꼽힌다.
일부 사람들은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과 전략 게임을 혼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타크래프트’나 ‘문명’ 등 전략 게임의 진행 방식은 시뮬레이션 게임과 매우 유사하다. 심시티 역시 출시 초기에는 오리진스 상(Origins Awards) ‘최고의 전략 게임’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두 장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은 국내에서 더 도드라져서, 전략 게임이라는 말 대신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게 됐다.
일반적으로는 게임의 목적과 사용자의 권한에 따라 두 장르를 구분한다.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목표는 발전과 번영이지만, 전략 게임의 목표는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또한 사령관 한 명만 움직일 수 있다면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세부적인 유닛까지 모두 조종할 수 있다면 전략 게임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스포츠 게임
스포츠 게임은 말 그대로 스포츠를 즐기는 게임이다. 스포츠 게임 단독 장르로 분류하기도 하고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적인 움직임을 추구하는 미식축구게임 ‘매든 NFL(madden NFL)’, 농구게임 ‘NBA 라이브(NBA LIVE)’, 축구게임 ‘피파 사커(FIFA Soccer)’ 등이 있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 게임이 시뮬레이션 게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공중에 떠올라 ‘불꽃슛’을 쏘는 피구 게임이나 ‘필살기’에 가까운 구질을 보여주는 야구 게임 등 현실보다 판타지에 중점을 둔 스포츠 게임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최근에는 동작인식 기능을 갖춘 가정용 게임기가 등장하면서, 시뮬레이션 게임에 더욱 근접한 스포츠 게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닌텐도의 ‘위(Wii)’, 소니의 ‘무브(Move)’,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넥트(Kinect)’로 발매되는 스포츠 게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육성 시뮬레이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살피는 게임이다. 대표적인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꼽히는 ‘심즈(The Sims)’는 가상의 인간인 심즈를 유아부터 성인까지 성장시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게 하는 게임이다. 사용자가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심즈의 인생이 바뀔 수 있으며,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거나 굶어죽기도 한다. 이에 반해 동물을 키우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방식이기 때문에 휴대용 기기로 많이 개발된다. 1999년 말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다마고치’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프린세스 메이커2’나 ‘페이블2(Fable II)’와 같은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사실 이 게임들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보다는 RPG에 가깝다.
운전 시뮬레이션(Vehicle simulation)
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은 자동차, 비행기, 선박, 우주선 등 다양한 탈것의 승차감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임이다. 주로 운전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경쟁자들이 다수 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에서의 목표는 경주에서 경쟁자를 이기는 것이지만, 일부 게임들은 탈것을 조작하는 것 자체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은 항공사나 군대에서 훈련 교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용법이 책 한 권 분량에 달할 정도로 조작이 까다롭고 별도의 콘트롤러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투기를 타고 적과 싸우는 형태의 게임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민간항공기를 소재로 삼은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다. 1982년부터 꾸준히 출시되고 있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Microsoft Flight Simulator)’ 시리즈가 여기에 해당한다.
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은 실존하는 탈것을 바탕으로 만든 만큼 사실성을 중요시한다. 바나나를 밟고 차량이 미끄러지거나 물풍선을 맞고 나가떨어지는 레이싱 게임은 운전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경주보다는 충돌이 목적인 ‘카마겟돈(Carmageddon)’, ‘크레이지 택시(Crazy Taxi)’ 등의 레이싱 게임 역시 시뮬레이션의 범주에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애 시뮬레이션(Dating sims)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데이트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을 높이는 게임이다.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끈 장르로, 대부분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급생’, ‘두근두근 메모리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내에서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을 줄여 ‘미연시’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중 실제로 연애 시뮬레이션에 해당하는 게임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연애 어드벤처 게임이나 비주얼 노벨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호감도 등의 수치를 선택적으로 올릴 수 있다면 연애 시뮬레이션, 단순히 분기점과 멀티엔딩만을 제공한다면 연애 어드벤처 게임 또는 비주얼 노벨이라고 부른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